블로그 이미지
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행복 기술자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용틀임하는 백만 년 전 기암괴석…태초의 시간 속으로
 

[제주&]
지질트레일 ② - 산방산·용머리해안

이상한 행성에 들어온 듯한 느낌
저마다의 특징 지닌 A·B·C 3개 구간
수몰 위기에 처한 용머리해안

거대한 용암 덩어리 산방산
사계 해안 지나면 제주다운 마을길
화순 금모래 해변의 한적한 절경
드론으로 촬영한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전경.
드론으로 촬영한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전경.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화산섬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제주 지질트레일 코스다. 제주도는 수월봉과 함께 이 곳에서 해마다 지질 트레일 행사를 열고 있다. 올레꾼들은 산방산의 풍광만 보고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쉬운 데 안 보면 후회할 비경이 숨어있다.

각 구간의 출발지는 용머리해안이다. 용머리해안에는 화산 폭발 뒤 용암이 식으면서 암반에 구멍이 숭숭 뚫린 풍화혈과 해식동굴 등 다채로운 지질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다와 기암절벽 사이로 난 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용의 뒤틀림 같은 기묘한 괴석들이 해안을 따라 펼쳐져 이상한 행성이나 태초의 신비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곳이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은 이 용머리해안을 중심으로 산방산을 둘러보는 A구간(약 2km), 사계포구를 돌아 마을 안길을 지나는 B구간(약2.5km), 황우치 해변을 따라가는 C구간 등 3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A구간은 용머리 주차장에서 시작해 하멜 전시관, 기후변화홍보관, 산방연대, 산방굴사를 거쳐 용머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용머리해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분쯤 걸어가면 해설사가 머무는 탐방안내소가 보인다. 바로 그 옆에 조금 뜬금없지만 17세기 네덜란드 범선 모양을 본뜬 하멜 전시관이 서 있다. 하멜은 1653년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 남쪽 해안에 표류했다. 13년간 조선에 억류돼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남겨 우리나라를 유럽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하멜 전시관은 당시 난파한 배를 재현하고 여러 가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하멜이 제주에 처음 표착한 곳이 이곳이라 해서 세워놓았는데 최근에는 표착지가 수월봉 근처의 고산리 남쪽 해안 일대라는 설도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용머리 해안의 기암절벽.
용머리 해안의 기암절벽.
그 오른편에는 기후변화홍보관이 조성돼 있다. 급격한 해수면 상승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교육하기 위해 2012년에 만들어졌다. 요즘 용머리해안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용머리해안은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현상을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용머리해안 탐방안내소의 양선순 지질 해설사는 “최근 40여 년 동안 해수면이 23cm나 상승했으며, 이 상태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완전히 수몰될 것이라는 신문 보도도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용머리해안은 너울 등으로 기상에 따라 통제되는 경우가 잦아 탐방일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1년 중 관람 가능한 날이 200일이 안 되니 미리 탐방안내소에 문의하고 가는 게 좋다. 이곳을 찾은 지난 7일도 너울이 심해 하루 뒤인 8일 오후에야 탐방이 가능했다.

기후변화홍보관에서 공부를 마친 뒤 매표소를 통과해 용머리해안으로 향한다. 용머리해안은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자세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약 100만 년 전에 태어난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체로 한라산과 용암대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일어난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됐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화산이 세 번 폭발했는데 분화구에서 솟아오른 마그마와 화산재가 흘러가며 완만한 경사의 화산체인 응회환을 만들었다. 여기에 오랜 파도와 비바람의 작용이 더해져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머나먼 행성처럼 기기묘묘한 풍경을 빚어냈다. 오른편에는 파도가 철썩이고 왼편에는 독특한 지층 구조가 펼쳐지는 이곳을 거닐다 보면 마치 태초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7일 관광객들이 용머리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7일 관광객들이 용머리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절경에는 전설이 따른다. 용머리해안 지층대 한가운데는 누군가 칼로 잘라놓은 듯한 지형이 있다. 제왕이 태어날 지세의 혈을 막으라는 중국 황제의 명을 받은 호종단이 용머리해안에 도착해 꿈틀대는 용머리 형상을 보고 용의 꼬리와 잔등을 잘라버렸다는 곳이다. 그러자 붉은 피가 흘러나오며 산방산이 3일 동안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용머리해안 끝부분의 동굴 입구 같은 탐방로를 통과하면 출구가 나오고, 바로 산방연대로 이어진다. 산방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적의 침입 등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 통신수단이다. 구릉이나 해변 지역에 설치된 봉수대라고 보면 된다. 연대에 오르면 용머리해안과 사계 해안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길은 산방산으로 올라가는 A구간과 황우치 해변을 따라가는 C구간으로 갈린다.

산방산은 거대한 용암 덩어리로 이뤄진 높이 약 395m의 종 모양으로 우뚝 솟은 종상화산이다. 분화구가 없는 용암 돔이다. 약 80만 년 전에 형성됐으며 용머리해안과 함께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지형 중 하나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화산지형일 뿐 아니라 제주도 남서부 지역의 경관을 대표하는 웅장한 지형이다. 산방산에는 독특한 외관 때문인지 원래 한라산 봉우리였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내려온다. 설문대할망이 제주섬을 빚을 때 한라산이 너무 높아 잘라 던져버린 게 산방산이 됐다는 것이다. 제주도 자연유산 전용문 박사(지질학)는 “80만 년의 세월을 품은 산방산이 백록담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다”며 “한라산 백록담 주변의 둘레와 산방산의 둘레가 비슷한 데서 나온 선조들의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산방산이란 이름은 산속에 방처럼 생긴 동굴인 산방굴이 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산방산 입구에 울창한 나무 그늘이 드리운 계단을 따라 20분쯤 올라가면 중턱의 굴 안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 산방굴사가 나온다. 산방굴에 서면 용머리해안과 형제섬, 가파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방산·용머리 해안 지질트레일 노선도. 자료: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B구간은 용머리해안을 돌아본 뒤 설쿰(눈 속에 생긴 구멍·설혈) 바당(바다)길, 사계 용암언덕, 사계어촌 체험관과 사계리 마을을 지나 용머리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구간이다. 한라산과 용머리 산방산을 배경으로 해변을 걸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도 있고, 제주도 돌담과 지하에서 솟아나는 용천수 빨래터 등을 보며 제주인들의 삶의 향기를 맛볼 수도 있다. 설쿰바당 모랫길에서는 용머리 화산재 지층과 주변 암석들이 풍화돼 해안에 쌓인 지층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그 끝 지점에 있는 사계포구 용암언덕은 용암 공급에 의해 중간 부분이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언덕 모양의 지형으로 튜뮬러스라고 불린다.

사계포구를 지나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부두 끝에 사계어촌 체험관이 있다. 간단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고, 해녀 체험 등 다양한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C구간은 용머리해안에서 황우치 해변, 소금막 용암, 서근다리 등을 거쳐 화순 금모래 해변으로 이어진다. 용암과 주상절리, 수성화산체, 곶자왈, 용천수 등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돼 있어 심심치 않다. 이곳은 풍경이 아름다운데도 여름을 제외하곤 관광객이 붐비지 않아 한적한 곳을 찾는 이들에게 좋다. 하지만 C구간 일부는 아직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 지질트레일
☞지질트레일은 제주의 독특한 지질자원과 인근 마을의 역사·문화·신화·생활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접목시켜 만든 도보길이다. 2014년 4월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개발을 시작으로 수월봉 지질트레일과 만장굴 지역의 김녕·월정 지질트레일, 성산일출봉 지역의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등이 있다.

 

글 박영률 기자


[한겨레 제주& 2018년 11월 19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jejuand/866336.html?_fr=mb2#csidx56ccac8faf7cdec92817f2569fa6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