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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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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⑤ 다시 부각되는 위생가설

질병 원인 유해균 조심해야 하지만
자연상태 미생물 대부분은 무해
오히려 인체 면역 훈련시키는 구실

도시에서 자란 아이 아토피 더 많고
살균 철저한 가정 비만 가능성 높아
자연스럽게 미생물 접촉 늘려야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미생물을 막을 공공위생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철저한 개인위생은 자연의 많은 미생물이 우리 몸의 면역을 훈련시켜줄 기회를 막을 수 있다. 합성고무 바닥의 깨끗한 놀이터보다 흙과 나무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게 하자.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한겨레> 자료사진
질병을 일으키는 유해 미생물을 막을 공공위생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철저한 개인위생은 자연의 많은 미생물이 우리 몸의 면역을 훈련시켜줄 기회를 막을 수 있다. 합성고무 바닥의 깨끗한 놀이터보다 흙과 나무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게 하자.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한겨레> 자료사진

“살균 99%”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제품이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세균은 무조건 잡아 죽여야 하는, 깔끔하게 ‘멸균’되어야만 하는 존재인가? 물론 반론도 있다. “막걸리가 바로 유산균 덩어리”라는 광고가 등장한 것을 보아도, 세균 중엔 피하지 말고 오히려 찾아 먹어야 하는 좋은 종류도 있는 듯하다. 유산균으로 대표되는 ‘유익균’을 뺀 다른 모든 세균은 ‘유해균’으로 봐야 할까?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처럼 미생물의 세계에도 ‘유익’ 아니면 ‘유해’란 두 딱지만 붙일 수 있는 것일까? 깨끗함이 무조건 좋을까? 오늘은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위생의 역설

영국의 런던 위생·열대의과대학 데이비드 스트래컨(Strachan) 교수(현 세인트조지 런던대 교수)는 1989년에 7만명의 영국 아이들을 추적조사하고서 당시로는 상당히 엉뚱한 생각을 발표했다. 나이 많은 형제가 많을수록 그 아이가 꽃가루 알레르기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또 알레르기 질환의 원인으로, 잘살게 되면서 점점 가정의 가재도구와 가족이 깨끗해진 것도 한몫했다고 봤다. 그 원인으로 어릴 때 충분히 다양한 미생물의 접촉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나중에 그 유명한 ‘위생가설’이 되었다. 깨끗한 고급 아파트 단지의 실내 놀이터에서 혼자 뛰어노는 아이와 도심이 아닌 농촌의 흙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공간에서 여러 형제가 뒹굴고 노는 광경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면, 후자가 아토피 피부염에 덜 걸린다는 주장이다.

피부염, 천식, 비염처럼 증상은 몸의 다양한 부위에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알레르기 질환의 밑바탕에는 ‘면역의 오작동’이 있다. 우리가 흔히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부르는 종류이다. 질병관리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 10명 중 무려 2명이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필자와 같이 19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당시에 아토피란 단어도, 그런 증상을 가진 아이도 거의 없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40~50년 전과 지금의 한국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국민소득도 늘었고, 음식도 채식에서 고기 위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노는 장소가 훨씬 깨끗해진 것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한 가정에서 아이의 수도 스트래컨 교수의 주장대로 줄어들었다. 과연 깨끗할수록 자가면역 질환이 많이 발생한다는 위생가설은 맞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정확한 이유는 무엇일까?

위생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쓰인다. 대략적인 정의는 우리 주변 환경을 더럽지 않고 깨끗하게 유지함을 뜻한다. 좀 더 좁히면 우리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이 우리 주변의 병원성 미생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15년 만에 유행한 2016년의 콜레라를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 질병은 비브리오 콜레라라는 세균을 섭취해서 일어난다. 19세기 조선 시대부터 우리나라도 콜레라 유행의 희생자였다. 사망자만 수십만명에 이른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이 ‘성공적인’ 세균은 현대의 한국에 오면 맥을 추지 못한다. 2016년에 우리나라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도 단 3명의 환자로 막아낼 수 있었다. 적도 지역의 저개발 국가였다면 엄청난 유행과 사상자를 냈을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 선진적인 상하수도 시설이 이를 막아냈다. 오늘 한국에 사는 우리는 현대화된 상수도와 하수도 체계를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히 생각하지만, 콜레라뿐만 아니라 장티푸스, 이질 같은 수인성 전염병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혹시 외국에서 콜레라에 걸린 사람의 대변을 통해 이 병원균이 아무리 많이 배출돼도, 상하수도를 통해 대규모 감염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모두 우리의 공중위생 수준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위생이 많은 감염성 질병을 막아주고 인류의 수명을 늘려온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트래컨 교수의 위생가설에서는 위생이 왜 오히려 건강에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연구가 지난 30년간 발표되었지만, 몇가지만 여기에 소개한다.

스위스 사회·예방의학연구소의 샤를로테 브라운파를렌더(Braun-Fahrl?nder) 박사는 세계적인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2002년 발표한 논문에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지역의 6~13살 아이 812명을 주거 형태에 따라 농장 지역과 도시 같은 비농장 지역으로 나누어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의 발생 요인을 조사했다. 그런데 당시의 상식을 깨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세균이 만드는 독성물질인 내독소(endotoxin)가 침대 매트리스에서 많이 나온 농장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 알레르기 질환이 현저히 적게 발생한 것이다. 내독소는 대장균을 비롯해 가축의 내장에서 많이 발견되는 세균들이 내는 독소의 한 종류인데 공기 중에 떠 있다가 쉽게 우리 입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농촌 아이들이 사는 환경에서 내독소가 많이 발견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떻게 내독소에 노출된 아이들이 반대로 알레르기 질환이 덜 발생하는지는 당시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연구진은 적정량의 내독소에 노출되는 것이 이런 질병의 예방에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1살 이전에 농장에 살면서 이런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며, 초등학교에 갈 때쯤에 노출되는 것, 즉 농장에 사는 것은 질병 예방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를 보면 농장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아토피 피부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스웨덴 예테보리 퀸 실비아 어린이병원의 빌 헤셀마르 박사 연구진은 7, 8살 아동 1029명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설거지 방법이 알레르기 질환 발생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서구에서는 우리나라보다 자동식기세척기의 사용률이 현저히 높다. 결과는 놀랍게도 손설거지보다 자동식기세척기의 사용이 많을수록 그 집에서 자란 아이는 천식이나 습진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연구가 또 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아니타 코지르스키 교수팀의 2018년 보고에 따르면, 화학 성분의 가정용 살균제품을 사용하는 가정의 아이들이 비누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가정에 비해서 3살에 이르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아이가 생후 3개월이 되었을 때 장내 미생물 생태계(마이크로바이옴)를 조사했는데, 빈도 높은 살균제의 사용에 따른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를 비만 발생의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했다. 이외에 다른 여러 논문은 2살 미만의 어린 시기에 발생하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이 아토피 피부염뿐 아니라, 소아 비만과 당뇨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모두 어린 시절에 충분히 병원균이 아닌 자연상태의 미생물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더럽게 산 쥐가 더 건강

앞에서 언급한 연구는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여러 요인을 모두 제한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엔 비교 조건을 한가지로 제한할 수 있는 동물실험이 적당하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바르바라 레어만 박사팀은 깨끗한 환경의 쥐와 더러운 쥐, 더 정확히는 인위적으로 미생물을 살균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자연 상태의 쥐를 비교하고자 했다. 깨끗한 쥐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미 그가 일하는 연구소에 수십년간 대대손손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 5성급 호텔 같은 사육 시설에서 키워진 실험용 쥐가 있었다. 오히려 어려운 건 이 실험용 쥐와 비교할 더러운 쥐를 구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미국 메릴랜드 지역의 자연공원에서 야생 쥐를 생포해야만 했다. 최첨단 분자생물학 연구자들이 야생 동물을 잡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생포된 쥐 중에서 게놈 분석을 통해 사용하려는 실험용 쥐와 가장 비슷한 것을 골라 비교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의 실험에서,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무균 위생 상태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과 생존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쥐의 장내 미생물이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떨어뜨림을 보여준 실험 결과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진의 실험에서,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는 무균 위생 상태 쥐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은 쥐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성과 생존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쥐의 장내 미생물이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떨어뜨림을 보여준 실험 결과다.
그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의 결과와 비슷하게, 실험용 쥐보다 야생 쥐에서 장내 미생물이 더 건강한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구성하는 세균은 종의 수도 많고 더 다양했다. 이렇게 다른 두 쥐의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실제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연구팀은 다행히 미생물이 없이 자란 무균 생쥐도 키우고 있었다. 무균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야생 쥐와 실험용 쥐의 대변, 즉 장내 미생물을 먹이면, 두 그룹의 무균 쥐는 각각 야생 쥐와 실험용 쥐의 장내 미생물을 갖춘 쥐로 바뀌게 된다. 두 그룹은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이고, 먹는 음식, 사는 환경이 모두 같다. 이제 차이가 나는 부분은 장내 미생물뿐이다. 일정 시간 키운 다음에 이 두 그룹 사이의 면역력과 병에 대한 저항성의 차이를 관찰하기로 했다.

먼저 연구팀은 쥐에게 치명적인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는데, 실험용 쥐의 장내 미생물을 갖춘 쥐는 80%가 폐사했지만,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갖춘 쥐는 반대로 90%가 살아남았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대장암을 유발하는 약품을 먹였는데,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야생 쥐의 장내 미생물을 갖춘 쥐에서 암의 발생이 현저히 적었다.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에 자란 쥐의 장내 미생물이 바이러스와 암에 대한 저항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다.

 

미생물 ‘감염’ 아닌 ‘이주’

지금도 수많은 미생물이 숨을 쉬거나 음식을 먹는 동안 입과 코를 통해 내 몸 안으로 들어온다. 스탠퍼드대학교의 마이클 스나이더 박사는 호흡을 통해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미생물을 2년 동안 측정한 결과를 작년에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수천종의 미생물이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이 작은 생명체가 내 몸 안에 머무는 시간은 잠시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오랜 기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미생물이 내 몸에서 병을 일으키면 ‘감염’이라고 불렀고, 이를 막기 위해 항균 제품으로 우리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아주 일부의 병원성 미생물을 제외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상태의 미생물 대부분은 우리를 감염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면역계를 훈련시켜서 자가면역 질환을 막아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감염’이 아니라 미생물의 ‘이주’로 표현하려고 한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 해가 없는 이주 세균이 면역력이 크게 저하된 사람에게는 감염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 같은 곳이나 병원균이 있을 가능성이 큰 병원에 다녀오면 반드시 손 씻기 등의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위생가설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미생물과의 접촉을 늘리자는 것이지 무조건 더럽게 살자는 것은 아니다.

상하수도 같은 공공위생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막아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개인위생의 단계에서는 미생물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이제 갓 걸음을 내디딘 아이가 합성고무 바닥으로 된 놀이터에서만 놀고 있다면, 흙과 나무가 있는 산이나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뛰어놀게도 하면 어떨까? 위생가설은 이제 더는 가설이 아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는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자연의 미생물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한겨레 2019년 1월 26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79971.html#csidx2f485d60668b07da2a967f879472b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