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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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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떠나본다. 계절이 북상하는 속도가 워낙 느린지라 봄을 찾아 떠나본다. 남쪽으로 내려간다. 연녹색 차밭으로 간다. 그러니 옷은 때때옷이 좋겠다. 연분홍 치마에 바람이 불면 그 녹색과 분홍색 대비가 서로를 치켜세운다. 그 봄바람 맞으러 전남 보성으로 간다. 봄바람 쐴 일정은 이렇다. 낙안읍성→벌교 문학기행→보성 차밭→율포 해수탕.

 

어디에 숨었나 했더니 봄이 차밭에 숨어 있었다. 햇살과 함께 봄이 왔다. 삼나무 숲에도, 산능선에도, 찻잎에도 온통 봄이었다.

봄기운 솟는 낙안읍성

일단 낙안읍성에서 봄기운을 느껴본다. 낙안읍성은 살아 있는 민속촌이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국민속촌과 달리 모든 초가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 주민은 모두 288명. 4만평이 넘는 성 안에 초가집이 312채 있다.

 

 

낙안읍성

조선 태조 때 왜구를 막기 위해 토성으로 성곽을 만들었다가 인조 때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도술을 써서 '하룻밤' 만에 돌로 다시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동편제의 거장 송만갑, 가야금 병창 중시조 오태석이 자란 집도 여기에 있다.

성 남서쪽 성곽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읍성 풍경은, 장관이다. 식당, 놀이시설, 각종 민속 체험 공간도 있다. 성곽 오르는 입구 부근에 있는 도예방은 꼭 들러본다. 앙증맞은 소품들과 작은 가마가 재미나다. 지대가 낮아서 집집마다 돌담길 나무에는 벌써 꽃망울이 가득하다. 그 꽃망울을 즐기며 봄바람 한번 나본다. 아니, 저절로 봄바람이 난다. 배가 고파도 잠깐 참는다.

태백산맥, 꼬막 그리고 벌교

읍성에서 3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벌교가 있다. 마을에 흐르는 강에 뗏목으로 만든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벌교(筏橋)였다. 1728년 홍수에 벌교가 떠내려가자 선암사 스님들이 돌로 만든 다리를 세웠다. 그 다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벌교 홍교라 한다. 굳이 이 작은 어촌 마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꼬막과 소설 '태백산맥'이다.

소설 '태백산맥' 도입부에 나오는 현부자집

꼬막은 모래가 없는 벌교 앞바다 여자만(汝自灣) 갯벌에서 온종일 여자들이 잡아온다. 양념꼬막은 물론 꼬막전, 꼬막무침, 피꼬막, 기타 등등 벌교에서는 꼬막만으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 낙안읍성에서 배를 채우면 아니 되는 이유다.

그 꼬막식당가가 있는 거리 이름이 태백산맥로다. 작가 조정래를 기념하는 거리다. 꼬막거리에 있는 보성여관 한번 구경하고, 강 건너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집에 가본다. 문학관, 잘 만들었다.

그리고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현부자집과 그 집 옆 무당 소화의 집도 가본다. 일본식과 한식이 뒤섞인 현부자집은 건축 문외한이 봐도 근사하다.

문득 봄 - 녹차밭에서

벌교나 낙안읍성에서 하룻밤을 묵도록 한다. 잠에서 깨는 시각은 되도록 이른 아침이었으면 좋겠다. 그 아침, 구체적으로는 아침 7시쯤에 다원(茶園)에 봄이 온다. 여자만에서 불어온 봄바람에 해무(海霧)가 살짝 끼면 더 좋다. 대한다원 입구를 거쳐 잘생긴 삼나무 길을 지나 차밭 꼭대기로 올라간다. 무조건. 그리고 가만히 서서 봄을 기다린다.

 

햇살에 반짝이는 녹차 잎, 햇살 속에 아득하게 흔들리는 산속 나무들까지 봄이 출렁인다.

해가 떠오르고, 문득 봄이 내린다.
검푸른 삼나무 숲 사이로 떨어지는 빛줄기, 햇살에 반짝이는 녹차 잎, 햇살 속에 아득하게 흔들리는 산속 나무들까지 봄이 출렁인다. 봄을 찍으려고 쫓아온 사진가들 몇몇 외에는 사람도 없으니, 그 큰 정원이 온전히 당신 것이다. 연분홍 치마 흩날리며,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고서 한없이 봄을 즐겨본다.

 

 

율포 풍경

그런데 강림한 봄이 사라지는 건 또 순식간이어서, 두 시간쯤 지나면 아까 봤던 찬란한 봄빛은 소멸해버리고 커다란 차밭 하나가 멀뚱히 사람을 바라본다. 그러니 되도록 이른 아침에 봄을 맞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다원에 있는 찻집에서 녹차를 즐긴다. 아이스크림도 즐기고 아침밥도 먹는다.

그리고 율포로 간다. 해산물도 해산물이지만, 율포에 있는 해수탕을 즐겨본다. 목욕을 하고 나면 피부가 매끈매끈하다. 봄에 취하고 다향(茶香)에 취하고 몸도 개운하니, 이제 봄이 오는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봄 찾아 남도 기행 여기서 일단 멈춤.


 

여행 수첩

 

추천코스(서울 기준): 낙안읍성~벌교~보성차밭~율포해수탕
순천완주고속도로 순천IC→남해고속도로 광주 방면→순천IC 여수, 장흥, 순천 방면 출구→벌교, 순천만, 낙안민속마을 방면 오른쪽→순천시내 백강로→호현삼거리 보성 방면→58번 지방도→낙안읍성(4시간 30분·입장료 2000원)→857번 지방도 벌교 방면→15번 국도→벌교버스터미널 오른쪽 길→태백산맥문학관(20분·2000원·월요일 휴관)→벌교역 지나 2번 국도 벌교교차로→영암순천고속도로 벌교IC 목포 방면→18번 국도, 895번 지방도 이후 '녹차밭' 이정표→보성 녹차밭(50분·입장료 3000원)→18번 국도 율포 방면→율포(20분)

 

먹을 곳
1. 벌교 꼬막 정식: 꼬막으로 만든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태백산맥거리=꼬막거리.
피꼬막, 꼬막전, 꼬막무침, 양념꼬막 등 20찬. 1만~1만5000원선. 홍교꼬막회관 (061)857-1035
2. 율포 해산물거리: 각종 회와 구이.

 

즐길 곳
해수탕: 반드시 즐겨볼 것. 율포에 바닷물 목욕탕이 두 군데. ?漫惻貽跆졔?있다.

 

묵을 곳
1. 낙안읍성 민박: 주민 대부분이 민박 운영. 민박집 연락처는 nagan.suncheon.go.kr 참고.
2. 벌교 보성여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 '남도여관'의 실제 장소.
근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본식 건물. 숙박, 찻집, 전시실, 소극장 등. 입장료 1000원, 월요일 휴관.
3. 보성녹차리조트: 대한다원 녹차밭 옆.
4. 다비치콘도: 율포. 해수탕도 있다.

 

보성 여행정보 tour.boseong.go.kr, (061)852-2181

 

(조선일보 2014년 2월 27일 박종인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