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만리동 언덕 위에 있는 예술인협동조합형 공공주택(막쿱, M.A.Coop)으로 가는 길은 힘겨웠다. 지난 3일 섭씨 34.3도의 불볕더위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20분가량 천천히 걸어 꼭대기에 도착하자 단아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3개의 독립된 건물은 구름다리로 연결돼 하나가 됐다. ‘따로 또 같이’, 막쿱 건물은 주택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뭉쳐 사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닮았다. 막쿱은 서울시에서 공급한 예술인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이다. 저렴한 집값과 질 좋은 주거환경, 공동체 생활이 강점이다. 전용면적(24~59㎡)에 따라 보증금 3840만~9440만원에 월 임대료는 1만5천~3만원이다. 2년마다 계약하고 20년까지 지낼 수 있다. 지난해 3월 입주가 시작된 막쿱에는 미술·설치·건축·영화·영상·연극 등 분야 예술인 27가구(29가구 중 2가구 공실)가 산다.
공동생활 공간인 1층 커뮤니티룸에서 만난 강민수(막쿱 이사)씨는 조각과 회화를 하는 예술가다. 고등학생 아들, 미술을 하는 아내와 산다. 전에는 서울 동대문 다세대주택에서 월세로 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술만 해서는 생활하기 어려워요. 지금 지내는 곳이 방 3개짜리인데,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어 아내와 같이 일해요. 주거 문제가 해결되니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강씨는 “막쿱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했다.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이라 원만한 공동체 생활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문제는 생길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풀어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선 이웃과 어떻게 잘 지낼지 고민을 많이 해요. 전 의미가 있다고 봐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요.” 막쿱은 규약을 만들어 서로를 배려하고 한달에 한번 반상회를 통해 소통을 한다. 건물 청소, 주차장, 흡연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조율하며 공동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신경 쓰는 부분이다. “지난해 패션쇼·벼룩시장·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저도 진짜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막쿱과 같은 주택협동조합이 최근 새로운 주거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과 민간에서 주거 부담을 덜고 자발적인 공동체를 만들겠다며 다양한 형태의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 공공주택은 적은데 민간주택은 비싸고, 저렴한 임대주택이 부족해 주거 불안이 커진 현실이 영향을 준 것이다. 1인가구 증가와 마을 공동체 붕괴도 주택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공공분야에서는 서울시가 2014년 9월 강서구 가양동 육아협동조합 공공주택인 ‘이음채’를 만들어 24가구가 입주했고, 그해 12월엔 서대문구 홍은동에 청년협동조합 공공주택 ‘이웃기웃’(31가구)이 생겼다. 지난해 3월 막쿱에 이어 강서구 화곡동(15가구), 양천구 신정동(51가구)에 청년협동조합 공공주택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2년 사이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에 150여가구가 자리를 잡게 되는 셈이다.
정부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법인이 직접 매입임대주택을 운영하는 사회적 주택 시범사업을 다음달부터 시행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다가구주택·원룸을 매입한 뒤 협동조합 등에 임대하고, 조합이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에게 시세의 절반 가격으로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협동조합 등이 거주지 제공 외에 주거공동체 구성까지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청년층의 안정적 거주와 정착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시범사업은 수도권에 300호 내외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주택협동조합 바람이 거세다. 청년들이 발 벗고 뛰는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활약은 눈부시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며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2014년 3월 주택협동조합을 만든 뒤 같은 해 8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달팽이집 1·2호를 확보해 입주까지 마쳤다. 창립 멤버들의 출자금(8200만원)과 사회투자기금 대출(5억원)을 받았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민달팽이는 집을 사는 대신 집주인과 보증부월세(1호)·전세계약(2호)을 했고, 이를 다시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했다. 2인이 함께 방을 쓰면 보증금 60만원에 월 임대료가 23만원이고, 임차인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청년들의 관심이 높아, 달팽이집은 2년 만에 6호까지 만들어졌다. 50여명의 청년들이 살고, 6호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된다. 달팽이집 2호에 사는 임소라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운영팀장은 “낯선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갈등도 있다. 좀 지질해 보여도 생활하면서 발생한 불편함은 서로 터놓고 말하기로 했다. 대신 잘 풀어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달팽이집에 있으면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불안함과 고립감이 많이 사라진다. 2년 가까이 살다 보니 지금 사는 곳이 ‘우리 동네’라는 소속감도 생겼다.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에 불편함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택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걸고 2013년 6월 만들어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 10월 서울 은평구 북한산 둘레길로 접어드는 곳에 ‘구름정원사람들’이라는 1호 집을 만들었다. 출판사 대표·교사·목사 등 다양한 직업의 8가구가 살고 있다. 입주자들은 함께 땅을 사 집을 지었다. 건물 지하와 1층에 노후 소득을 위해 상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하우징쿱이 만든 구름정원은 분양형으로, 주택가격은 3억~3억5천만원가량이다. 2년 사이 구름정원을 포함해 제주·서대문·과천·지축 등 5곳은 이미 집이 완성돼 입주가 끝났다. 현재 서울 수유 등 5곳은 땅 계약이 끝나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이고, 2곳은 검토 단계에 있다. 기노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좋은 집을 싸게 사고, 집 설계에 본인의 의견이 들어가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지금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웃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이웃이 생기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사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집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기노채 이사장은 “좋은 집을 지으려면 건축비를 줄일 수 없으니 땅을 저렴하게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급매물·경매 등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하우징쿱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택협동조합이 4개나 새로 만들어진 것도 큰 성과다. 하우징쿱 2호인 제주 오시리 입주자들은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집 소유권도 협동조합에 줬다. 공동체 생활에 무게중심을 둔 결정이었다.
이밖에 ‘주택기숙사 주택협동조합’은 대학생들과 대학가 주민이 힘을 합친 특이한 사례다. 지역 주민들한테서 빈방을 받아 학생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한다. 주민들은 공실을 줄여서 좋고, 학생들은 싸게 방을 구해서 좋다.
서울 성미산 공동주택 실험을 해오던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과 동네 주민들은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2014년 8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오래된 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한 뒤 1인 가구에 저렴하게 임대를 하고 있다.
주택협동조합이 곳곳에서 생겨나지만 전국적으로 아직 100곳이 안 된다. ‘공동체 복원’을 위한 정부 지원도 미흡한 상황에서 대안적 주거형태로 자리잡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진남영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주택협동조합이 더욱 확산되려면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돈을 빌리려고 해도 20~30년 장기대출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주택협동조합 전반을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주택정책도 거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노채 하우징쿱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정부가 주택을 단순히 상품으로 취급하거나 주택산업이 경기 조절을 위한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민 누구나 위생적이고 좋은 집에 살 권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도 “정부가 공급하는 주택들은 세입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관계망에 대해 무관심하다. 지금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라고 맡겨둔다. 사회가 해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16년 8월 8일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