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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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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9호)

【 <이공계 출신 고위직 확대> 정책의 허와 실 】



서울경제 2009년 8월 19일 기사를 보니까 ‘정부는 고위공무원단 직위의 이공계 인력 임용 비중을 현재의 25.5%에서 오는 2012년에 3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끌어올리기로 확정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기업에서나 공직에서나 이공계는 실무진일 때는 비율이 높다가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점차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 고위직에 이공계 비율을 높여야 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약간은 찜찜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식으로 ‘이공계가 능력이 없어서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공계가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부 고위직에 이공계 비율을 높였다가 오히려 부작용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꼭 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되어 제가 겪은 경험담을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사회 초년을 강원도 삼척에 있는 동양시멘트 삼척공장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삼척공장에는 약 1,00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졸 이상의 기술직은 대략 50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직이 맡고 있는 부장급은 세 자리 정도이고, 임원급은 공장장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술직에 대한 인사적체가 문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1980년 중반 경에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생산시설 증설을 거듭하던 시멘트 회사들은 수요 창출에 고민하다가 레미콘 공장들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늘어나는 레미콘 공장 때문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되자 인사적체 문제로 고민하던 삼척공장에서는 고참 부장과 차장급들을 신설되는 레미콘 공장의 공장장으로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고참 부장들과 차장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신진 기술자들로 채우게 되니 자연스럽게 승진 인사가 계속되면서 기술자들의 사기가 한없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레미콘 공장의 공장장은 공장을 기술적으로 잘 돌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 임무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레미콘 공장의 공장장의 주 임무는 판매실적을 올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민원도 해결하고, 관공서와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삼척공장의 근무자들과는 전혀 다른 레미콘 기사 등 근로자들과의 관계도 잘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삼척공장 기술자 출신 공장장들은 그런 역할은 잘 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1년도 안 돼서 레미콘 공장의 공장장들은 대부분 인문계 출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삼척공장에서 그 사람들을 다시 받아줄 수도 없어서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불만은 좀 있었을지라도 정년까지는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던 기술자들이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것이죠.



제가 회사를 그만 두고 유학을 결심한 것도 기술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운명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이공계가 홀대받는 것이 제도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 이공계가 그런 대접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진에서 필요한 하드 스킬(전공 지식)에 파묻혀서, 정작 고위직에 올라갔을 때 필요한 소프트 스킬을 갖추는 데 소홀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공계가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런 개선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이공계 기술자들도 그에 걸맞은 소프트 스킬을 기르는 노력도 병행이 되어야 합니다.

동양시멘트 레미콘 공장의 공장장으로 나갔던 엔지니어들처럼, 괜히 고위직에 올라갔다가 정년도 못 채우고 쫓겨나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공계 인들이 대접받기 위해서는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우리 이공계들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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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이나 http://cafe.daum.net/on-carrier/에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제 네 번째 책이 다음 주 중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우선 표지 디자인을 소개합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새로운 시대 변화에 따라 취업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입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다음에 다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공계 출신 고위직 확대
공무원 특채 방안도 추진… 내년 R&D 투자 10% 늘려


앞으로 이공계 출신 공무원의 고위공무원직 진출이 확대되고 기술계 고교와 전문ㆍ기술대학에서 추천하는 이공계 인재를 공무원으로 특별 채용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는 올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13조5,000억원 규모가 투입될 예정이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1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제31회 본회의를 열어 ‘공직 내 이공계 인력지원 종합계획안’을 비롯한 3개 안건을 심의ㆍ확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 링크 참조

http://economy.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politics/200908/e2009081918052193130.htm&ver=v002

기초 원천 연구 투자 비중 내년 3-4%P 확대
미래성장 유망 중기 지원도 대폭 늘리기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ㆍ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언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녹색기술 R&D ▦신성장동력 ▦기초ㆍ원천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에 내년도 정부 R&D 역량을 집중시키기로 했다.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예산 증액보다 중요한 것은 효과적으로 예산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듯이 이날 위원회 결정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에 따라 녹색기술에 대해서는 27대 중점육성기술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신성장동력에 관해서는 13개 분야 산업을 조기 활성화하기 위해 투자규모를 대폭 늘리는 한편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기초ㆍ원천 연구에 대한 투자도 집중적으로 늘어난다. 기초연구 투자비중은 올해 29.3%에서 내년에는 31~32%로, 원천연구 투자비중은 올해 9.6%에서 11~12%로 각각 3~4%포인트씩 증가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 링크 참조

http://thumb.paoin.com/paoweb/common/flash/ArticleViewer02.swf?CNo=63527343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8호)

【 꿈을 꾸고 실현하는 엔지니어가 행복하다 】



저는 지난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1박2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습니다.

사실은 8월 14일 밤 9시 45분 여수행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8월 15일 새벽 2시 21분에 도착해서 산행을 시작했으니까, 2박 3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8월 15일 새벽 구례구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오른 것이 새벽 3시 반.

4시 반 경에 노고단 산장에 도착해서 아침밥을 해 먹고, 노고단에서 6시 경에 일출을 보고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15일 밤은 벽소령 산장에서 1박하고, 16일에 세석 산장, 장터목 산장을 거쳐 중산리로 내려왔습니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제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산을 좋아하는 편이라 주말이면 집 근처에 있는 청계산, 구룡산, 대모산 등을 자주 다니는 편이고 가끔 경기도에 있는 산들을 다니고 있습니다.

또 설악산, 한라산 등도 올라 가 봤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은 최소 1박2일은 해야 종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준비가 필요한 산이라서 이제껏 한 번도 올라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한 번은 올라보겠다고 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리산을 종주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입니다.

틈틈이 지리산 종주 관련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수집하고, 등산 관련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말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등산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1시간 이상씩 걷기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링크나우(www.linknow.kr)에서 등산 관련 커뮤니티인 <산사랑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아무래도 등산 전문가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지리산 종주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더불어 혹시 지리산 종주 계획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산사랑클럽>에서 7월경에 지리산 종주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획이 게시되자마자 저는 1착으로 신청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청하고 나서 열여덟(18)분이 지리산 종주에 참여 신청을 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한 것이죠.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 1박2일의 지리산 종주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해보는(?) 지리산 종주를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힐난하실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실현하는 분들은 그 꿈이 실현되었을 때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등산을 자주 다니시는 분들에게 지리산 종주는 약간 힘든 등반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그걸 꿈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저에게는 크나큰 감격이고 희열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지리산 종주를 통해 가장 평범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첫째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꿈을 갖고 실현하도록 할수록 행복감은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간절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꼭 이루어진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간은 0.4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소원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면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겠습니까?



둘째는 꿈을 갖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지리산 종주의 꿈만 가지고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더라면 중간에 구급 헬리콥터에 실려 내려올 수도 있었겠죠.

지리산 종주를 대비해서 작년부터 꾸준한 체력 단련을 함으로써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엔지니어 여러분!

꿈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꿈을 가져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보시죠.

저는 엔지니어 여러분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돕고자 하는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7호)

【 소통하는 엔지니어가 성공한다 】



“김 과장, 이 보고서 나 보고 다 읽어 보라는 거야?”

나는 내 앞에 놓인 두꺼운 보고서를 보고 기가 막혀서 김 과장에게 말했습니다.



제 회사는 하수 슬러지 재활용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업에 대한 사업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관련 기술 개발 현황, 경쟁 회사 동향, 환경부 정책 방향 등을 조사해 올리도록 김 과장에게 2주 전에 지시했는데, 김 과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보고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보고서는 인터넷을 뒤져서 편집을 했는지, 서론부터 시작을 해서 경쟁 회사의 카탈로그, 환경부의 통계 자료 등 정말 책을 한 권 내도 될 정도의 분량을 출력해서 제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보고서에는 김 과장의 의견이나 내용에 대한 요약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 과장이 하는 말이 더욱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말씀하신 대로 현황 조사를 했고요, 판단은 사장님께서 하라고 한 겁니다.”

“그래도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한두 장 정도로 요약을 해야지, 이 두꺼운 내용을 나 보고 다 읽으라는 거야? 그리고 김 과장의 의견도 들어 있어야지.”

“요약을 하면 내용이 제대로 다 전달이 안 될 것 같고, 또 어차피 제 의견을 제시해도 제 의견과 상관없이 판단은 사장님이 하실 거 아닙니까?”

“……”



이런 문제는 비단 제 회사의 김 과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학생들에게 숙제로 리포트를 제출하도록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강의하던 ‘기술이 만드는 미래 세상’과 관련하여 특정 분야(예를 들어 환경, 가정 등)에 대한 미래 모습을 조사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면, 인터넷에서 뒤져서 여러 가지를 짜깁기해서 제출을 하는데, 내용이 산만하고 자신의 의견은 거의 없습니다.



정보가 넘치는 지식정보화 사회인 요즘은 정보 자체를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서 가치를 창출하느냐와 그 정보로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식정보화 사회 이전인 산업사회에서는 지식정보 자체가 힘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식이나 정보를 너도나도 찾아다녔기 때문에 그 정보나 지식을 구태여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걸 찾는 사람들이 알아서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이나 정보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통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내가 설득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엔지니어들은 과거 산업 사회에서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힘을 쓰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 사회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 관련 전공 지식을 구태여 경영자나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제품이나 서비스에 반영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영자나 소비자도 기술을 알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기술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엔지니어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녹아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요즘 과학이나 기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을 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특수한 사람들만의 몫으로 남겨 두기에는 대중과의 소통, 경영자나 소비자들과의 소통이 너무 중요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엔지니어들, 특히 기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기술 관련 전공 지식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리학‧경영학‧협상 기술 등을 익혀서 대중이나 경영자, 소비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소통의 중요성은 요즘 새로운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에 융합(convergence)이 중요해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기술 분야와의 융합을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이해와 내 분야와의 연계를 통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기술이 기술 자체로써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경제학, 심리학 등 인문학과 사회학 분야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제 가지고 있는 기술을 알아주지 않는 경영진과 소비자를 원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기술의 가치를 알리는 소통의 엔지니어들이 성공하는 세상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6호)

【이순신 장군의 전승 전략을 배우자】

지난 번 뉴스레터에 소개드린 이순신 장군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중에 23전23승(무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기록은 세계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앞으로 깨지지 않을 겁니다.

더구나 전력도 열세이고, 조정의 지원도 받지 못한 불리한 상황에서 전승의 기록을 세운 것이기에 이순신 장군의 능력은 더욱 빛납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23전23승의 놀라운 전과를 거둔 비결은 무엇일까요?

물론 그 요인으로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저는 컨버전스와 강점 살리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컨버전스 전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원래 이순신 장군은 무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문신으로 몇 번 과거 시험을 봤으나 낙방하였는데, 나이도 차고 더 이상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서 무과 시험을 보고 무신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사회에서의 무신은 천대받고 있었기 때문에 글께나 읽는 선비들은 무신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무신들은 당연히 글보다는 싸움 그 자체에 능하였습니다.

싸움을 잘 하는 무신들은 단순히 변방만 지키거나 성문 보초를 서거나 시키는 임무만 수행하는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쟁은 싸움을 잘하는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전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무신들 중에는 병서를 읽고 전략을 짤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바로 문신이었기 때문에 병서를 읽고 작전을 짜면서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문신이라는 면과 무신이라는 면을 컨버전스 하면서 그토록 눈부신 전과를 거두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무신으로서도 문신으로서도 당시 조선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뛰어난 수준이 아니었지만, 무신과 문신을 컨버전스 시킴으로써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신과 무신이라는 컨버전스 전략을 잘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군과 일본군의 무기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조선군 무기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도록 작전을 짜서 전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당시 조선군의 무기는 대포와 활이었습니다.

장거리에서는 대포, 단거리에서는 활을 사용했는데, 대포는 일본군에 비해 우수한 반면에 활은 일본군 조총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대포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대포를 동원한 전투를 주로 했습니다.

또한 일본군의 배는 빠르기는 하지만 충돌에 약한 단점이 있는 점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대포로 파손 시킨 뒤에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군의 배로 충돌시켜 침몰시켰습니다.

물론 홈그라운드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한 점도 승리의 큰 요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이순신 장군의 23전 전승의 비결은 이순신 장군의 문신과 무신이라는 능력을 컨버전스한 것과 더불어 일본 수군에 비교하여 조선 수군이 가지고 있던 여러 강점들을 살린 것입니다.

전반적으로는 조선 수군의 전력이 일본 수군에 비해 열세였지만, 조선 수군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잘 살리자 전승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방 대학을 다니면서 강연을 하다보면 공대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수학, 과학 등의 능력 부족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지방대 학생들의 단점인 부족한 수학, 과학 실력을 무조건 끌어올리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찾아내어 컨버전스 시키는 노력이 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서울의 일류 대학 학생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인적 네트워크 형성 능력, 소통 능력 등을 평범한 공대 전공 능력과 컨버전스 시킨다면 이순신 장군처럼 뛰어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특히 요즘은 다양한 인재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처럼 무조건 공부를 잘 하는 인재만이 필요한 세상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요즘은 기업도 그런 다양한 컨버전스 된 능력을 가진 창의적인 인재를 뽑기 위해 면접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전공만 공부시켜서 내보낸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차별화된 인재를 만들어서 내보낼까하는 생각을 한다면 지방대학 학생들에게도 분명히 성공의 길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부족한 문신으로서의 실력을 한탄만 하고 있었더라면 23전 전승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수학과 과학 공부를 좀 못하는 학생들도 이순신 장군처럼 전승하는 엔지니어로 키울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컨버전스와 강점 살리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5호)

【 이순신 장군처럼 로비하는 엔지니어가 되자 】



며칠 전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만든 <이순신은 로비의 귀재다>라는 동영상 강의를 보았습니다.

이 동영상을 선택해서 보게 된 이유는 제목에서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로비’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로비’라는 부정적이고 거무칙칙한 단어가 ‘이순신 장군’의 깨끗한 이미지와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그런데 동영상을 보고 나니까 정말 ‘이순신 장군은 로비의 귀재다’라는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 기지가 있던 충무 근처에는 통영 공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관할이었죠.

이순신 장군은 여기서 나오는 명품 부채를 서울의 여러 대갓집 마님들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또 대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예쁜 검들을 만들도록 해서 대신들에게 선물 했습니다.



여기까지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윗사람들에게 아부하려고 선물까지 하다니, 이순신 장군도 별 거 없구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 선물과 함께 서신을 동봉했다는 겁니다.

그 서신에는 이순신 장군이 파악하고 있는 일본의 정세와 왜구들의 움직임, 또 조선 수군의 전쟁 대비 상황을 알리는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하면서 자신의 출세 자리를 부탁했던 것이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죠.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선물과 더불어 서신을 보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시 조선 조정에서 수군을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만약 수군이 폐지됐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 등골이 오싹해 집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이 쳐들어 올 것을 예견하고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비해 절대 열세에 있던 조선의 군사력을 그나마 보완해 줄 수 있는 수군의 필요성에 대해 조정의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설명하고 납득을 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 거죠.



한 번 생각을 해 보시죠.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조정 대신들의 무능만을 탓하고, 조정 대신들에게 로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까요?

이순신 장군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전투가 끝나고 현장을 수습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조정에 장궤를 써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장수들도 장궤를 썼고, 그게 의무였지만, 이순신 장군은 아주 정성들여 상세하게 전쟁 상황을 조정에 알렸습니다.

전투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 결정권을 가진 조정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과 공감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하고 엔지니어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렇게 장황한 얘기를 늘어놓는가 하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엔지니어들도 기술 개발 자체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기술의 수요처인 고객, 또 경영진과의 공감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과 경영진이 기술의 중요성을 몰라본다고 탓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도록 우리 엔지니어들이 로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은 기술 자체가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기술을 통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 가치는 엔지니어인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판단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고객인 소비자, 경영진에게 기술의 중요성을 설득시켜야 하는 겁니다.



이순신 장군이 아무리 수군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을 해도, 조선 조정에서 수군을 해체해야 한다고 하면 그 결정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중요하다고 해도, 고객과 경영진이 그 기술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면 그 결정이 우선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너무나 뻔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선 조정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한 것처럼, 우리 엔지니어들도 기술을 알아주지 않는 소비자와 경영진에게 불평을 하기보다는 기술의 가치를 알리려는 로비가 필요하다는 거죠.



이순신 장군이 편지만 보내지 않고, 조정 대신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선물을 같이 보냈듯이, 우리 엔지니어들도 기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순신 장군이 조정 대신들의 마님들에게 명품 부채를 보내서 호의적인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 엔지니어들도 기술적인 전문 용어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4호)

【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생각을 가진 엔지니어가 필요한 세상이다. 】



배우 출신의 정치가로 현재 가장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놀드 슈워제네거다.

우리는 그를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근육질의 사나이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허리우드의 잘 나가는 배우로 만족하지 않고 자금은 정치가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이후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이 가장 높은 배우 출신 정치가로 꼽히고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 주지사가 된 것은 부인인 케네디 가문의 마리아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가로 성공하기 위해 케네디 가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배우가 되었고, 또 배우가 되기 위해 보디빌딩을 열심히 해서 미스터 유니버스가 된 것도 다 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거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1947년 유럽의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그의 집은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폭력적이었다고 한다.

그의 형은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렸지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생각했다.

그리고 몸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보디빌딩을 선택해서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그를 발판으로 배우가 되고, 배우로 유명해 져서 케네디 가의 딸과 결혼한 다음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을 지금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일, 특히 불행이 닥치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형처럼 거기에 무릎을 꿇거나,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그에 맞서 극복해 나가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당연히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선택한 길이다.


세상이 나한테 맞추지 않는다고 탓하는 천동설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킴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동설을 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긍정적인 생각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가난한 집안 환경을 탓하거나 주정뱅이면서 폭력적인 아버지를 탓하고 주저앉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무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까를 생각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내가 시멘트 회사를 다닐 때 시멘트, 모래, 자갈을 미리 섞어서 포장한 다음에 물만 부으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레미콘이 일반화되면서, 가정에서의 소소한 수리 요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요즘 시멘트 회사마다 그런 제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 제안이 거부되었다.

이유는 엔지니어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모래나 자갈에 있는 수분이 시멘트와 반응하면 안 되는데, 그 수분을 날려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 경제성이 안 나온다는 둥 안 되는 이유만 제시되었다.


엔지니어들과 업무를 하다보면 가장 답답한 점이 ‘안 된다’로부터 시작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나는 이것을 ‘엔지니어들의 오차의 한계’라고 부른다.

엔지니어들은 오차가 작을수록 좋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차가 가장 작은 경우는 어떤 때인가?

바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때이다.

무언가 일을 저지르면 오차는 발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무언가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어떤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10개가 있다고 할 때, 안 되는 이유는 그 중에 한두 가지 이유만 대도 충분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 되도록 하려면 10개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얘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일을 저질러야 한다.

나의 작은 변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변화하면서 생기는 오차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오차 없는 완벽한 엔지니어가 아니라, 오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엔지니어가 필요한 세상이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3호)

【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 】



큰 군함이 안개 속을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습니다.

키를 잡고 있던 장교가 함장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이 속도와 방향으로 가면 20분 후에는 앞에 있는 배와 충돌을 하게 됩니다.”


그 보고를 받고 함장은 무전을 치도록 했습니다.

“여기는 엔터프라이즈 호, 무전을 받는 사람은 소속을 밝혀라.”

“저는 해병 하사 존 브라운입니다.”

“여기는 엔터프라이즈 호. 하사의 배를 남쪽으로 10도 돌리도록 하라.”

“안 됩니다. 엔터프라이즈 호를 북쪽으로 10도 돌리도록 하십시오.”


무전 대화를 듣고 있던 함장이 무전기를 빼앗아서 말했습니다.

“나는 엔터프라이즈 호 함장이다. 하사의 배를 남쪽으로 10도 돌리도록 하라.”

“함장님. 저는 등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함장님의 배를 북쪽으로 10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움직이는 각도를 남쪽으로 10도 돌리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등대와 같아서 내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세상과 충돌하지 않으려면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북쪽으로 10도 돌려야 합니다.



“천동설을 믿는가, 지동설을 믿는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지금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천동설을 철석같이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돌리려고 합니다.

지동설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중심으로 내가 돕니다.


제가 부부 문제에 대해 강연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남녀의 의식 차이를 설명하면서 남편은 아내의 특성을 이해하고, 아내는 남편의 특성을 이해해야 서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남편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바로 그거예요. 야, 이거 우리 집사람에게 꼭 얘기해 줘야 되는데. 우리 집사람은 남자의 특성을 몰라서 나를 이해 못해요.”

남편들은 제 말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아내들이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구실로 삼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자 하는 얘기는 남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남편들이 아내들이 하는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또 아내가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부부 갈등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부 갈등이 늘어나게 됩니다.

부부 갈등을 줄이려면, 부부가 제 말을 듣고 상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변화해야 합니다.

나를 이해해 달라고 얘기할 게 아니라, 내가 상대를 이해하도록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갈등의 근원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세상은 엔지니어들의 전성시대였던 과거 산업 사회를 넘어 현재의 지식 사회를 거쳐 이제 감성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엔지니어들의 교육 방식과 사고 체계는 아직도 과거 산업 사회에 맞춰져 있습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엔지니어들은 그에 맞춰서 변화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공계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이공계 위기 해결책이 엔지니어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세상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엔지니어가 정당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고위 공직에 이공계 비율을 높여야 한다.” 등등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이 지식 사회에 맞게, 더 나아가 감성 사회에 맞게 변화한다면 세상은 더 많은 엔지니어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엔지니어가 대접 받게 될 것이고, 고위 공직에도 엔지니어들의 비율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엔지니어가 변화하면 세상이 변화된다는 논리입니다.


제가 이렇게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를 보내는 이유도 바로 엔지니어들이 세상의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학교육 혁신과 공학 인증 운동도 엔지니어들이 세상 변화에 맞춰 변화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엔지니어들의 의식 변화 운동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기대해 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행복한 엔지니어를 위한 뉴스레터 (제22호)

【 공감하는 엔지니어는 상대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다. 】


전 직장에 근무하던 친한 동료 몇 사람과 얼마 전에 중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저는 최근까지 근 1년 반 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아서 걱정을 하면서 골프장에 들어섰는데, 마침 옆에 연습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급하게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너무 급하게 골프채를 휘두르다 보니까, 힘이 들어가서 골프채를 잡는 오른손 엄지 부분의 피부가 벗겨진 것이었습니다.

골프채를 잡는 부분의 피부가 벗겨져서 쓰라렸기 때문에 골프채를 휘두를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캐디와 직원들에게 일회용 밴드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모두가 없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와 같이 갔던 일행 중의 한 명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뒤에 붙어 있던 일회용 밴드를 떼서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밴드를 핸드폰에 붙이고 다니느냐고 했더니 자신은 골프 접대를 매주 하기 때문에 제 경우와 같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일회용 밴드 한 장씩을 핸드폰 뒤에 붙이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 저런 자세로 남을 세심하게 배려하기 때문에 저런 위치까지 올라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기술자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현재는 대그룹 홍보실에서 임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술자로서 구색을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회장 직속으로 실세에 속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주장하고 있는 기술자 변신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그 친구 말이 회장을 보좌할 때 큰일도 중요하지만, 세심한 배려가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그 날 그 친구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서 일 년 반 만에 친 골프치고는 점수가 괜찮게 나왔습니다.


저는 골프가 끝나고, 그 친구에게 접대의 요령(?)에 대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홍보실의 업무 특성 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매일 술 접대를 하고, 주말마다 골프 접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접대에서는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제 경우와 같이 손에 상처가 나서 곤란을 겪을 때, 일회용 밴드를 준비했다가 제공하는 세심함이 상대를 훨씬 더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골프가 끝난 다음에도 술자리로 더 이어지지 않도록 얼른 선물을 사서 안겨주면서, ‘주말에 사모님의 귀중한 시간을 제가 뺏었으니까, 죄송해서 사모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빨리 가도록 유도한다고 합니다.

돈도 절약하고 가족애가 깊은 사람이라는 인상도 심어주는 거죠.


엔지니어들은 접대를 잘 못한다고 합니다.

물론 접대를 잘 못해도 업무에 지장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꼭 직접적인 접대를 하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엔지니어에게 접대하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접대도 일종의 소통이고, 감정 교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은 과거의 산업 사회를 거쳐, 현재의 지식 사회를 지나 이제 서서히 감성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감성 사회에서는 기술이나 지식보다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식의 특성을 가진 기능이나 기술보다는 감성의 특성을 가진 디자인이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지식의 특성을 가진 합리와 설득보다는 감성의 특성을 가진 공감과 느낌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상징인 기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감성의 상징인 그림이 중요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산업 사회의 주역이었던 우리 엔지니어들은 기술과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강력한 경쟁력을 자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성 사회에서는 기술과 지식에 감성을 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가정에서는 가족과,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감성 교류를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고객 접대도 감성 교류를 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한 가지 예로 여기 소개를 드린 겁니다.


술 마시고, 골프를 치는 접대를 꼭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상대와 공감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성 공감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그 배려는 세심함이 받혀줄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