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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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조성된 산책형 둘레길이다. 크게 어려운 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봐서도 안 되는 검단산을 가볍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는 친환경 둘레길이다.
길은 관광안내소 초입에서 유길준묘 등산로를 따라 900m 정도 기존 등산로를 따르다가 오른쪽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후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숲을 천천히 즐기면서 걸을 수 있다. 길 초입부에는 맨발걷기길도 마련돼 있어 최근 유행하는 ‘어싱’도 해볼 수 있다.
코스는 캠프콜번 인근까지 총 2.7km다. 기존 샛길과 작업로 등 이미 길이 있던 구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불필요한 토목공사 소요를 최소화해 추가적인 자연 훼손을 줄였다. 더불어 데크시설, 야자매트, 나무계단, 편책, 돌계단, 쉼터 등이 설치돼 있어 더욱 쾌적하게 숲길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한편 캠프 콜번은 하산곡동 일원에 있었던 미군기지로 현재는 반환돼 공여지로 남아 있다.
코스 유길준묘 등산로 입구~캠프콜번
거리 2.7km 소요시간 1시간 15분
광주 황룡강생태길30
대한민국 1호 도심 국가습지길이다. 송산근린공원부터 장록습지, 영산강과 황룡강이 만나는 동곡 두물머리까지 약 12km에 이르는 길로 지자체가 생태·문화·예술을 잇는 1호 명품길로 조성한다는 목표를 두고 지난 4년 동안 다각도로 투자해 조성됐다.
코스는 물빛문화구간, 달빛예술구간, 풀빛생태구간 3개 권역을 중심으로 생태정원, 꽃길과 꽃단지, 야경명소, 테마형 걷기 코스가 들어서 있어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가을철 코스모스가 유명하다. 전국적 음악 축제인 광산뮤직온ON페스티벌을 필두로 생태·문화 걷기대회, 시민 참여 꽃 심기 행사 등 문화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인근 노을 명소인 산동교 친수공원도 둘러볼 만하다. 이른바 ‘물멍·노을멍 명소’로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강물 위로 비치는 붉은 노을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스 송산근린공원~장록습지~동곡 두물머리
거리 12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나주 나주호둘레길
인공 담수호인 나주호를 따라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걷기길이다. 나주호는 다도면 면적의 약 30%를 차지하는 85만9,508㎡(260만 평) 규모의 호수로 맑은 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직한 천혜의 자원이다.
이 길은 4년에 걸쳐 110억 원을 투입해 지난해 10월 개통한 따끈따끈한 새 길이다. 그만큼 데크길과 쉼터,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길도 편안하다.
총 거리는 8km, 2개 구간으로 나눠 조성됐다. 한전KPS인재개발원~녹야원 4.4km(1구간), 중흥리조트~다도광업소 3.6km(2구간)다. 1구간은 숲길이 빽빽하고 조용한 산책로와 데크길이 이어져 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며 걷기 좋은 길이다. 1구간의 양 끝에는 나주호둘레길 1주차장, 2주차장이 각각 조성돼 있어 자차를 이용한 접근도 용이하다.
2구간은 1구간의 호수 반대편에 만들어진 길로 탁 트인 호수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특히 호수를 가로지르는 인도교가 있고, 중간중간에는 강화유리도 있어 물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코스 1구간 한전KPS인재개발원~녹야원, 2구간 중흥리조트~다도광업소
거리 1구간 4.4km, 2구간 3.6km
소요시간 1구간 2시간, 2구간 1시간 30분30분
아산 신정호둘레길
올해로 조성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신정호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신정호는 당초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충남 제1호 지방정원으로 호숫가를 따라 야외음악당, 조각공원, 잔디광장, 음악분수공원, 미로공원, 수생식물전시장 등 친환경적인 테마별 공원이 조성돼 있어 볼거리가 쏠쏠한 관광지로 꼽힌다.
신정호둘레길은 전체 약 5.2km로 오르내림 없이 평탄하게 잘 조성돼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길 곳곳에 쉼터와 벤치도 많고, 조망 포인트나 포토스팟이 마련돼 있어서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즐기기에 좋다. 최근에는 길이 넓고 상/하행선이 잘 구분돼 있는 탓에 인근 지역 러너들의 훈련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코스 곳곳에 주차장과 볼거리들이 많아서 어디서 시작하든, 어느 방향으로 돌든 상관없다. 호수 주변에 예쁜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 걸은 뒤 갈증이나 시장기를 달래기에도 좋다.
요즘은 그런 얘기를 많이 못 듣지만, 우리 윗세대들은 걸핏하면 “내가 살아왔던 얘기를 글로 쓰면 전집이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물론 그들이 살아왔던 얘기를 실제로 글로 쓰면 다른 사람들이 읽을 것이냐는 별개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소설가 박완서도 그런 세대의 사람들에 속한 사람으로 실제로 자신의 얘기를 소설화하여 쓴 소설들이 많이 있는데, 이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그런 소설들 중 하나다. 그야 말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대격변기에 누구나 겪어야만 했던, 하지만 일반화하면서 묻어버리기에는 너무 비극적인 이야기가 저자의 소설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잘 짜인 허구보다 더 긴박감을 불러일으킨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은 이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소설들과 겹치는 내용을 읽었다고 해서 그 긴박감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신기할 따름이다. 오히려 어느 정도 결말을 알기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측면도 있어서 오히려 공감이 가는 측면도 있다. 박완서 작가로서는 어머니 세대와 함께 겪었던 전환기의 고통도 소설감이지만, 본인의 불행도 그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편안하게 보이는 저자의 얼굴 속에 감추어진 비극의 스토리를 알기에 더욱더 저자의 소설이 더 가슴에 다가오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산은 원래 ‘삼각산’이라고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이 깎아지른듯 우뚝 서서 삼각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시에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삼각산과 한강수는 서울을 상징한다.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짓게 되면서부터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왜 북한산성을 지었을까. 새해 첫 산행으로 ‘북한산성 13성문 일주’에 도전했다.
●북한산성 13성문 종주
새해 첫 산행을 했다. 장장 9시간 동안 총 16.7km의 성곽길을 걸어 북한산성의 13성문을 일주하는 산행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길고, 어려운 코스였지만 새해를 맞아 심기일전하기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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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서울 은평구 구파발 역에서 내려 북한산성 입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도착한 성문은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숙종도 북산산성 축조 후 성을 방문했을 때 대서문으로 들어가 중성문을 거쳐 백운봉 아래에 있는 행궁에 도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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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문북한산성에는 이같은 대문(大門) 6개와 작은 암문(暗門) 7개가 있다. 대남문, 대동문, 대성문, 대서문, 북문, 중성문 같은 홍예(아치형) 구조를 갖춘 대문은 기와지붕에 문루를 갖춘 당당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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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 문루반면 암문은 대문이 없는 고갯마루 구간에 숨어 있는 네모난 모양의 작은 문이다. 보국문, 가사동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용암문, 백운봉암문, 서암문 등이다. 암문은 평소에는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비상출입구다. 높이 서 있는 대문은 잘 보이는 반면, 암문은 고갯마루나 능선 성벽 밑에 숨어 있다. 산성을 오가는 백성들은 평소 통로로 쓰지만, 적군들을 알아차리기 힘든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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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동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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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동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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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당암문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는 인증명소로도 유명하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챌린지, 11템플투어, 12봉우리 챌린지 등 총 20여 개의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인증맛집’이다. 그래서 성문에 도착할 때마다, 봉우리에 오를 때마다, 사찰에 들를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 GPS좌표를 기록하고, 인증샷을 찍으며 부지런히 산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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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봉에서 바라본 북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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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재밌는 산행길이다. 의상봉과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 나한봉, 문수봉, 백운대, 원효봉 등 봉우리 주변의 바위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북한산성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잇는 코스다. 바위산에 박힌 쇠줄과 철제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산꼭대기까지 굽이굽이 뱀처럼 이어지는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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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 가는 길의 북한산성
나한봉에 있는 치성(雉城)에 올라서면 서울의 아파트 단지는 물론 한강, 여의도, 김포, 인천, 파주와 북한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양도성을 노리는 어떤 적군도 감시할 수 있는 그야말로 최적의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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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봉 치성
북한산성은 천혜의 화강암 봉우리를 성벽으로 연결한 요새다. 해발 100m의 낮은 계곡부터 760m의 능선부까지 성벽이 쌓여 있다. 낮은 곳에는 돌로 성벽을 높게 쌓은 반면, 능선부에는 성벽없이 여장(女墻)만 있는 곳이 있다. 네모난 구멍을 통해 적을 감시하거나 화살을 쏠 수 있는 시설물이다. 문수봉, 백운봉 같은 높은 봉우리는 자체가 성벽이다. 곳곳에 경비병들의 초소인 성랑(城廊) 유적지가 143곳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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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많다. 그러나 북한산성의 존재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백운대나 인수봉, 의상봉, 비봉 등 유명 봉우리 정상만 밟고 내려오는 수직적인 산행으로는 북한산성의 규모를 알기 어렵다. 북한산성의 13개 성문을 모두 돌게 되면 비로소 그 크기와 구조, 규모를 체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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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낮 12시쯤 대남문(大南門)에 도착했다.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었다. 경복궁 창의문을 통해 세검정에서 구기동을 거쳐 북한산성으로 직행할 수 있는 최단코스가 대남문이다. 대문 주변에서 배낭에 싸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온 등산객들을 만났다. 동남아에서는 겪어보지 못했을 추위를 뚫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대단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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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문“말레이시아에도 높은 산이 있나요?” “예, 물론이죠. 키나발루 산이요.” 해발 4000m가 넘는 키나발루 산이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말레이시아 관광객들은 북한산의 아름다운 풍경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들에게 싸온 김밥을 맛볼 것을 권하자 무척 즐거워했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SNS에서 꼭 해보길 추천하는 것 중에는 산에서 한국인 등산객들이 인심좋게 나눠주는 음식을 맛보는 체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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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국문 가는 성벽 앞 미국인 카를로스 씨대성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성벽 길에서도 미국인 젊은이 카를로스 씨를 만났다. 동두천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는 그는 주말이나 휴가 때면 설악산을 비롯해 국내 산을 등반한다고 했다. 그는 “다음달 고향인 콜로라도로 돌아가기 전에 제주 한라산 백록담 등반에도 도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용암문 앞에서 만난 러시아에서 온 남성 2명은 “러시아인들에게 이 정도 추위는 문제없다”며 “오늘 백운대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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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0도의 날씨. 평일의 북한산. 한국인 등산객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만났다. 이른바 ‘K등산’이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된 현장이다. 북한산성13성문 종주는 체력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었다. 또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을 때마다 손이 시려웠다. 그러나 알프스도 아닌데 서울에서 산을 9시간 넘게 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기도 하다. 그것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명산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북한산성 동아일보 DB북한산고 북악산, 관악산에는 ‘서울등산관광센터’가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등산화와 등산배낭, 등산복, 스틱과 아이젠, 장갑과 모자 등 등산장비를 빌릴 수 있는 곳이다. 렌털샵에서 등산장비를 빌려 사용한 후 반납하면 세탁해 다시 비치하는 시스템이다. 스위스같은 나라에서도 없는 저렴한 등산장비 렌털 서비스를 서울에서 해주니 외국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다.
●왜 북한산성을 지었나 북한산성은 처절한 반성이 담긴 성이다. 임진왜란 때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떠나고, 병자호란 때는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다가 항복하고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해야 했다. 비참한 역사를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지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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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당암문 위 성벽1636년 12월2일 청나라 태종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병자호란이었다. 청은 12월9일 압록강을 건넜고, 기마병을 중심으로 ‘빛의 속도’로 쳐들어온 청군은 5일 만에 한양을 점령했다. 우왕좌왕하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원래 강화도로 가려했다. 그러나 청군의 선발대가 한발 앞서 양화진 방면으로 진입해 길을 차단해 강화도 피난길도 막혀버렸다. 14일 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16일 청은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준비없이 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남한산성에 갇힌 왕과 관료, 1만2000명의 군사와 백성들에겐 지탱할 수 있는 비축물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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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동암문 위 성벽영화 ‘남한산성’을 보면 인조는 1637년 1월1일 행궁 뜰에 나와 명나라 황제를 향해 새해 인사를 올리는 예식을 진행한다. 명과 단교하고 자신들과 군신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하며 쳐들어온 청의 눈앞에서 말이다. 청 태종은 산성 인근 망월봉에서 인조의 예식을 내려다보며 신무기 홍이포를 조준발사해 행궁을 유린한다. 인조는 47일 동안 버티다 결국 1637년 1월30일 송파강 삼전나루로 나가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어가며 굴욕적으로 항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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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취봉9년 전인 정묘호란 때도 인조와 대신들은 강화도로 피란했다. 고려시대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도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1592년 임진왜란 때도 조선왕실은 한양도성에서의 수성 전투를 포기하고 의주로 피난길을 떠났다. 왕이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백성들은 망연자실했고, 노비들은 궁에 들어가 불을 지르며 노비문서를 태웠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다. 남한산성은 들판에 고립돼 있어 적에게 포위당하면 구원병은 커녕 식량보급도 어려웠다. 강화도는 해전에 익숙한 왜적들에겐 난공불락이 아니었다. 또한 남한산성은 한강을 건너야 하고, 강화도는 바다를 건너야 했다. 왕실과 관료는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있었지만, 배를 타고 피난갈 수 없던 백성들은 철저하게 유린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란 이후 효종 때부터 북한산성을 새롭게 쌓아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북한산성의 입지는 산세가 험하고 높아 적이 포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잇점이었다. ‘한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열지 못하는 지형’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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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봉암문 가는길실제로 북한산성 13성문 종주를 하다보면 과연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와 인수봉 가까이 오다보면 깎아지른 화강암 바위 절벽으로 된 삼각산의 위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넓은 북한산성은 말타고는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고,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는 수백만명의 군사로도 포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곳곳에 숨어 있는 암문으로 구원병과 보급물자를 전달할 수 있어 고립작전도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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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은 1711년 “남한산은 나루를 건너기 어려우며, 강화도는 해구(海寇)에게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오직 북한산(北漢山) 만은 지극히 가까운 까닭으로 백성과 함께 들어가 지키려고 한다(欲與民共守)”며 축성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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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 가는 길북한산성에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과 주둔부대, 사찰과 간선도로 등이 조성됐다. 산성에 필수적인 물을 공급하는 연못과 우물도 100곳이 넘게 만들어졌다. 성문 중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가 통과하는 ‘시구문’도 따로 있다. 북한산성에도 백성들의 삶과 죽음이 이었다.
숙종이 북한산성에 대해 ‘백성과 함께 지키겠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전의 전란에서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홀로 도망갔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산성이다.
●승병들이 지은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1711년 4월3일부터 10월19일까지 단 6개월만에 축성됐다. 험준한 산 속에 길이 11.6km, 내부 면적 5.3㎢이나 되는 산성을 쌓는데 어떻게 여섯달 밖에 안걸렸을까?
답은 승병들이었다. 조선왕실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맹활약했던 승병들을 동원해 북한산성을 지었다. 팔도에서 올라온 승병들은 돌을 쌓아 성벽을 지었고, 북한산성이 지어진 후에는 수비까지 담당했다. 성내 군사 요충지에는 사찰 13곳이 건립됐다. 바로 승영사찰(僧營寺刹)이다.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하는 병영의 역할을 하는 절이다. 승대장 팔도도총섭이 머무는 중흥사를 중심으로 태고사, 노적사, 서암사, 경흥사, 국녕사, 부왕사, 진광사, 보국사, 용암사 등의 승영사찰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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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녕사 국녕대불그래서일까. 북한산성을 종주하다보면 깊은 산 속, 험준한 산꼭대기까지 많은 절을 만날 수 있다. 의사봉 아래쪽에 맞은편 원효봉을 마주보는 자리에 대불(大佛)이 있는 국녕사(國寧寺)가 대표적이다. 86칸 규모의 국녕사는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이의 성벽과 가사당암문의 수비를 맡았던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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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대웅전북한산성 축성 당시 팔도도총섭과 승대장 자격으로 승군을 지휘했던 인물은 화엄사의 승려 성능(聖能)이었다. 성능은 이후 북한산성에서 30여년을 도총섭으로서 수도방위에 힘쓰다 영조 21년에 ‘북한지(北漢誌)’를 남기고 화엄사로 돌아갔다. 성능 스님은 ‘북한지’에 30여 년간 북한산성 내 사찰에서 5700개의 책판을 제작했다고 기록했다. 북한산성 내에 있는 사찰에서 대량으로 경전에 대한 판각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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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 문수동굴북한산성을 지키던 의승들은 350명. 팔도의 사찰에서 차출돼 온 승려들은 2개월씩 근무했다. 남한산성을 지키던 인원까지 합치면 의승 수는 700명에 이르렀다. 유교국가인 조선이 국가의 핵심시설인 산성수비는 승려에게 맡겼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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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봉 암문긴 산행 끝에 오후 3시쯤 백운대 바로 아래 있는 백운동암문에 도착했다. 출발점인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원점회귀하기 위해 송추방향으로 산을 내려갔다. 북문을 지나 마지막 코스인 원효봉을 올랐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 원효봉에서 바라본 서울의 해지는 풍경은 최고였다. 우뚝 솟은 삼각산을 가로지르고 있는 북한산성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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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비치는 원효봉의 북한산성 성벽.
●맛집
추운 날 산행을 마친 후에는 따뜻한 음식이 그립니다. 연신내역 부근 시장골목 안에 있는 ‘원조두꺼비집 불오징어’는 50년 전통의 노포다. 오삼불고기 맛집이다. 철판 위에 통통한 오징어와 쑥산, 대파, 양배추가 산처럼 쌓여 나온다. 은은하게 퍼지는 쑥갓 향과 양념의 맛이 어우러진 불오징어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하이라이트는 볶음밥이다. 오징어를 몇개 남긴 철판에 밥을 붓고, 매콤한 양념과 비벼먹는다. 볶음밥은 밑바닥이 살짝 누르게 먹어야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