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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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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개발 통한 질낮은 일자리 필요 없고, 삶의 질 나은 지역 두고 서울 집중 막아 주기도

 

» 스위스 기본소득 활동가들이 2013년 베른에서 800만 스위스 인의 기본소득을 상징하는 동전 800만 개를 부려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민에게 매달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자는 안은 12만5000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투표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2016년 부결됐다. 스테판 보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나아질 듯하면서도 다시 조여 오는 코로나19 살이에 너나없이 우울하다. 더워지는 날씨에 마스크 쓰는 것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갑갑하고 마음을 풀 모임도 운동도 여행도 언제까지 미뤄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코로나19로 절망적인 가운데서도 굳이 찾으려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위기와 양극화로 간간이 제기되던 기본소득을 코로나19를 계기로 실험할 수 있었다. 물론 기본소득이라고 부르기에는 결함이 많았지만 적어도 국민에게 기본소득의 효과와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컸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겐 적어도 비빌 언덕은 마련된 셈이다. 기본소득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 <21세기 기본소득>(필리프 판 파레이스, 야니크 판데르보호트 지음, 홍기빈 옮김/ 흐름 출판/ 2017)은 기본소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이미 18세기 말 유럽에서 서서히 확산하기 시작했는데 그 아이디어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제대로 된 명칭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란 재산조사나 근로의무 같은 조건 없이 모두에게, 개인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소득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로 지급된 재난지원금 중 기본소득에 가장 가까운 것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다.

 

» 코로나19는 기본소득을 실험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경기도의 한 점원이 긴급생활지원금을 쓸 수 있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장철규 기자

 

‘무조건적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최종 목표는 1인당 국민총생산의 25%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면 1인당 매월 약 80만 원 정도의 기본소득이 목표다. 그러나 이는 최종적인 목표일 뿐 시행단계에서는 훨씬 더 낮은 금액에서 시작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지속적이고 진정한 기본소득이라고 평가받는 ‘알래스카 영구펀드’의 경우 21세기 들어 연간 평균 1200달러 정도로 알래스카 주민 1인당 국민총생산의 약 2%에 불과한데 한 달에 약 10만 원 정도다. 이렇게 금액만 비교해보면 많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기존의 생활보장제도나 고용보험보다 기본소득이 더 나은 제도라고 볼 이유는 없다. 기본소득이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와 다른 점은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있다.

 

최저소득을 자격조건으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최저소득보장제도인 생계급여 지원처럼 추가소득을 제한하지 않는다. 생계급여 지원은 수급자가 추가노동으로 인해 소득이 발생하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할 위험 때문에 오히려 불안정하거나 소득이 생계급여보다 적은 노동을 꺼리도록 해 노동 진입장벽을 높인다. 또한 추가 노동으로 소득을 올리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빈곤 상태에 머물도록 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렇게 생계급여가 노동의욕을 제한하는 역기능을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제도인 고용보험은 수급자에게 구직노력을 증명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불안정하거나 위험하고 소득이 낮은 노동에 꾸준히 구직자를 공급하는 부작용이 있다. 고용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하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위험하거나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일자리도 꾸준히 구직자를 구할 수 있게 돼, 퇴출되거나 임금이 조정되어야 할 질 낮은 일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 서울 남부에서 강남으로 운행하는 6411번 시내버스 첫차는 새벽부터 청소노동자로 만원을 이룬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지만 낮은 평가를 받는 청소노동의 가치는 기본소득으로 높아질 것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노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역할은 다르지만 이렇게 생계급여와 고용보험은 노동에 대한 주도권을 노동자 자신이 갖는 것이 아니라 자본, 정부 등 기존의 권력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노동할 의사나 현재의 노동 여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임금을 정할 때 더 나은 협상 위치에 설 수 있고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에 육아를 포함한 돌봄 노동, 문화예술활동, 시민운동 등 비용으로는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삶의 가치를 높이는 노동에 많은 사람의 참여를 늘릴 수 있다. 또한 고단하거나 위험하지만 사회에는 반드시 필요한 청소, 돌봄 노동 등이 재평가받게 된다.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지금처럼 낮은 임금으로 유지되는 일자리는 구직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회에서 필요한 일자리는 임금이 오르거나 처우가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기본소득이 노동의 자유와 가치회복을 도울 수 있는 힘은 ‘무조건’에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시민들은 물론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시민들에게까지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 또한 ‘무조건’에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로 상징되는 신성화된 노동에 대한 철학은 생산의 단위로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다. 따라서 소득은 각자의 생산기여도에 따라 분배되어야 하므로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사회의 가치관과 정의를 흔드는 일로 여겨진다. 생산에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부자가 노동하지 않는 것은 여가로 포장되지만 노동계급이 누리는 여가는 게으름으로 노동자 자신에게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기본소득이 다른 사회보장제도와의 경쟁에서 탈락해온 이유가 바로 이러한 뿌리 깊은 사회 저변에 깔린 노동관에 있다.

 

»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016년 4월 30일 스위스 바젤에서 '로봇에도 기본소득을 주라'며 기본소득을 희화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

 

잊혀졌던 기본소득이 다시 불황과 실업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기술의 발달과 성장의 한계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로 시작된 로봇, 컴퓨터를 통한 새로운 자동화의 물결은 일반 노동자는 물론 숙련 노동과 정신노동까지 대규모로 대체가 가능해졌다. 생산량을 결정하는데 노동 단위량의 기여도는 급격히 줄고 기술과 자본의 영향은 크게 늘면서 노동의 가치평가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자동화의 물결은 성장이 고용의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시대를 끝내버렸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젊은 직장인들이 코로나19로 불붙은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현상이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갭투자에 나선 것도 성장과 생산에 필요한 것은 노동이 아니라 기술과 자본이 된 사회에서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나마 ‘개미 자본가’들은 소규모 투기에라도 뛰어들 수 있지만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에서도 복지혜택에서도 점점 밀려나면서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기술의 발달과 양극화의 심화가 오래전 경쟁에서 밀려났던 아이디어였던 기본소득을 소환했다. 그러나 기득권층은 물론 노동의 성실함을 도덕적 규범이 믿어왔던 많은 시민의 거부감은 ‘무조건 기본소득’을 4차 산업시대의 현실적인 대안이라기보다는 먼 훗날에나 가능할 몽상으로 치부하게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재앙은 ‘무조건 기본소득’이라는 오래된 몽상을 실제 정책으로 끌어냈다. 물론 재난지원금이 기본소득의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금지원이 불황 타개에 미치는 효과는 보여준 셈이다. 20세기의 뉴딜정책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토목공사에만 쏟아붓던 불황 타개책의 새로운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이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불황 극복책으로 내세운 ‘4대강 사업’ 대신 차라리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 주라”던 환경단체조차 실현성을 믿지 않던 구호가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정책이 되었다.

 

» 4대강을 파헤치느라 25조원을 쓴 토목사업 대신 돈을 국민에게 나눠준다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환경단체가 펴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제불황 타개책으로 뉴딜 대신 현금 지급을 주장했던 기본소득 유사 사례가 4대강 개발이라는 환경문제였던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사실 기본소득을 사회적 의제로 삼았던 많은 국가의 경험을 살펴보면 자산가나 고위소득자는 물론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에서조차 기본소득에 반대할 때 유일하게 기본소득을 변함없이 지지한 세력은 생태주의자들이었다.

 

이는 생태주의자 혹은 기후변화 지지자들이 지구의 자원과 환경을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고 인식하는 것과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부를 인류가 공동으로 생산해낸 자원이라고 인식하는 같은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인류 공동의 재산인 환경을 남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를 유발한 국가, 계층, 세대가 책임져야 하다는 것에는 세계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명 질서가 인간에게, 수렵, 어로, 채집, 목축이라는 자연적 생계활동을 빼앗아갔다면 토지를 가져간 계급은 최소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계급에 충분한 생계수단을 빚지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충분한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생각한다. 또한 점점 더 부를 생산하는데 자연환경과 함께 사회기반 시설, 국가정책과 같은 사회환경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한 국가의 국민이 소득을 나누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생태주의자들이 기본소득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성장의 한계에 대해 일찍부터 주장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성장을 통해 고용 확대와 부의 재분배가 이뤄질 수 없다고 믿는 것처럼 생태주의자들도 성장으로는 삶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고 믿는다. 오랫동안 부의 재분배나 복지의 확대, 삶의 질 개선에서 성장이 담당해 왔던 역할을 이제 다른 제도가 뒷받침할 때가 된 것이다. 불황을 타개할 만능 요술봉처럼 쓰여왔던 ‘뉴딜’ 대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소득주도 성장’이나 ‘기본소득’이 한계에 봉착한 성장 대신 불황을 타개할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 기본소득은 무한 성장 신화를 막는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를 내뿜는 석탄환력발전을 더는 짓지 않아도 된다. 그린피스가 2015년 인천 웅진국 영흥화력발전소에 '침묵의 살인자 석탄발전 out'이라는 문구를 레이저로 쏘고 있다. 인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본소득은 단지 복지정책만은 아니다. 무조건 기본소득의 핵심은 ‘노동의 자유’ 혹은 ‘노동의 권리회복’이라는 삶의 가치와 삶의 목표에 관한 문제다. 기본소득은 부의 재분배를 위해 고용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어 고용을 핑계로 한 ‘무한한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장에 따른 불가피한 부작용으로 여겨졌던 환경파괴나 기후변화 문제 등을 해결할 대안이기도 하다.

 

질 낮은 일자리라도 확보하느라 원자력발전소, 석탄화력발전은 물론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산업단지라도 우선 유치하고, 새만금과 같은 천혜의 자원을 막개발해서라도 지역을 살려야 한다는 조바심도 천천히 돌아볼 시간을 확보하는 데 기본소득은 도움이 된다. 같은 소득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굳이 구직에 유리한 수도권으로만 몰려드는 수도권집중을 약화해 지역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기본소득으로 노동의 선택권을 노동자가 회복하게 되면 청소나 돌봄 노동과 같이 사회에는 꼭 필요하지만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던 노동의 가치는 재평가될 수 있다. 생계비용 때문에 열악한 조건의 노동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조급함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숲과 강과 바다를 유해산업과 싸구려 막개발로 바꿔서라도 인구와 산업을 유치하려는 소멸해가는 지역의 절박함도 내려놓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성장 위주의 기존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금세기 안에 파국을 몰고 올 기후변화를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개인적인 여러 가지 실천 방법이 제시되고 있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업구조개편이나 국토이용구조개편과 같은 대규모의 구조개혁을 사회가 감당해내야 한다. 이러한 구조개혁을 머뭇거리게 하는 생존의 위기, 고용의 위기를 막아낼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기본소득이 해줄 수 있다.

 

» 기본소득은 국가가 온 국민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것과 같다. 그림 김영훈

 

‘무조건 기본소득’이란 오랜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않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기술도 사회적 환경도 또한 자연적 위기도 변화됐다. 고용위기도 기후변화도 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서, 사는 방식을 바꿔볼 수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라도 다시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한겨레 2020년 7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