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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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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04 [신문기사] ‘기본소득’이라는 화두 / 이원재

 

이원재
LAB2050 대표

 

기본소득제란,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자는 아이디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인 제도다. 미국에서는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복잡한 복지제도를 단순화하기 위해, 한편에서는 기초생계급여나 실업급여에 안주하며 사는 이들의 취업 동기를 키우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기술혁신으로 생기는 고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험한다.

내가 처음 기본소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경제 영역의 공익 활동가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하고 나서였다. 시장이 보상하지 않는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이들은 빈곤과 과로에 허덕이고, 결국 그 가치 자체가 흔들리고 마는 일이 잦다. 계산이 어려우니 보상도 어렵다.

사실 처지는 음악가도 미술가도 유튜브 창작자도 비슷하다. 불안정성을 감수하며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뛰어든 사람들 상당수는 생계 어려움 탓에 활동이 쉽지 않다. 품격 높은 콘텐츠를 창작할수록 더 그렇다. 이들에게 기본소득 개념의 생계비를 미리 지급하고 활동하게 하면 우리 사회 공익도 창조성도 더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조업 고용 쇠락기를 맞은 한국 사회를 보니, 기본소득은 노동자들의 고용 전환이 필요한 현실적 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산과 거제와 통영의 해고노동자들은 좌불안석이다. 공장은 지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역 정치인들의 말을 끝까지 믿었고, 공장이 떠나자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되었고, 수십년 공장생활 정리하고 나서도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다가, 급한 마음에 한두 달 만에 실업급여조차 포기하고 퇴직금을 쏟아넣어 프랜차이즈 창업에 나선다. 자녀 학원비와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갚아야 한다는 생계 압박 탓이다.

조선업 몰락으로 ‘말뫼의 눈물’을 겪은 스웨덴의 노동자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하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튼튼한 사회안전망 덕에 생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직장은 떠났지만 주거, 교육 등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장기간의 준비 끝에 새로운 직업을 구해 삶이 전환되기도 했다.

군산과 거제와 통영의 노동자들의 삶은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전환할 시간을 버텨줄 안전망이 없어서다. 급하게 얻는 직장에서 소득은 반 토막 나기 쉽다. 퇴직금 쏟아넣어 시작한 자영업은 포화상태다. 자기계발 할 시간도 없고 적성, 가치관을 고려할 여유도 없다. 이런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기본소득은 이들에게 전환의 기회를 줄 수 있다.

기본소득은 청년들의 삶의 전환에도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능력과 적성과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공무원이 되고 공기업 직원이 되려고 몇 년씩을 시험공부에 쓴다. 국가적 비극이다. 기본소득은 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 혁신적인 일에 뛰어들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한편 기본소득은 적게 일하고 적게 벌어 쓰려는 생태주의적 삶을 선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돌봄노동에 대한 보상을 미리 해준다는 의미도 있다. 미국 벤처포아메리카의 창립자인 앤드루 양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우리는 월급봉투에 적힌 금액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되는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라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장했다.

소득만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득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소득은 필요하고, 기본소득제는 그 필요를 채우는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다. 작은 규모의 정책실험을 통해 효과를 검증해보는 것도 좋겠다. 필요한 계층부터 시작하며 사회적 토론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겨레 2019년 1월 30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0396.html#csidxc6d291ebd33e27ba3a7c7ea7aff9d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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