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9 호)
【 첫 번째 제주 속살 트레킹 여행-곶자왈 】
제주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
삼다도, 한라산 등 여러 단어가 떠오르겠지만, 곶자왈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긴 곶자왈이라는 단어 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잘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곶자왈에 대해 잘 모르고, 알더라도 곶자왈에 대해 최근에야 알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곶자왈은 제주의 보물을 넘어 세계적인 보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곶자왈에서 ‘곶’은 제주어로 ‘숲’,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뜻하는데, 이 두 개의 단어가 합해져서 ‘곶자왈’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뒤엉켜 있는 수풀을 의미한다.
나무와 덩굴이 뒤엉킨 형태의 숲은 제주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도 많지만 유독 제주도의 숲을 곶자왈이라고 달리 부르는 이유는 제주도의 곶자왈이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숲은 암석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되어 형성된 흙 위에 형성된다. 하지만 제주도는 화산이 폭발한지 그리 오래지 않아서 암석이 충분히 마모되어 나무가 서식할 수 있는 흙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한반도가 형성된 게 수 억 년 전인데 반해, 제주도의 한라산과 오름이 형성된 것은 20만 년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20만 년은 화산 용암과 화산탄 등 지표면의 암석이 흙으로 변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 아니다. 더군다나 제주에는 하천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물이 흐르면서 마모 작용을 일으켜 암석이 흙으로 변환될 기회마저 없었다. 제주는 강우량이 많지만, 바위와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성 때문에 물이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어 버려서 지표면에 남아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곶자왈은 한라산과 오름이 형성될 때 분출된 잡석과 용암류, 스코리아와 화산탄 등의 지질 위에 나무와 덩굴식물이 자라는 형태로 형성되었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화산이 만들어낸 숨골과 풍혈 등이 갖추어진 형태를 이루고 있고, 식물학적으로는 이끼류, 양치류, 초지성 식물, 수목 및 가시덤불과 같은 식물들이 그 위에 자라고 있다. 지표면에 충분한 흙이 없다보니 곶자왈에 서식하는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어서 지표면을 따라 넓게 뿌리를 펼치고 있다. 곶자왈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면 바위를 감싸 안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해질 때가 있다. 나무가 이처럼 뿌리를 넓게 펼치는 이유는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제주 특유의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흙이 부족하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제주 곶자왈의 지형적 특성이 식물들에게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기공이 많은 곶자왈의 지형적 특성 덕분에 물과 공기를 충분히 함유할 수 있어서 숲속의 기온과 수분을 적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즉, 숲속이 건조해지면 품고 있던 수분을 내뿜고, 비가 많이 오면 수분을 흡수하여 저장한다. 또 숲속의 기온이 차가워지면 따뜻한 공기를 내뿜고, 숲속이 더워지면 차가운 공기를 내뿜어서 적정 온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준다. 따라서 곶자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이상적인 숲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기온과 수분 조절 작용에 덕분에 곶자왈은 외부와 10도 이상의 기온 차이가 나곤 한다. 그래서 제주 곶자왈이 겨울철에도 따뜻하여 나무들이 파릇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 곶자왈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북방한계식물과 한대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신비한 숲이다. 그 덕분에 곶자왈에는 양치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삼광조나 팔색조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보금자리로 삼고 있다. 제주 곶자왈은 온난다습한 기후대에 위치하여 식생이 풍부한 특성을 갖고 있다. 제주 곶자왈에는 양치식물 15과 44속 93종을 포함한 총 793종이 서식한다. 또 제주 곶자왈은 제주도 전체 면적의 6.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식생의 46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다. 한반도 전체를 살펴보더라도 제주 곶자왈은 한반도 0.05퍼센트의 면적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식물종의 22퍼센트가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제주 곶자왈을 걷다 보면 그곳의 나뭇잎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잎에 왁스를 발라놓은 것 같이 잎이 두껍고 반짝이는 듯한 조엽수림은 지구상에서 극히 한정된 곳에서만 볼 수 있다. 조엽수림은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해안의 좁은 해안지대와 일본 남부, 그리고 중국의 양자강 남부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지역에만 분포한다. 조엽수림은 햇빛을 받으면 잎이 반짝이면서 따스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조엽수림의 나뭇잎이 두껍고 왁스를 발라놓은 듯이 예쁜 이유는 상록수라는 특징과 연관이 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낙엽이 지는 낙엽수의 입장에서는 잎을 두껍고 예쁘게 유지할 필요가 없다. 채 1년도 사용하지 못하는 잎에 투자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엽식물의 입장에서는 잎을 장기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두껍게 만들고 왁스까지 발라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거에 곶자왈은 제주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주 사람들은 곶자왈에서 땔감을 채취했고 숯을 구웠고, 약초 등을 채취했다. 또 소와 말을 방목했으며, 노루와 꿩을 사냥하는 사냥터로 활용했다. 곶자왈은 지하수의 생성과 보존 등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한 곶자왈이 최근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곶자왈은 암석으로 덮여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사람들이 개간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토목 중장비를 활용하면 쉽게 개간할 수 있기 때문에 급속도로 파괴될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곡자왈은 중산간에 분포하고 있고, 효용성이 떨어져 가격이 낮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곶자왈을 매입하여 개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곶자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곶자왈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넓은 곶자왈이 분포한 교래 근방에 교래자연휴양림, 절물자연휴양림 등이 조성되면서 보존의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에코랜드, 한화리조트 등 이미 많은 곶자왈이 대기업의 소유로 넘어가서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곶자왈이 보존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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