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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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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연재되고 있는 조선일보 기획기사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를 노령사회이면서 노인복지가 선진화된 북유럽 사회의 현실과 노령사회로 가면서 그에 따르는 제도의 잉태와 출산의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교해 가며 관심있게 읽었다.

사회가 노령화되어 간다는 문제는 사회적 관점에서 보고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면서 한편으론 이미 노령화된 사회에서 뭔가 배워올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보통 한국에선 경제력과 건강이 받쳐 주면 장수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북유럽 사회에서 이와는 좀 다른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100세 쇼크가 축복이 되자면 우선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복지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복지 제도만으로 100세 쇼크가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최고의 노인복지제도가 시행되는 북유럽 사회에서 복지제도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노인문제의 뻥 뚫린 구멍을 보면서 나는 복지에 가려진 어둠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아래는 내가 작년에 일기 형식으로 적어 두었던 글에서 옮겨왔다.

«««««백야가 절정으로 치닫던 북구의 화려한 유월의 어느 하루,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스팔트 대신 일부러 오솔길을 택했다. 그 길을 통하면 이웃집 할머니들이 정성껏 가꾼 정원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바위 틈에 핀 야생화조차도 할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그리고 그 길엔 늘 이웃 노인 누군가가 꽃을 손질하고 있다.

그 날은 은발에 볼륨을 잔뜩 넣고 정원의 잡초를 뽑고 있던 과부 할머니 엘린을 만났다. 노인을 잘 섬기는 예의바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평판 덕분에 이웃의 할머니들은 외국인인 날 붙들고 곧잘 얘기를 한다. 그날은 사실 배도 고프고 다른 약속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어찌나 살갑게 맞는지 잠시라도 말동무가 되어 주기로 했다.

엘린 할머니는 그렇게 동양여자의 손을 잡고 30분이 넘도록 지나간 시절 행복했던 순간들의 추억을 봇물 터지듯 그려냈다. 지척에 자녀가 있어도 너무 바빠서 자주 보지도 못하고 휴가도 자기들 가족만 떠나니 너무 외롭다면서 파란 눈망울엔 눈물이 맺힌다. 한국에선 자녀들이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전통문화가 있으니 부럽다고 하였다.

엘린 할머니는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비록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지만 노인센터에서 일 주일에 2-3번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건강도 좋은 편이라 외적으로는 분명히 축복받은 노후생활을 누리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할머니는 ‘외로움’이라는 만성적인 마음의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남편의 사랑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그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할머니를 더 외롭게 한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스웨덴의 한 도시를 여행 중 만났던 미나 할머니의 얘기는 더 극적이다. 할머니는 남편을 잃은 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였다. 먹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건강도 좋은 편이었지만 덩그러니 홀로 남은 아파트에서 외로움을 삭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외동딸이 가까이 살았지만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주진 못했다. 미나 할머니는 그렇게‘외로움' 병을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은 이듬 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북유럽에선 고령과 질병으로 자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면 국가에서 운영하는‘노인의 집’에 입소할 자격이 주어진다. 다달이 연금에서 일정액이 이체되면서 1-2인용 방과 식사, 24시간 의료진 상주, 각종 레크리에이션 활동 등이 제공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죽음을 향한 마지막 행선지로 여기는‘노인의 집'에 입소하길 꺼린다. 그들은 부부가 같이 생존해 있다거나 건강이 허락된다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살아가는 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집에서 살든 ‘노인의 집’에서 살든 북유럽의 노인들이 늘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은 자녀와 가족이다.

노령과 은퇴, 건강 문제는 사회활동의 범위를 제한시키고 그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전통적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서양의 큰 명절인 성탄절에 자녀나 가족의 방문을 온종일 기다리다 실망감과 외로움에 눈물짓는 노부부나 독거노인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을 도대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이다. 북유럽 복지 국가의 노인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외로움’인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외로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홀로 사는 것’과‘건강 문제’를 꼽는다. 이 두 가지 요소에 동시에 노출되기에 가장 취약한 그룹은 노인계층이며 특히 한국에선 102만 명이나 되는 독거노인의 현실은 극한 상황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들은 대부분이 경제적 궁핍과 건강 문제 외에 외로움까지 덤으로 안고 살아 간다.

2005년 통계에 의하면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1, 그것도 OECD 국가 평균치의 5배라고 한다. 한국이 노인복지와 노인문제에 더 많은 관심과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충분하고도 분명해졌다.

생존의 무거운 짐까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노인들의 삶은 세계 최고의 노인복지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북유럽의 노인들보다 훨신 고달프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듯한 복지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외로움’이다.

나이들고 병들면 가족의 정이 그리운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더 고민해야 할 과제는 ‘어떡하면 노인 세대가 외로움에 덜 노출되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일 것이다.

복지제도는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마음의 병을 불러 일으키는‘외로움’은 가족과 이웃, 사회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족은 북유럽의 외로운 노인이나 한국의 외로운 노인이 숙명적으로 그리워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실을 나의 이웃 할머니 엘린과 “가장 큰 적은 가난이 아니라 외로움이다”라고 절규한 한국의 한 독거 노인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출처: 조선일보 블로그(http://blog.chosun.com/sahili/5216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