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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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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공대, 졸업 필수과목은 `창업`…테뉴어 없애 끊임없는 혁신>

폴 로머 뉴욕대 교수의 '차터 시티(Charter City)' 구상은 제2의 홍콩을 만들어 가난한 나라의 경제 발전을 돕자는 취지다. 홍콩이 중국 본토와는 다른 영국의 규칙 아래 금융허브로 성장해 중국 발전의 원동력이 됐듯이 아프리카나 아이티에서도 홍콩의 성공모델을 재현해보자는 것.

2009년 TED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이 아이디어가 세계적인 주목을 끌자 로머 교수에겐 고민이 생겼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한 정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경제학자인 내가 전기 항만 도로를 깔고 행정체계를 구축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 그는 이 고민을 오랜 친구인 리처드 밀러 올린공대 총장에게 털어놨고 밀러 총장은 이 거대 프로젝트를 자신의 제자들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지난 1월 겨울방학 한 달 동안 진행된 올린공대의 '그랜드 챌린지'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학교 공대생들과 인근 밥슨칼리지 경영대생,웰슬리칼리지의 인문대생들이 함께 조를 이뤄 가상의 도시를 설계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단순히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서 나아가 규칙을 만들고 시민들이 공유할 가치 체계를 정립하는 일이었다.

밀러 총장은 "학생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며 "물리학이나 전기공학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적접 커리큘럼 구성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14㎞ 떨어진 니덤(Needham)에 위치한 올린공대는 2002년 개교한 신생 공대다. 학생 수가 337명에 불과하지만 미국 공학 교육의 혁신을 주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 총장인 밀러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공학을 넘어선 공학 교육'이다. 기업가정신,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전통적으로 공대생들에겐 기대하지 않았던 소양들을 함께 가르쳐 공학 혁신가(engineering innovator)를 배출한다는 게 올린공대의 교육 철학이다. 밥슨 웰슬리 등 인근 명문대들과의 학제 간 융합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올린공대만의 특징.'차터 시티' 프로젝트는 이 같은 올린공대의 교육 혁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린공대는 출범 과정부터 남달랐다. 2001년 30명의 우수한 고교 졸업생을 '올린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고용해 교수진과 함께 커리큘럼을 개발토록 했다. 교육 수요자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커리큘럼은 5년에 한 번씩 점검하고 바꾸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교수들에겐 테뉴어(정년 보장)를 주지 않고 5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하도록 했다. 융합 교육을 위해 과 구분도 없앴다. 애초에 '끊임없는 혁신'을 올린공대의 DNA로 각인시킨 셈이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공학

올린공대 1학년생들은 '자연 디자인'이라는 수업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곤충이나 새를 본뜬 장난감을 설계해 만드는 수업이다. '가장 빨리 수영하는 오리'를 만든다고 가장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평가는 인근 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한다. 그들의 눈에 가장 멋져 보이는 작품이 A를 받는다.

올린공대는 이를 '디자인 중심의 실행하고 배우기 교육법(do-learn approach)'이라 부른다. 조지프 헌터 올린공대 대외부총장은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공학,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공학을 체득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린을 졸업하려면 한 개 이상 기업을 창업하고 운영해 봐야 합니다. 기업가정신이야말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공학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죠."(헌터 부총장)

◆공대생 이미지 업그레이드

"대화할 때 당신의 눈이 아닌 구두를 쳐다본다면 그 사람은 엔지니어입니다. "

밀러 총장이 흔히 하는 엔지니어에 대한 농담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샌님'같은 엔지니어는 배출하지 않겠다는 게 올린의 철학이다. 그래서 올린공대는 주말을 이용한 팀워크 면접을 입학 전형에 포함시켰다.

4학년생 대상의 산학협력 커리큘럼인 SCOPE(Senior Consulting Project in Engineering)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4학년생들은 밥슨칼리지 경영대학원(MBA) 학생들과 조를 이뤄 기업이 의뢰하는 연구 및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 학교 4학년생인 앤드루 코츠는 "MIT 졸업생은 나보다 더 많은 공식을 암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2011년 6월 20일 기사, 보스턴=유창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