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천동 강규홍·김성자씨 부부
“손님들 때문에 속상할 때
심리책 보며 마음 다스려”
종일 갇혀있지만 책 통해 세상여행
구두미화원으로 일하는 강규홍·김성자씨 부부가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 구두미화점에서 함께 일과 독서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어른 3명이 앉으면 꽉 차는 4.9㎡ 크기의 ‘구두 수선방’. 25년째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구청삼거리에서 구두수선 일을 하는 강규홍(61), 김성자(51)씨 부부는 그러나 유리문 밖 사람들의 신발만 쳐다보지는 않는다.
“우린 온종일 여기 갇혀 있으니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대리만족한다고 할까요.”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사각형 박스 안에서 일하는 아내 김씨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김씨는 구두수선방에서 찻길 하나 건너면 있는 ‘용꿈 꾸는 작은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1주일에 3~4권씩 빌려 읽은 책이 벌써 400권을 넘겼다. 도서관이 2년4개월 전에 개관했으니, 얼추 헤아려도 한달에 14권씩 읽어내려간 셈이다. 아내를 따라 1년에 7~8권 정도는 본다는 남편 강씨는 “용꿈도서관이 우리 집사람 서재”라며 웃었다.
지난 11일 구두수선방에서 만난 김씨는 책 두 권을 구두수선대 한쪽에 두고 틈틈이 읽고 있었다. 한비야·이어령·고은·하종강 등 ‘멘토’ 17명이 자신들의 삶의 원칙을 말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다소 무거운 내용이라면, 지하철로 갈 만한 가까운 여행지를 소개한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근교여행>은 가벼운 실용서다. 평소 교양·심리서나 에세이를 주로 읽는데, <식객> 같은 만화책도 즐겨 본다. 요즘에는 “날씨가 좋아지면 남편하고 나들이 가려고 여행서적을 많이 본다”고 했다.
김씨는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속상할 때도 있는데, 심리책 같은 것을 보면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도 배운다”고 했다. <강학중 박사의 가족 수업>은 남편이 ‘밖으로 돌던 시절’ 김씨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관악구 구두미화원모임 회장인 남편이 이웃돕기 같은 좋은 일을 한다며 구둣방을 자주 비워서 구둣방을 혼자 지키는 날이 많았어요. 그런데 책에서 ‘남편을 바꾸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라’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척추장애가 있는 134㎝ 작은 키의 여성이 국제사회복지사로 세계를 돌아본 이야기를 쓴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를 인상적으로 읽었다고 했다. “나도 무엇인가 해야겠다 싶은, 그런 자극을 주더라고요.”
김씨는 책을 마음껏 읽게 해준 ‘작은도서관’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동네서점이 다 없어졌잖아요. 시내 대형서점은 쉬는 날에나 갈 수 있어서 근처 중고서점에 가곤 했어요. 용꿈도서관이 생기고 나서는 정말 편해졌지요.” 작은도서관은 33㎡ 면적에 열람석 6석 이상, 1000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을 이른다. 관악구에는 현재 33개의 작은도서관이 있다.
김씨는 작은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게 되면서 집에 쌓아뒀던 책들은 주변에 선물로 나눠준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 책이 150권이나 남아 있다”며 그가 웃었다.
(한겨레 2015년 3월 13일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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