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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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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 부활의 신호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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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 공과대학에 입학한 홍 모씨(32)는 이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른 뒤 지방 의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공대에도 합격했지만 '안정적인 길'을 찾기 위해 주저 없이 의대를 택했다. 학교를 가리지 않고 의대를 선호하는 당시 사회 분위기상 당연한 선택이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병원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홍씨는 "지방이라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며 "나 역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의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1970~1990년대에는 정부가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와 반도체, 조선업, 정보기술(IT)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면서 기계·전자·건축공학과 등 공학계열 학과 점수가 주요 의대보다 높았다. 1990년대까지 대학 배치표에는 서울대와 KAIST, 포스텍 등 공대가 상위권을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공대 위상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가장 먼저 엔지니어를 정리해고 대상자에 올려 놓으면서 공대 출신 직장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2000년대 들어 우수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의대 광풍'이 불었다. 전국 의대 정원이 채워진 뒤에야 공대 입시가 시작됐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경향이 조금씩 바뀌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대가 공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학생이 공대와 의대에 중복 합격하고도 공대를 선택했다.

차석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의대 선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듯해 공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의대 중복 합격 여부를 조사했다"며 "의대 선호 현상은 2000년대 초·중반 강세를 유지하다가 2008년 이후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이 전국 의대와 서울대 공대에 지원한 비율도 이 같은 변화를 보여준다. 2010년 지방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 수능 성적이 상위 1%에 달했다. 그런데 올해 입시에서는 서울대 공대 최상위권 비율이 높아진 데 비해 의대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며 "한의대와 치대 등 위상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많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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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가 상위권 학생들에게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는 대기업은 물론 금융업계에서도 공대 출신을 선호하는 등 최근 기업들 사이에 공대 선호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박승빈 한국공학한림원 국제협력위원장(KAIST 부총장)은 "의사가 돼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며 "공대가 취직이 잘될 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례가 나오면서 학생들이 공대를 다시 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공대 출신 최고경영자(CEO) 출현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엔지니어 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본보기로 작용했다.

올해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서울대 화공생명공학과에 입학한 이지석 씨(19)는 "5~6년 전만 해도 무조건 의대에 진학했겠지만 여러 진로를 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대를 택했다"고 했다. 2012년 서울 소재 의대에 수석 합격하고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주헌 씨(22)도 "전자공학과에 진학하면 다양한 분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공대 선호 현상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공대를 졸업하면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 온라인임금정보업체 '페이스케일'이 내놓은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많은 연봉을 받는 학과로 1위 석유공학, 2위 화학공학 등 상위 20개 모두 이공계열이 차지했다.

차석원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는 입학하고 2년 뒤 전공을 선택하는데 최근 공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전체 중 50%를 넘어섰다"며 "5~6년 전만 해도 20%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중국 대학평가기관인 중국교우회망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도 중국 대입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학생들이 생명공학이나 컴퓨터공학 등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대 교수들은 우수한 학생이 꾸준히 공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현실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지방 의대들은 우수 학생들을 놓치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해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공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창의력을 키우고 문제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교육의 질적 변화를 통해 우수한 학생들이 뛰어난 공학도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2015년 3월 17일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