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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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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두 달 살기-영원사

2023. 12. 12.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1000여 그루의 은행나무에 둘러싸인 청라 은행마을. 최근 큰비로 은행잎이 50% 이상 떨어졌지만, 마을 곳곳을 노랗게 뒤덮은 풍경을 11월 중순까지 누릴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일의 모습이다.

충남 보령 하면 머드축제 즐기는 청춘의 열기, 거칠 것 없는 대천해수욕장의 풍경부터 떠오른다. 여름 휴가지로 익숙한 고장이지만, 보령은 사실 가을 풍경이 더 깊고 진하다. 1000그루의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은행마을,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문 억새 산인 오서산(791m)이 있어서다.

 

20일까지 누리는 황금물결

오서산은 억새밭의 규모는 작지만, 그 너머로 서해안의 절경까지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서해안에 맞닿은 보령에서도 가장 내륙 깊숙한 곳의 땅. 오서산 남쪽 자락의 청라면 장현리에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청라 은행마을’이 있다. 주민 250명 남짓한 작은 마을에 은행나무만 1000그루가 넘는다. 가을 이맘때 먼발치에서 내다보면 온 동네에 노란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은행마을 가을 풍경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국구 명소로 거듭났다. 인스타그램에 ‘은행마을’을 검색하면 1000개 이상의 인증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은행잎 빛깔이 무르익는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는 주말 하루 5000명가량이 다녀간다. 은행나무에 둘러싸인 마을 안쪽의 캠핑장은 이른 봄에 단풍철 예약이 끝날 정도로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큰비와 강풍으로 은행잎이 50% 이상 떨어졌지만, 시골길과 담벼락, 개울 등을 노랗게 뒤덮은 장관을 이달 20일까지 누릴 수 있다.

조선 시대 전통 가옥과 은행잎이 어우러지는 ‘신경섭 가옥’과 카페와 정원이 있어 분위기가 그윽한 ‘정촌유기농원’ 주변이 기념사진을 담아가기 좋은 명당이다. 참고로 청라 마을의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는 암나무가 대부분이다. 냄새는 고약해도 마을에는 없어선 안 될 보물이다. 이장 김문한(56)씨는 “매년 50t가량의 은행을 수확한다”고 귀띔하면서 “우리 동네가 예부터 은행 털어 대박 난 마을”이라며 웃었다.

 

서해안 산 중턱 1.3㎞ 억새길

은행마을 곁에는 가을철 억새로 이름난 오서산도 있다. 마을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이면 산행 들머리인 오서산 자연휴양림에 닿는다. 은행마을에서는 은행잎 깔린 평탄한 융단 길을 쉬엄쉬엄 걷는 재미가 컸다면, 오서산에서는 제법 땀을 빼야 한다. 특히 산 중턱의 월정사 옆 비탈은 꽤 악명 높은 깔딱고개여서 등산화와 스틱이 필수다.

휴양림 초입에서 정상까지 대략 2㎞의 산길인데, 대략 1시간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지루한 숲길이 내내 이어지지만, 9부 능선쯤 오르면 갑자기 온 사방이 열리며 산마루와 억새 군락의 모습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어 능선을 따라 억새 길이 1.3㎞가량 이어진다. 솔직히 억새 산행 1번지로 통하는 영남알프스의 간월재나 사자평처럼 억새밭의 규모가 큰 건 아니다. 대신 전망이 대단하다. 억새밭 너머로 서해안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펼쳐진다.

보령 대천해수욕장 머드먹자골목 ‘조개팩토리’의 키조개삼합. 백종현 기자

산행 후 회포를 풀기에는 대천해수욕장이 좋다. 해수욕장 뒤편으로 이른바 ‘머드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먹자골목의 오랜 인기 메뉴는 ‘무제한 리필 조개구이’이었으나, 요즘은 ‘키조개 삼합(사진)’이라는 신종 메뉴를 앞세운 가게가 많아졌다. 보령 특산물 키조개와 각종 야채·고기·해산물 등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키조개 전문 식당 ‘조개팩토리’에서는 키조개 관자와 함께 전복·대하·우삼겹·가리비 등이 올라왔다. 정태화 대표는 “인증샷을 부르는 푸짐한 상차림, 골라 싸 먹는 재미 덕분에 20대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왕복 4시간 산행의 효과였을까. 40대 아재의 입맛에도 딱이었다.

보령=글·사진 백종현 기자

 

[중앙일보 2023년 11월 210일]

남원 두 달 살기-아담원

2023. 12. 5. 07:0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순창의 신흥 명소로 뜨고 있는 ‘용궐산 하늘길’. 섬진강을 굽어보는 가파른 벼랑길로, 총 길이가 1096m에 이른다.

특산물 고추장은 알아도, 그윽한 섬진강과 우람한 산세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미처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전북 순창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순창에 전국구 명물이 생겼다. 섬진강을 굽어보는 용궐산(645m) 암벽에 조성한 아슬아슬한 벼랑길, 이른바 ‘용궐산 하늘길’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10만 명 넘게 다녀간 신흥 명소인데, 지난달 코스를 두 배 넘겨 연장했다.

 

암벽 거슬러 오르는 용처럼

용틀임하듯 지그재그로 길이 뻗어 있다.

순창 읍내를 빠져나와 섬진강변 북쪽으로 15㎞가량을 달리다 보면, 송곳처럼 우뚝 솟은 산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용의 전설이 내려온다는 용궐산(龍闕山)이다. 산 아래 거느린 고을의 이름도 내룡마을(어치리)이다. 사실 용궐산은 순창에서도 크게 대접받던 산이 아니었다. “워낙 가파르고 험한 바위산이어서 동네 사람도 맘 편히 오르지 못했다”고 양갑영 내룡마을 이장은 설명했다.

하늘길을 조성한 2020년 이후 용궐산은 지역 스타로 거듭났다. 코로나 여파에도 줄 서서 산을 오르는 풍경이 흔했단다. 순창군 산림공원과 정영호 팀장은 “순창군 인구가 2만7000여 명에 불과한데, 작년 3월 정식 개장한 이후 1년 만에 15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용궐산 하늘길은 벼랑에 선반 형태로 길을 이은 ‘잔도(棧道)’다. 길을 내는 건 당연히 쉽지 않았다. 헬기로 자재를 나르고, 중장비로 산길을 다진 다음, 용여암(龍女岩)이란 가파른 암벽에 철심을 박고 나무 데크를 깔았다. 원래는 534m에 불과했으나, 최근 562m를 더 연장해 지난달 1096m 길이의 잔도가 완성됐다.

용궐산에 올랐다. 들목인 ‘용궐산 치유의숲’ 매표소에서 30여 분 산길을 오르자, 하늘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1.5m 폭의 벼랑길이 정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뻗어 올라간 모양이 영락없이 용틀임하는 용이었다.

 

물안개 위의 산책

하늘길 끝자락의 비룡정.

하늘길이 놓인 용여암은 나무가 거의 없는 암벽이었다. 아직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 강해, 땀이 줄줄 쏟아졌다. 하나 불평하기엔 장점이 워낙 컸다. 쭉 뻗은 하늘길과 섬진강의 거칠 것 없는 풍경이 걷는 내내 시야에 들어왔다.

산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길은 아찔했지만, 벼랑에 올라서 굽어본 순창은 아늑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도, 강을 끼고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풍경도 고왔다. 운이 좋았다. 마침 물안개까지 어우러져 분위기가 더 근사했다. 물안개는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정영호 팀장이 “요즘 일교차가 커서인지 물안개가 자주 핀다”고 일러줬다.

2020년 개장한 채계산 출렁다리도 새로운 명물이다. 너른 들녘을 내다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용궐산 인근 채계산(342m)에도 신흥 명물로 떠오른 출렁다리가 있었다. 최대 높이 90m 길이 270m의 현수교로, 2020년 3월 개장해 벌써 5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단다. 전국에 흔하디흔한 것이 출렁다리라지만, 섬진강과 너른 들판을 내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흠잡기가 쉽지 않았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무료지만, 용궐산 하늘길에는 입장료가 있다. 4000원을 내니 2000원짜리 ‘순창사랑상품권’이 돌아왔다. 지역 내 음식점이나 카페, 농산물 장터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다.

국밥과 순대. 순창시장의 대표 먹거리다.

산행을 했으니, 음식이 빠질 수 없었다. 산행 후 허기를 채우기에는 순대 골목으로 이름난 순창시장이 딱이었다. 대를 이어오는 한 순댓집에서 꽉 조였던 신발 끈을 풀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순대국밥을 먹고 나니, 더위가 한결 가신 것 같았다.

순창=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중앙일보 2023년 8월 25일]

은평 둘레길 1,2코스

2023. 11. 28.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남도 관광 일번지 강진① 강진 생활관광

 

1993년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한국의 여행 문화를 바꾼 책으로 평가받는다. 『답사기』 1권 ‘남도답사의 일번지’에서 맨 처음 소개한 고장이 전남 강진이다. 유홍준 교수의 말마따나 ‘단 한 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던 조용한 시골’이었던 강진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 전국 명소로 거듭났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다산초당·무위사·백련사 등 강진의 찬란한 유산이 증발한 건 아니지만, 강진을 여행하는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유적지 답사보다 일주일 살아보기, 액티비티 체험, 맛집 탐방 같은 여행법이 더 주목받는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달라진 여행법,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생활관광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이른바 '푸소' 농가에서 일주일간 현지인과 함께 먹고 자고 놀며, 강진을 생생히 체험하는 여행법이다. 맛있는 시골밥상으로 유명한 '화담재'는 장독 가득 맛깔스러운 장과 김치를 품고 있다.

강진이 ‘남도답사 일번지’로 뜬 건 고려시대 청자를 굽던 사당리 가마터나 다산초당‧백련사 같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뿌리내린 덕분이었다. 오늘의 여행자들은 강진에서 답사만 하고 떠나지 않는다. 일주일간 현지 주민과 한집살이를 하고, 함께 숟가락을 들고, 어우러져 흥에 취한다. 강진이 이른바 생활관광의 성지로 뜨면서다.

40가지 골라 사는 재미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를 하며 다양한 농촌 체험을 할 수 있다. 요즘 '한실농박(왼쪽 사진)에서는 감 따기, '힐링하우스'에서는 고구마 캐기가 한창이다.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공유 숙박이 하나의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남의 집에서 잠드는 여행법이 더는 낯설지 않다. 더 색다른 경험, 생생한 현지 문화를 체험하려는 여행자가 계속 늘고 있다. 생활관광 프로그램인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가 현재 강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 상품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는 말 그대로 시골집에서 6박7일간 먹고 자고 노는 프로그램이다. 일명 ‘푸소’라 불리는 지역의 체험 농가 40곳에서 손님을 받는다. 살림집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집주인의 손맛이 다르므로 일주일 사는 재미도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읍내의 ‘힐링하우스’처럼 텃밭에서 고구마‧가지 등을 직접 채취해 먹는 농가도 있고, ‘명선하우스’처럼 너른 잔디마당을 낀 이층집도 있다. 월출산(809m) 아래에 자리한 한옥 ‘화담재’는 장독 가득히 맛깔스러운 김치와 장을 품고 있다.

일주일 살기 체험비는 1인 24만원(2~4명 신청)으로, 8끼의 식사(조식 6회, 석식 2회)도 포함됐다. 하루 3만4000원꼴. 가성비가 보통이 아니다.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2020년 5월 시작해 코로나 여파에도 3700명 이상이 다녀갔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진군 문화관광재단에 따르면 3년간 전체 농가가 벌어들인 수익이 12억원에 이른다. 지난 6개월간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낸 농가도 있다.

 

한실농박에서 맛본 시골밥상. 홍어삼합과 병어찜, 간장 게장 등이 깔렸다. 집주인 정은숙씨는 "집이 낡았다고 밥상까지 허름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홈페이지 후기란에는 “떠나는 날 과일을 바리바리 싸주셨다” “일주일 살며 귀촌의 꿈이 생겼다” 같은 정겨운 후일담이 가득하다. “이래서 남는 게 있겠느냐”는 투의 걱정과 감탄 섞인 반응이 가장 흔하다.

탐진강변의 ‘한실농박’에서 직접 체험한 하루는 이랬다. 팔자 좋은 시골 개들과 뛰놀다, 감을 따 먹고, 낮잠을 때리다, 주인 할머니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밥상에는 홍어삼합과 병어찜, 간장게장 등이 깔렸다. 집주인 정은숙(68)씨는 “손님이 아들딸처럼 반갑고, 덕분에 사는 게 더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일일 가수 체험해볼까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참가자는 음반 만들기, 청자 컵 만들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참가자에게는 주요 관광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회원카드가 주어진다. 다산박물관, 한국민화뮤지엄, 고려청자박물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가우도 짚트랙과 제트보트 등 액티비티도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농가에서만 머물 게 아니라, 곳곳을 누비며 지역을 생생히 체험해보라는 의미다.

‘나만의 음반 만들기’ 같은 이색 무료 체험도 있다. 강진읍시장 인근의 음악 스튜디오 ‘전남음악창작소’가 체험 장소다. ‘코인노래방’ 같은 노래 연습실 수준이 아니다. 프로 뮤지션이 사용하는 장비를 활용해 직접 악기도 연주하고, 녹음실에서 MR에 맞춰 노래도 불러볼 수 있다. 음치도 박치도 상관없다. 전문 엔지니어가 능숙한 솜씨로 튠을 만져 1곡의 음원을 완성해준다.

고려청자박물관에서는 청자 컵 만들기가 공짜다. 흙으로 빚은 도기 위에 취향대로 글씨나 그림을 새겨 놓으면 체험관에서 대신 유약을 바르고 구워 90여 일 뒤 완성된 청자를 집으로 보내준다.

8월 문을 연 '오소 스테이'. 숙박 시설, 공유 오피스 등을 갖춘 워케이션 공간이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워케이션 체험도 최근 시작했다. 강진군이 지난 8월 읍내에 워케이션 공간 ‘오소 스테이’를 열면서다. 노트북·태블릿 등을 빌려 쓸 수 있는 공유 오피스와 회의실은 물론이고 공용 주방과 루프탑 휴게 공간도 갖췄다. 농가 체험과 워케이션을 병행하는 일주일 살기 상품도 나왔다. 절반은 푸소 농가에서, 나머지 절반은 오소 스테이에서 머무는 방식이다.

다산도 흥나겠네

주말마다 강진읍 사의재 저잣거리 일원에서 마당극 '조만간'을 관람할 수 있다. 강진 주민으로 이뤄진 아마추어 극단인데, 끼와 재주가 프로 배우 못지 않다.

강진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사의재(四宜齋)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1801년 강진으로 유배와 4년 동안 기거한 주막집인데, 읍내에 당시의 초가와 주변 풍경을 재현한 ‘사의재 저잣거리’가 조성돼 있다. 얼핏 고루한 관광지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요즘 강진에서 가장 신바람 나는 현장이다. 주말마다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마당극 ‘조만간(조선을 만난 시간)’ 덕분이다.

일단 출연진 구성이 재미있다. 전문 배우 없이 지역민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이어서다. 76세 어르신부터 여고생까지 모두 22명이다. 프랑스‧일본에서 이주한 외국인 배우도 있다. 2019년부터 벌써 5년을 이어오고 있다. 읍내에서 오토바이 샵을 운영하는 홍보배(61, 저승사자 역)씨처럼 200회 이상 공연한 베테랑 배우도 있다. 다들 무대에서의 능청과 익살이 전문 배우 못지않다. 일본에서 이주한 안도 아이리(49, 포졸‧아낙 역)씨는 “주민들과 함께해 즐겁고, 관광객을 직접 맞이하는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마당극이 끝나면 배우들이 사의재 저잣거리 곳곳에 흩어져 관람객을 맞는다.

조만간 공연은 토‧일요일 하루 두 차례씩(오전 11시 30분, 오후 2시 30분) 벌어진다. 마당극 후에는 배우들이 저잣거리 곳곳에 흩어져 관람객을 맞는다.

임석 강진군문화관광재단 대표는 “일주일 살기나 정기 공연보다 사람과 정이 강진의 주력 여행상품”이라면서 “주민 주도형 체류 관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사의재의 가을 풍경. 다산이 유배 시절 머물던 주막을 복원한 공간이다.

강진=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중앙일보 2023년 10월 19일]

진우석의 Wild Korea ⑦ 제주 오름 트레킹

드론으로 촬영한 붉은오름 정상 전망대 풍경. 붉은오름이 있는 제주도 중산간 동쪽 지역은 오름과 숲길, 휴양림을 두루 누비며 트레킹과 캠핑을 즐기기 좋다. 가장 높은 곳에 우뚝한 한라산이 물찻오름, 말찻오름, 논고악 등을 거느린 모습이 장관이다.

당신은 제주 어디를 가시는가? 필자는 무조건 오름과 숲에 폭 파묻혀 걷고 또 걷는다. 이를테면 한라산 동쪽 중산간 지대. 이곳이 매력적인 건 오름과 오름이 이어지고, 숲길과 숲길이 통한다는 점이다. 걸어서 경계를 넘는 맛이 통쾌하고 짜릿하다. 숲길 5개와 오름 5개를 1박2일간 걸었다. 매혹적인 길이지만, 워낙 많은 곳을 넘나들기에 헷갈릴 수 있다. 현명한 독자들은 잘 따라오리라 믿는다. 경계를 넘는 데는 수고가 따른다.

오름 품 야영장에서 하룻밤

한라생태숲에서 섯개오름을 넘으면 편백 쉼터가 나온다.

한라생태숲 정문에서 출발한다. 이정표를 보고 숫모루숲길(한라산둘레길 9구간)을 따르면서 숲을 구경한다. 제주 자생종인 구상나무·곰솔 등 침엽수와 때죽나무·벚나무 등 활엽수가 어우러져 풍요롭다.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한라생태숲과 절물자연휴양림 분기점에 닿는다. 슬그머니 절물자연휴양림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첫 번째 경계를 넘는다.

한라생태숲 입구에 있는 숫모루숲길 안내판.

완만한 오르막을 걷다 보면 섯개오름 정상에 닿는다. 펑퍼짐한 구릉인 섯개오름을 넘으면 편백 쉼터가 나온다. 평상에 드러누워 편백 우듬지를 올려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완만한 숲길을 내려와 임도사거리에서 절물자연휴양림 방향을 따른다. 절물자연휴양림은 절물오름의 너른 품에 안겨 있다. 낙엽 수북한 평상에 앉아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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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오름 정상에서 본 억새와 오름군.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절물오름이다.

절물자연휴양림 맞은편에 민오름이 있다. 잠시 도로변을 걷다가 이정표를 보고 민오름 방향으로 들어서면서 두 번째 경계를 넘는다. 10분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하늘거리는 억새 너머로 건너편 절물오름이 보인다. 왔던 길을 되짚어 100m쯤 가면 민오름 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풀밭 분위기가 신비로운 습지를 지나면 한동안 심원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큰지그리오름’ 안내판이 나타난다. 보물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큰지그리오름 영역으로 들어선다. 세 번째 경계 넘기다. 거무튀튀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삼나무 숲에서 400m쯤 오르면 큰지그리오름 정상이다. 억새밭 너머 한라산이 아스라하다.

늡서리오름의 품에 안긴 교래자연휴양림 야영장.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울창한 곶자왈을 통과한다. 돌무더기·고사리류·이끼 등이 어우러진 곶자왈의 생태가 낯설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런 땅이 제주도의 허파다. 비가 내리면 곶자왈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가 몇 달 뒤 깨끗한 물을 해안 용천수로 뱉어낸다. 곶자왈 종착지에 교래자연휴양림이 있다. 숙소도 좋지만, 늡서리오름 아래 드넓은 잔디밭을 공유하는 야영장이 쾌적하다.

삼다수숲길, 말몰이꾼이 다니던 오솔길

김영희 디자이너

다음 날은 맑아 텐트를 접다가 휘파람이 절로 났다. 야영장에서 삼다수숲길 입구까지 20분쯤 걸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큰 도로와 마을이 반갑다. 삼다수숲길은 제주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이 함께 가꿨다. 원래 말몰이꾼이 다니는 오솔길이었다. 3개 코스 가운데 1시간 30분쯤 걷는 2코스를 따른다. 천미천을 따라 삼나무 숲과 조릿대 군락지가 이어진다. 군데군데 단풍나무가 많아 11월께 멋진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삼다수숲길에서 말찻오름 가는 길은 이정표가 없다. 2코스 반환점(안내판 4번)에서 3코스 방향으로 400m쯤 따르면 길이 갈린다. 여기서 왼쪽 길로 가야 한다. 길은 구렁이가 담 넘듯이 슬그머니 고개를 오른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말찻오름 안내판이 반갑다. 네 번째 경계를 넘는다. 여기부터는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영역이다. 길은 말찻오름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한다. 50분쯤 걸리는데,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떨어졌다면 말찻오름을 생략해도 된다.

말찻오름은 숲이 좋은 오름이다. 전망대는 돌출된 바위 지대로, 나무에 가려 전망이 신통치 않다. 말찻오름을 내려오면 해맞이숲길로 연결된다. 길이 평탄해 속도를 내 조금 숨차게 걸어본다.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달콤하고, 귓바퀴를 울리는 바람 소리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길은 상잣성숲길로 바뀐다. 나무에 이름표를 붙여 놨다. 까마귀베개·산딸나무·꾸지뽕나무·참식나무 등 정겨운 이름을 소리 내 불러줬다. 제 이름이 불린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화답해준다.

‘붉은오름 350m’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터벅터벅 나무계단을 올라 붉은오름 정상의 전망대에 섰다. 푸른 가을 하늘이 시원하게 열렸다. 마치 지리산 종주 코스 중 천왕봉에 올라선 느낌이다. 멀리 한라산이 말찻오름과 물찻오름을 거느리며 나타난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이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으로 내려와 걷기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어디를 걸을까. 즐거운 고민에 발걸음이 가볍다.

김영희 디자이너

☞여행정보=첫날은 한라생태숲~숫모루숲길~절물자연휴양림~민오름~민오름 둘레길~큰지그리오름~곶자왈 숲길~교래자연휴양림 코스로, 약 14㎞를 5시간 동안 걸었다. 둘째 날은 교래자연휴양림~삼다수숲길(2코스)~말찻오름~해맞이숲길~상잣성숲길~붉은오름~붉은오름자연휴양림 코스로, 13㎞를 걷는 데 4시간 걸렸다. 차량을 이용하면 교래자연휴양림에 주차하고, 버스로 출발점인 한라생태숲으로 이동한다. 코스 중간중간 길이 애매하다. GPS 앱 ‘산길샘’을 내려받고, 네이버 카페 ‘산길샘’에서 GPS 트랙을 받아 따라가는 걸 추천한다.

진우석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중앙일보 2023년 10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