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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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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7.17 인간의 정체성을 분석해볼게요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56 호)

 

【 인간의 정체성을 분석해볼게요 】

 

지난 주 뉴스레터 주제인 ‘깨달음’에 이어 이번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분석해볼까 합니다.

‘깨달음’과 ‘정체성 분석’이 모두 어려운 주제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설명을 시도해보려는 것입니다.

정체성 분석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전에 보내드렸던 제 뉴스레터(제282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인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선 ‘나와 외부 존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으로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게 피부로 둘러싸인 ‘인간의 육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피부의 내부는 내 몸이고, 피부의 바깥은 외부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이 피부를 나와 외부의 구분 기준으로 삼는 것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소화되어 그 성분이 우리 몸으로 들어가서 신체의 일부를 이루게 되는데, 그럼 그 음식이 우리 몸으로 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으면 소화 과정을 거쳐 사슴의 살이 사자의 살로 전환되면서 사슴이 사자가 되는 것인데, 그럼 사자와 사슴이 구분될 수 있나요?

 

또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매일 2퍼센트씩 소멸하고 그 숫자만큼의 새로운 세포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80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 몸의 약 반은 새로운 세포로 바뀌는 셈이고, 한 사람의 몸에 있는 수소 원자들은 7년마다 완전히 새롭게 바뀝니다.

우리 몸의 어느 한 조각도 9년 이상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니, 몸의 성분으로 보자면 지금의 나는 9년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100조 개의 세포도 9년이 지나면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차별화된 특성으로 거론되는 ‘마음’이나 ‘정신’이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마음’이나 ‘정신’도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불교에서 고승들이 면벽 수련을 하면서 얻고자 하는 깨달음도 이런 인간의 정체성을 알아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정체성을 제대로 깨달아야, 그런 정체성 인식의 바탕 위에 외부 존재와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내 몸이 외부, 즉 온 우주와 구분될 수 없고, 결국 내 몸과 우주가 하나라는 인식이 궁극적인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한 것 같긴 한데, 외부와 나를 구분하려는 의식이야말로 깨달음에 가장 큰 방해물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슴을 잡아먹은 사자는 외부와 자신을 구분하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업보’를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슴이나 사자를 잡아서 (외부와 구분되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인간은 업보를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린 깨달음의 3단계가 바로 내 몸과 우주가 하나라는 인식에 이른 단계입니다.

깨달음의 3단계에서는 비록 걷다가 개미를 밟아 죽여도 개미도 나(우주)와 하나이기 때문에 ‘업보’를 남기지 않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승들이 오랜 수련을 통해 깨닫는 경지를, 전혀 힘들이지 않고 깨닫고 있는 사자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사자들이 자연스럽게 이른 깨달음의 경지에 우리 인간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현상을 기독교에서는 ‘원죄’ 때문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자신을 외부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온 우주(하느님)와 결별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거나, 불교에서 우리 안에 ‘본래 부처’가 있다는 표현은 결국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우리가 점점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이 외부로부터 고립되면서 ‘인간이 온 우주와 하나’라는 깨달음과 정반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필요 이상의 부를 축적하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무소유의 정신으로 ‘이웃과 하나’되면 업보를 남기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인생 후반부를 맞이하여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품는 ‘0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해 업보를 남기지 않는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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