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699 호)
【 스위스 피르스트 여행 】
인터라켄 근처에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는 융프라우, 피르스트, 쉴트호른을 들 수 있다. 이번 여행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 일정이었지만, 인터라켄에 금요일 저녁에 도착했기 때문에, 인터라켄 여행은 토요일 하루와 일요일 이른 오후까지로 하루 반의 일정에 불과했다. 따라서 인터라켄에서의 여행 일정은 이 세 곳을 최대한 둘러보는 것으로 잡았다. 토요일에 융프라우와 피르스트를 보고, 일요일 쉴트호른을 구경한 다음 오후 늦게 윈터투어로 기차를 타고 가는 일정이었다.
토요일 오전에 융프라우를 보고나서 피르스트로 가기 위해 그린덴발트에 도착한 다음, 피르스트로 가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마을을 통과해 500여 미터를 걸었다. 피르스트는 알파벳으로 ‘FIRST’이니 영어 발음으로는 ‘훠스트’인데, 독일식 발음으로 읽으니 ‘피르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피르스트가 이름만큼이나 ‘천하제일경(?)’인지 갑자기 기대감이 커졌다. 결론적으로 피르스트가 천하제일경은 아니었지만, 나름 가볼만 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판단이 들긴 했다. 곤돌라를 타고 피르스트 산 정상까지 올라간 다음, 빙하가 덥힌 산봉우리들을 바라볼 수 있고, 2시간 정도 시간을 내면 바흐알프제 호수까지 다녀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피르스트까지는 중간에서 곤돌라는 갈아타지 않고도 곧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있는 역에 곤돌라가 잠시 멈추듯 움직이기 때문에 내리고 싶으면 내릴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우리는 중간에 내릴 일이 없었기 때문에 곧장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곤돌라 역 겸 식당, 가게로 운영되고 있었다. 곤돌라 역을 나오니 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눈길을 따라 걷다보니 건물 뒤편의 조그만 봉우리 옆으로 철제 데크길이 눈에 띄었다. 원래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바흐알프제 호수까지 걸어갔다 올 예정이었지만, 그 길이 경사가 심한데다가 거의 빙판길이어서 아이젠이 없는 우리가 다녀오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철제 데크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 보았다.
데크 길 앞에 큰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뒤편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그 바위까지 걸어가자 뒤로 데크가 쭉 연결되어 있었다. 바람이 심했지만, 데크 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져서 풍경 사진도 찍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데크 길 끝까지 걸어가 보았다. 데크 길은 우리가 곤돌라에서 내린 역이 있는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데크 길 끝은 바닥이 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절벽 밖으로 쭉 뻗어나가 있었다. 투명 유리 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니 뒤에 설산이 배경이 되는 멋진 사진이 되었다.
데크 길 투명 유리판에서 사진을 찍다가 건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서 따뜻한 음료와 맥주를 주문하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몇 좌석 떨어진 곳에 있던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이 먹던 오징어포를 나누어 주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올 때 가져온 것 같았는데, 아꼈다가 자신들이 나중에 먹어도 될 텐데 나누어 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도 일행들이 많고, 우리도 우리끼리 얘기하느라 서로 얘기는 못 나누고,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그들이 준 오징어포에 맥주를 마시니 더욱더 맥주가 맛있었다.
피르스트에서 내려와 그린덴발트에서 인터라켄 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동역에 내리니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다가 본 경사진 기찻길이 생각이 났다. 동역을 따라 흐르는 냇가 옆에 있는 기찻길이 가파른 산을 향해 나 있었는데, 분명 어딘가 볼거리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기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행들을 설득해서 그 기찻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늘 예정했던 피르스트에서 바흐알프제 호수까지 걷지 못했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그 기차라도 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 기찻길은 ‘하더 쿨룸(Harder Kulum)’으로 올라가는 기찻길이었다. 하더 쿨룸으로 올라가는 기찻길은 너무 가팔라서 기차가 로프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로프를 당기면서 기차가 올라가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기차라고는 하지만 한 칸에 10여 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기찻길 위를 다니는 곤돌라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됐다. 기차가 올라가는 동안에 위에서 다른 기차가 내려왔는데, 아마도 두 개의 기차가 엇갈리면서 상하로 운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차는 10여 분을 계속 올라가다가 케이블카 정류장 비슷한 곳에 멈췄다.
기차에서 내리니 조그만 오솔길이 이어졌다. 그 오솔길을 따라 채 500미터도 걷지 않아 웅장한 건물이 나타났다. 그 건물 이름이 바로 ‘하더 쿨룸’이었다. 하더 쿨룸은 큰 식당으로 인터라켄 시내와 인터라켄 호수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다음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또 합류하면서 하더 쿨룸 앞의 광장은 상당히 붐볐다. 나는 기차역 위쪽의 작은 산을 발견하고 그 산에 한 번 올라가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몇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그 산등성이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산길 입구에 있는 트레킹 안내도를 보고 산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산등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인터라켄과 반대방향이어서 전경도 별로였고, 진짜 트레킹을 하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걸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라켄 시내와 인터라켄 호수가 바라보이는 풍경이 너무 멋있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금방 내려가는 것이 아쉬워서 간단하게 퐁뒤를 먹어보기로 했다. 스위스에 와서 스위스 전통 음식을 먹어본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맥주도 시키고 스위스에 온 기분을 한 번 내보기로 했다. 냄비에 담긴 치즈가 은근한 불꽃 위에서 녹아 있는 상태에서 잘게 자른 빵을 찍어먹는 게 바로 퐁뒤였는데, 좀 느끼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하더 쿨룸은 이번 여행 계획에는 없었지만, 잘 선택했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하더 물룸을 내려와서 인터넷에서 보았다는 한국 식당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하더 쿨룸 앞 냇가 건너의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관광지라 그런지 지저분하고 맛도 별로였지만, 어차피 스위스에서 맛집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고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도 아직 날이 환해서 소화도 시킬 겸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타이트하게 짠 스케줄 때문에 피곤할 법도 한데, 맑은 공기 속에서 좋은 구경을 한 탓인지 모두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제 한 번 걸어봤었기 때문인지 길거리가 낯이 익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거리의 상점들 구경도 하면서 걸으니 호텔에 금방 도착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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