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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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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ㅣ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요즘 기본소득이 화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긴급재난수당이 제기될 때부터 기본소득이 함께 입에 오르내리더니, 총선에 참패한 미래통합당이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채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새삼 뜨거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이제 대한민국에서도 극우 정당까지 나서서 보편적 기본소득 방안을 검토한다니 놀랄 만한 일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덕분에 한국 사회의 이념-정책 스펙트럼이 갑자기 전에 없이 확장된 것일까. 어쨌든 기본소득 구상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들에게는 고무적인 상황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왜 그런가?

 

기본소득 논의에 정작 기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에 좌파를 중심으로 기본소득론이 처음 확산될 때 이는 또 다른 중대한 과제와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그것은 노동시간의 전반적이고 획기적인 단축이었다. 자동화로 사회에 필요한 노동시간 총량이 줄어드는 만큼 각자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단축된 노동시간을 모두가 함께 나눈다면, 자유시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자유시간은 모든 시민이 자기 잠재력을 발전시켜나가는 토대가 될 것이다. 다만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드니 노동으로 얻는 수입 역시 줄어들기 쉽다. 이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모든 시민에게 제공되는 또 다른 수입원, 기본소득이다.또한 기본소득의 초기 주창자들은 이 제도가 반드시 또 다른 요소의 성장과 함께하길 기대했다. 노동 대중의 대항력과 협상력이 그것이었다. 기본소득론자들이 바란 것은 국가가 주는 기본소득에 감지덕지하는 시민들이 기본소득 빼고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세상에 더 잘 적응해가는 광경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기본소득이란 차라리 보편적인 파업기금이었다. 기본소득을 통해 ‘굶어 죽을 자유’에서 얼마간 벗어난 사람들은 마땅히 더 강력한 자발적 결사체들로 단결해야 한다. 이 힘으로 국가와 자본에 더 깊숙이 개입하고 이들을 철저히 바꿔나가야 한다.여기까지 이야기해야 ‘기본소득’이다. ‘기본’이 제대로 갖춰진 기본소득 논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에는 이런 ‘기본’이 빠져 있다. 기본소득은 한국 사회가 선택할 만한 여러 복지 모델 가운데 하나로만 다뤄지며, 쟁점은 오직 이를 뒷받침할 재정의 크기나 정책 집행 효율성 같은 것들뿐이다. 이런 종류의 쟁점들을 판단하고 선택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결국 엘리트들이다. 미래통합당까지 기본소득을 입에 담기 시작했다는 것은 다만 극우 성향 엘리트들까지 이 대열에 끼어들려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제6공화국에서 진보적인 정책 구상의 운명은 늘 이러했다. 10여년 전 보편복지 논쟁 때도 그랬고, 지금 기본소득 논란에서도 그렇다. 항상, 가장 중요한 한가지 관심사가 빠져 있다. 매번 알맹이가 빠진 채 껍데기만 화려하게 빛난다. 의도적으로 제거된 그 핵심은 바로 “누가 누구를?”이라는 물음이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 누가 누구를 제압하는가? 즉, 지배와 그 역전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문제의식이다.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드러나듯이, 오늘날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자본-권력-지식 복합체다. 부와 권력, 지식, 어느 방면으로도 기득권에 접근하지 못하는 시민들과 지배자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 기후 재앙을 되돌릴 시간이 거의 남지 않은 것처럼, 지배자들과 대다수 시민의 거리가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지지 않게 막을 시간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이런 절박한 역사적 순간일수록 우리는 정색하고 물어야 한다. 자본-권력-지식 복합체에 맞서 민중이 회복력과 대항력을 갖추려면 어떤 종합 처방이 필요한가? 민주주의가 자멸하지 않도록 권력을 새롭게 재배열하려면 지금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의 한 구성요소로서만 기본소득은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9951.html?_fr=mt5#csidx2c68275ae2dc37494a56f97b1096fa3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기본이 빠진 기본소득 논의

장석준 ㅣ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요즘 기본소득이 화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긴급재난수당이 제기될 때부터 기본소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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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0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