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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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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753 호)

 

왜 유독 한국 남성 은퇴자들이 불행할까?(2)

 

은퇴 후에 겪게 되는 충격은 직장에서의 직위가 높았을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스케줄 체크, 출장 준비 등은 비서가, 업무 수행은 각 부서가 맡아서 하고 본인은 그저 명령만 내리는데 익숙했던 사람은 은퇴 후에 이런 보좌 기능이 다 없어지면 멘붕을 겪게 된다. 더욱이 직장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가사 일을 아내에게 떠맡기고, 물 한 잔 마시는 것까지 아내에게 의존했었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은퇴를 하는 순간 바로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존재로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이처럼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에게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다른 사람이 해주던 습관에 젖어 은퇴 후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른 사람이 눌러 주기를 기다린다면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주위에 이런 상태의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한국의 은퇴한 남성들이 행복해지려면 자신의 하루 일정을 스스로 짤 수 있고, 물 한 잔은 물론 식사까지도 아내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빨리 갖춰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외출 나간 아내에게 전화해서 ‘언제 와서 저녁 차려줄 거냐?’고 닦달하는 순간 황혼 이혼의 가능성이 커지게 되고, 이는 최악의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설거지를 해주면서 남편이 ‘내가 오늘은 설거지 해줄게’라고 얘기했다가, 아내가 ‘설거지를 마치 나를 위해서 한 것처럼 얘기하네요.’라고 항의하면서 시작된 부부싸움 끝에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설거지를 해주고도 이혼 당하는 세상에서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챙겨줘야 하는 ‘종x나 세끼’는 설 땅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남성 은퇴자들이 일상생활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비단 설거지나 식사 해결 문제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 남성들이 만나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 일상적인 주제보다는 지구를 구하고, 회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동창회가 됐든, 등산 모임이 됐든 남성들이 주축이 되는 식사 자리에서는 지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주제가 대화의 주 내용이 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 남성들이 주로 나누는 대화 주제가 요리, 동네 일, 취미활동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과 대조된다. 행복은 지구를 구하고, 회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는 등 거창한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 아니다. 은퇴한 다음에 아무리 지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열심히 토론해 봐도 기분 나쁜 결과로 귀결되는 논쟁만 될 뿐, 결코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차라리 나라를 구하는 대신에 맛있는 요리를 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이웃에게 대접할 때 비로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 남성 은퇴자들이 은퇴 후 행복감을 회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이처럼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물론 직장생활을 통해 재정 수입을 올리면서도 자신의 가치 실현이 가능하다면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설사 직장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대접을 받는다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런 행복감은 그야말로 ‘가짜 행복감’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설사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그런 행복감을 느꼈더라도 은퇴한 다음에는 그 ‘가짜 행복감’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려야 한다. 반대로 가족 등 주위 사람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은 은퇴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진짜 행복감’이다. 서구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가정과 이웃 그리고 직장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균형 있게 배분하기 때문에 은퇴 후에 가정과 이웃으로 돌아오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하지만 한국의 남성 은퇴자들은 가정과 이웃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한 채 직장에 올인하기 때문에 은퇴 후에 가정과 이웃으로 돌아오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워라벨을 강조하면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 인생을 걸었던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요즘의 젊은이들이 워라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임원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저녁 회식을 하려고 하는데, 아내와의 선약을 이유로 회식 불참을 당당하게 선언하는 젊은 직원이 못마땅해 보이겠지만, 이를 모든 직장인들의 행복, 특히 남성 직장인들의 은퇴 후 행복을 위한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겨야 한다. 30년을 다닐지 말지 모르는 직장생활보다 결혼 후 70년, 은퇴 후 50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아내와의 약속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도 워라벨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을 본받아 은퇴 후에 아내와 수평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일상적인 일들에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도록 해야만 한다.

서구, 특히 북유럽의 은퇴자들이 은퇴 후 행복감이 급속히 올라가는 가장 큰 밑바탕이 바로 가정 위주의 생활이다. 즉 직장은 가정의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가정생활이 삶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서구 직장인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퇴근 시간 이후에는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며, 한국에서처럼 퇴근 후 회식은 아주 예외적인 일로 여겨진다. 나는 이런 사실을 스위스 회사와 신규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스위스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 회사의 담당 직원들이 우리를 대접하느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퇴근 시간과 주말은 철저히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직원이 빨리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어서 주말에도 함께 일하길 원했지만, 그들은 당당히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국의 경우에는 해외 근무 또는 장기 출장을 혼자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서구의 경우에는 아내와 동행하지 않는 해외 근무나 장기 출장은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이처럼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가정생활을 중시했으니 은퇴 후에도 가정생활로 돌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아니 오히려 은퇴 후에 진정한 삶의 터전으로서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은퇴야 말로 행복을 되찾는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면에 한국에서는 가정생활을 내팽개치고 직장생활에 올인하다가 은퇴 후 가정생활로 돌아오려니 어려운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가정생활로 돌아오려고 노력한다면 다행이지만, 직장생활의 추억을 못 잊고 아내에게 갑질을 한다면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날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의 경우 은퇴 후 행복감이 증가하는데, 한국에서만 은퇴 후에 행복감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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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밴드 초대: <은퇴 후 함께 귀촌하기> 밴드를 개설했으니, 함께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은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밴드를 통해 함께 귀촌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