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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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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美 유타州의 시골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 美전역서 가장 청정하지만
오염물질도 못 빠져나가 거대한 임상시험장 된 셈

어느 경제학자의 호기심
“제철소를 가동하면 아들의 몸이 아프고 멈추면 안 아프더라” 동네 주민의 말에 연구
‘먼지의 위험’ 모르던 시절 인체 유해성 처음 알아내

제철소·기업 반발했지만…
하버드 의대 연구진 합류, 6개市 8000명 건강 조사… 폐질환 등 상관관계 규명
美환경청, 세계 최초로 초미세 먼지 규제 만들어


	초미세 먼지와의 전쟁… 모든 건 이 마을에서 시작됐다

선진국에선 초미세 먼지를 '소리 없는 살인마'라 부른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되는 중국발 초미세 먼지의 공습 앞에서도, 현재 초미세 먼지에 대한 환경부 차원의 예보와 경보, 배출 규제가 없다. 초미세 먼지의 위험성을 실감할 만한 사회적 계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23일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흡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초미세 먼지 환경 규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건 미국이다. 미국은 1990년대 10년에 걸친 대논쟁 끝에 오염물질 리스트에서 초미세 먼지를 맨 위에 놓았다. 미국 사회가 초미세 먼지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건 오염이 심한 대도시가 아니라 서남부의 한 시골 마을 때문이었다. '공기가 가장 맑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오염된 곳'이라는 두 얼굴을 지닌 묘한 곳. 마을 아이들은 초미세 먼지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보이지 않는 킬러'의 정체를 밝혀낸 건 과학자가 아닌 한 경제학자였다. 이야기는 1988년 유타주(州) 브리검영대학에서 시작한다.

◇시골 마을 농업경제학자의 호기심

아덴 포프(Arden Pope)는 이 대학 농경제학부 교수였다. 그의 전공은 숲과 강, 공기 같은 천연자원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제학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1988년 겨울 포프는 한 주민으로부터 "아들 녀석이 동네 제철소가 가동될 때면 몸이 아프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 건강이 회복된다"는 말을 들었다. 문제의 제철소는 대학 캠퍼스에서 북서쪽으로 8㎞ 떨어진 유타밸리에 있었다. 공장은 1년에 걸친 파업 때문에 문을 닫았다가 재가동을 앞두고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포프는 동네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한 아이들의 통계를 받았다. 그걸 들여다본 포프는 깜짝 놀랐다. 제철소가 가동되면 입원하는 아이들이 두 배로 늘었고, 가동을 멈추면 입원 어린이가 3분의 1로 줄었다. 누가 봐도 제철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원인이었다. 주범은 먼지였다. 마을의 먼지 농도가 치솟으면 마을 아이들의 입원율도 어김없이 상향 곡선을 그렸다. 특히 지름이 2.5㎛ 이하 초미세 먼지 농도는 입원율과 정비례했다.

포프의 연구 결과는 미국 환경과학계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당시 과학자나 기업들이 가장 신경을 쓰던 오염물질은 이산화황이나 오존 같은 유해 가스였다. 1952년 12월 초 4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 스모그의 주성분이 바로 석탄에서 나온 이산화황이었다. 먼지는 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미국 환경보호청 로버트 데블린 박사는 "입자가, 그것도 크기가 작은 입자일수록 인체에 위험하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었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며 반성하던 그들은 포프가 연구했던 마을을 가보고는 무릎을 쳤다.

◇최고·최악의 공기를 동시에 가진 마을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미 전역에서도 가장 공기가 청정한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제철소가 들어오면서 마을의 공기는 공기청정기의 스위치를 켰다 껐다 하는 것처럼 가장 맑은 공기와 가장 오염된 공기를 오갔다. 제철소가 가동을 멈추면 공기는 더없이 맑았고, 가동을 시작하면 나빠졌다. 대기층이 정체돼 오염물질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겨울철 공기의 질은 최악이었다. 마을 전체가 '초미세 먼지 On' '초미세 먼지 Off' 상태를 선택할 수 있는 거대한 임상시험장과 같았다. 오염물질이 거의 일정한 다른 도시나 마을에선 상상하기 힘든 천혜의 환경이었다. 덕분에 포프는 질병과 초미세 먼지의 상관관계를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포프의 연구 결과는 그러나 대대적인 반격을 당했다. 마을 제철소는 "아이들의 호흡기 질환은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반박했고, 다른 기업들도 "먼지의 먼지쯤 되는 게 뭐가 위험하냐?"고 여론전을 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선량한 기업을 위협하는 협잡꾼 취급을 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위기에 처했다.

그때 그를 도와 합류한 것이 더글러스 더커리 박사가 이끄는 하버드 의대 연구진이었다. 공동연구진은 미국 6개 도시 8000명의 건강 기록 15년치를 추적해 초미세 먼지가 폐질환 또는 암, 심장질환을 유발해 사망률을 명백하게 높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97년 미 환경보호청은 이들의 연구 등을 토대로 세계 최초로 초미세 먼지에 대한 환경 규제를 만들었다. 기업들은 과학자를 채용해 반박 데이터를 발표하고 한편으론 새 환경 기준을 법정에 세웠다. 뉴욕타임스가 '1990년대 최대 환경 논쟁'이라 부른 이 싸움은 2002년 미 연방대법원이 환경청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단락됐다.

포프와 하버드 대학 연구진의 공동 연구는 초미세 먼지와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이었다. 초미세 먼지가 어떻게 해서 사람의 생명을 갉아먹는지를 규명하지는 못했다. 그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2000년대 말이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러셀 렙커 교수는 "초미세 먼지는 기도를 통과해 폐에 침투, 허파꽈리를 막는다"고 말했다. 꽈리가 막히면 혈액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결과적으로 온몸에 산소 공급이 떨어진다.

렙커 교수는 "심장은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려고 피를 더 돌리려다 무리를 하게 되고 초미세 먼지에 의해 막힌 허파꽈리가 썩으면서 염증 물질이 혈액을 타고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에 의해 심근경색증이나 각종 염증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 초미세 먼지

공기 중의 먼지 가운데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이하인 먼지. 물체의 크기가 머리카락 굵기의 4분의 1 정도(25㎛)가 되면 사람 눈엔 안 보이는데, 초미세 먼지는 그 수준보다도 10배나 더 작다. 우리나라는 현재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 먼지에 대한 배출 규제만 있다. 초미세 먼지에 대해서는 2015년부터 오염물질 차원의 관리가 시작될 예정이다.

(조선일보 2014년 1월 25일 이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