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701 호)
【 스위스 쉴트호른 여행 】
어제 아침 조금 늦어서 버스를 놓쳤던 교훈으로 인해 모두 일찍 서둘러서 8시에 호텔 앞을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어제보다 30분 정도 일찍 하루 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하루 동안의 인터라켄 여행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한결 행동이 여유로워졌다. 오늘은 쉴트호른을 다녀온 다음 바로 기차를 타고 떠나야 해서 짐을 싸서 나왔기 때문에 트렁크를 역에 있는 보관함에 넣고 바로 기차를 탔다. 오늘의 목적지 쉴트호른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 루트가 있다. 어제 융프라우로 가기 위해 갔었던 라우터브루넨까지 가는 것까지는 공통이지만, 거기서 푸니쿨라를 타고 가는 루트와 141번 버스를 타고 슈테헬베르그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타는 루트가 있다.
첫 번째 루트인 푸니쿨라를 타면 다시 2량짜리 기차를 타고 뮈렌까지 가서 마을을 지나 케이블카 정류장까지 걸어간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비르그를 거쳐 쉴트호른으로 가게 된다. 두 번째 루트를 선택해 141번 버스를 타면 슈테헬베르그에 도착해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김멜발트에서 환승 후 뮈렌에서 다시 환승하고 비르그를 거쳐 쉴트호른에 오르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뮈렌에서 비르그를 거쳐 쉴트호른에 오르는 길은 공통인 셈이다. 우리는 쉴트호른으로 갈 때는 첫 번째 루트인 푸니쿨라를 타는 루트를, 내려올 때는 뮈렌에서 김멜발트를 거쳐 슈테헬베르그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루트를 선택했다.
인터라켄 동역을 출발할 때는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위스 패스를 활용해 라우터브르넨까지 기차로 이동했다. 라우터브르넨 역에 내려서 푸니쿨라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 잡담을 나누고 있는 역무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지하보도를 지나서 조금 가면 보일 것이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부리나케 안내해준 방향으로 걸어갔더니 승강장이 보였다. 우리가 케이블카에 오르자 조금 있다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케이블카가 도착하자 바로 옆에 기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2량의 짧은 기차는 몇 명 되지 않은 손님이 타자마자 절벽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건너편의 안개에 가려진 설산 봉우리들을 보면서 “와우, 야!”를 연발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쉴트호른에 가기 전에 이 가치를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스위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구불구불한 기찻길을 느릿하게 달리는 기차에서 설산의 풍경을 즐기다보니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기차는 뮈렌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뮈렌 역에서 쉴트호른 행 곤돌라를 타는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우선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면 자연스럽게 곤돌라 정류장에 도착하게 된다. 또 뮈렌은 작은 산골 마을로 뮈렌 기차역에서 곤돌라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마을 구경을 하면서 큰 길을 따라 여유롭게 걷다보니 어느새 곤돌라 정류장에 도착했다. 뮈렌은 쉴트호른에 가는 길에 지나치기에만은 너무 아쉬운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뮈렌에 머물면서 마을길을 천천히 거닐면서 설경을 구경하고 밤하늘의 정취를 만끽하는 여유로운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그게 바로 뮈렌을 보면서 드는 느낌이었다.
뮈렌에서 쉴트호른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료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요금을 받는다고 했다. 표를 끊고 조금 기다리니 슈테헬베르그에서 올라오는 케이블카에서 내리는 손님들이 대합실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그들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쉴트호른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운행되도록 운행 시간이 짜여있는 것 같았다. 승차권을 보여주고 케이블카에 오르니 금방 만원이 되었다. 스키를 든 사람들까지 함께 타니 케이블카 안은 금세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케이블카는 비르그에서 한 차례 환승을 한 다음 쉴트호른으로 향했다. 쉴트호른은 융프라우요흐만큼 높지 않아서 그런지 어제 융프라우요흐에서처럼 눈보라가 휘몰아치지는 않았다. 융프라우요흐에서 느꼈던 고소증도 여기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4,158미터인 융프라우요흐에 비해 쉴트호른은 2,970미터에 불과하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트호른 전망대로 나서자 여기를 배경으로 촬영했던 007 영화의 안내 입간판이 서있었다.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를 007 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억하고 있는 내 기억 때문이지 여기 서 있는 입간판의 주인공 조지 라젠비는 낯설게 느껴졌다. 여기를 배경으로 한 007 영화의 장면이 기억나긴 했지만, 007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일까. 007 영화와 관련성을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쉴트호른 풍경 자체만으로 충분히 홍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쉴트호른 전망대로 나서니 설산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어제 올랐던 융프라우요흐를 비롯해서 융프라우, 아이거 등 여러 설산들이 안개 속에서 가끔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그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설산들이 마치 물결처럼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에 보이는 설산들을 감싸고 있는 구름도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구름처럼 푹신해 보이는 구름바다가 발밑에서 인간 세상의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산골짜기를 가리고 있었다.
융프라우요흐만큼 실내의 볼거리들이 많지 않아 전망대에서 설경을 보고 사진을 찍은 다음에 내려가기로 했다. 이제 계획했던 곳들을 대부분 구경했다는 홀가분함과 더불어 이번 여행의 끝자락에 다가가고 있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케이블카를 탔다. 내려갈 때는 슈테헬베르그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슈테헬베르그에 도착해서 역 밖으로 나오니 널따란 광장이 있고, 건너편 절벽 위에서 폭포가 떨어지고 있었다. 설산의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계속 흘러내려오기 때문에 스위스에는 이런 절벽 폭포가 아주 흔하게 보였다.
한참 사진을 찍다보니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버스 번호를 확인해보니 우리가 타고 갈 141번 버스였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살펴봐도 버스는 141번 버스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안내 책자에 141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나와서 나는 버스 노선 종류가 많은 줄 알았더니 아마도 슈테헬베르그에서 라우터브루넨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141번 버스뿐인 것으로 보였다. 쉴트호른으로 올라갈 때 라우터브르넨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은 버스 종류가 많아 헷갈릴까 봐서 그랬는데, 그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두 코스를 다 경험할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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