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00 호)
【 제주 관광이 아니라 제주 여행을 꿈꾸면서 】
‘이제부터는 제주 관광이 아니라 제주 여행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제주가 고향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자연이 좋아서 자주 제주를 여행하고 있는 내가 ‘관광과 여행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제주도에 갈 때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제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패키지여행을 하지 않고, 또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관광지를 피해서 트레킹 위주의 여행을 하고 있다. 트레킹도 유명 트레킹 코스, 예를 들면 사려니 숲길 같은 곳을 가능하면 가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트레킹 코스, 예를 들면 교래자연휴양림 곶자왈, 삼다수 숲길, 동광 곶자왈 등을 주로 다닌다. 때로는 제주의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제주의 숨은 숲길을 걷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 곳들을 방문한다고 해서 내가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 관광이 아닌 제주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제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었다. 물론 제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들은 얘기며, 뉴스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제주에 관한 얘기를 통해 다른(타지) 사람들보다는 내가 제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 제주가 탐라라는 독립 국가의 지위를 잃은 후에 고려, 조선, 일제, 해방 후 초기에 겪었던 수탈과 탄압의 역사가 현재의 제주 문화에 녹아있다. 그런 역사를 모르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제주를 여행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의 상징인 삼다삼무에 제주의 아픈 역사가 녹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제주 여행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제주가 얼마나 가난했으면 집안에 훔쳐갈 게 없어서 대문과 도둑이 없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야지, 막연히 제주가 대문과 도둑이 없을 정도로 참 살기 좋은 곳이라고 오해한다면 진정한 제주 여행을 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제주 4·3에 대해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정의로운 항쟁의 역사로 여겨지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제주 4·3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혹시 집안에 제주 4·3 관련자가 있으면 연좌제에 의해 출세길이 막히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하긴 아직까지도 제주 4·3이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역사적 핍박의 역사가 쌓이다보니 제주 사람들이 육지에 대해 배타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제주의 자연이 좋아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토로하는 불평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제주 사람들의 배타성이다. 하지만 제주의 아픈 역사를 이해한다면 이런 제주 사람들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위로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제주 여행을 하려면 이처럼 제주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미리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제주가 고향이기 때문에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는 정도가 피상적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주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주가 더 새롭게 느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의 형성 과정을 보면 한반도가 몇 억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반해 제주는 2백만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주와 육지의 자연 환경이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제주의 남쪽인 서귀포 쪽에는 항상 물이 흐르는 시내도 있고, 폭포도 있는데, 왜 제주의 북쪽인 제주시 쪽에는 폭포는커녕 건천(간헐천, 마른 내)만 있고, 물도 해안가에서만 솟구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제주의 형성 과정을 보니, 180만 년 전에 서귀포 층이 형성되고, 130만 년 전에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이, 80만 년 전 가파도가 형성되면서 제주의 남쪽 부분이 만들어졌다.
이때 형성된 제주 남쪽 부분은 용암이 서서히 분출되면서 바다 위로 솟구쳤기 때문에 조직이 비교적 치밀하여 물이 밑으로 빠지는 정도가 덜하다. 반면에 20만 년 전 한라산과 10만 년 전 기생화산들이 형성될 때는 분화구를 통해 화산쇄설물과 화산재들이 제주의 북쪽(제주시 방면)으로 분출되었다. 따라서 제주시 방면의 지질은 다공질이 되었고, 이에 따라 물이 그대로 밑으로 빠지는 다공성 지질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공성 지질층 위에 나무들이 자라는 곶자왈과 제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삼다수가 제주의 북쪽인 제주시 방면에 대부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제주 삼다수와 스위스의 에비앙을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 삼다수를 더 높이 평가한다. 그 이유는 에비앙이 알프스의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인데 반해, 제주의 삼다수는 다공층을 통해 불순물이 걸러지고, 필요한 미네랄 성분들이 보태져서 몸에 훨씬 더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요즘 제주 관광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들이 많이 부각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곤 한다. 제주 흑돼지 비게 살 문제로는 제주 관광이 아니라 제주 여행을 하도록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비싼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른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유사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저녁에 비쌀 수밖에 없는 저녁식사를하면서 술 한 잔 하는 현재의 관광 형태로는 관광객들의 불만을 해소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재들을 육지에서 비싼 운송비를 지불하고 들여와야 하고, 제주의 높은 생활수준이 있는데, 동남아 등의 낮은 환율과 물가와 경쟁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내와, 또 다른 친구들과 내가 하는 스타일의 제주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데, 한 번도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 더 나아가 제주에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듣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자연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즐기고, 제주 주민(?)들이 즐기는 현지식을 먹는 여행을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제주 여행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내가 내 고향이면서 내가 좋아하는 제주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제주 여행을 ‘제주 출신 여행 작가와 함께 하는 제주 속살 트레킹 투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물론 이런 여행은 패키지여행에 비해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아마도 10명 내외의 인원이 가장 적합할 것이고, 많아야 20명이 한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속살 여행의 특성상 제주를 찾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 혼자 이런 여행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통해 제주 여행의 의미를 체득한 사람들이 나중에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비슷한 여행을 전파한다면 제주 속살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을부터 밴드 모임을 통해 제주 속살 여행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제주 여행의 형태가 일반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탐색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제주 여행의 백미인 한라산, 오름, 곶자왈의 진수를 체험하고, 제주의 현지 맛집을 탐방하면서 제주를 더 많이 알게 되면 제주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제주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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