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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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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307 호)

 

【 진화론이 지지를 받는 이유 】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논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과학에 결정적인 우세를 안겨준 것도 바로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동설 등 천체 물리학의 부상이 과학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동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큰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틀림없는 과학적 사실일까요?

물론 성서 내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한다면 진화론이 더 과학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화론 그 자체가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냐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성서 글자 그대로의 창조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창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보다 많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생명 탄생의 비밀, 다른 종으로의 진화 등은 아직 확실한 과학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화론이 완벽하게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앞에 보내 드린 뉴스레터에서 양자역학의 관점이나 연구비 등의 외부적 여건에 의해 과학적 사실에 왜곡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하는데, 진화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과학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안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윈의 진화론이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 특히 당시 위세를 떨치던 천주교의 교리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구절처럼 부가 죄악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에 의해 적자생존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부각되면서 부의 축적은 적자생존에서 승자가 차지하는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낙오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스펜서 등의 견해가 종교 지도자 및 기업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는 새로 부국이 된 미국의 기업가 정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의 크기가 적자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라는 과학적 뒷받침을 등에 업은 스펜서의 구호는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제도에 적용하는 사회적 다윈주의는 잘못된 진화론적 주장을 내세워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마치 진화론에 의한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를 원용한 합리적 원칙으로 미화되기도 합니다.

적자생존에 의해 자연계가 균형을 유지하듯이, 자유방임 경제, 규제 없는 자본주의 등과 같은 원칙을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19세기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진보를 혼동한 나머지, 적자생존의 개념을 인간 사회의 진화에 적용하여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진화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생학, 나치즘, 인종주의적 이민정책, 장애우 등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진화론적 주장이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진화론은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진화(문명화)된 민족이 덜 진화된 민족(야만인)을 정복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이 부당한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론이 악용되는 것을 보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항거는 쇠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내용에 반감을 느끼신다면 알게 모르게 자본가들이 앞세운 진화론적 논리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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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의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