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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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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출간 시기: 11월 18일

 

 

 

 

“이제 종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초종교적 영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화도에 심도학사 세운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

이달 초 강화도에 있는 심도학사를 찾았다. 바다와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모던한 디자인의 현대식 건물이 있었다. ‘심도학사(尋道學舍)’. 글자 그대로 ‘길을 찾아가는 공부집’이다. 국내 종교학계의 거두인 길희성(73)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가 5년 전에 전재산을 털어서 지은 공간이다. 길 교수는 매주 토·일요일에 1박2일 프로그램으로 동·서양 종교의 고전을 넘나들며 영성과 종교와 철학을 강의한다. 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은 아예 금요일 밤부터 이곳에 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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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희성 교수는 “종교는 제도와 벽에 갇힌다. 그러나 영성은 거기로부터 자유롭다. 심도학사는 특히 불교와 기독교의 소통과 화합에 역점을 둔다”고 말했다. [강화도=김경록 기자]

강의는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은 10여 명쯤 됐다. 기업체 대표도 있고, 아이 셋을 둔 가정 주부와 삶의 의미를 찾는 증권 전문가, 영어 강사와 약사, 가톨릭의 신부 등도 있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과 유교 등 이들의 종교적 배경은 다양했다. 종교는 없지만 ‘진리와 영성’에 목마른 이들도 꽤 있었다.

심도학사는 매주 주제가 바뀐다. 이날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영원한 고전- 성 오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이었다. 길 교수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예배는 ‘마음의 예배’다”라는 루소의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는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지’ ‘가장 좋은 종교는 명료한 종교다’ 등 압축된 영성을 한 마디로 드러내는 명구(名句)들이 강의 내내 흘러나왔다. 그 출처는 ‘길 교수의 가슴’이었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석사를 했다. 여전히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자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불교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2년부터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하다가 84년 서강대 종교학과로 옮겼다. 이유는 하나였다. 길 교수는 “철학보다는 종교가 나의 궁극적 관심인 ‘신과 진리’에 대해 더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세계문화권에서는 종교가 철학이고, 철학이 곧 종교였다. 둘을 가르지 않았다. 철학과 종교를 나누기 시작한 건 전적으로 서구의 산물이다”고 덧붙였다. 길 교수는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20년간 강의를 한 뒤 은퇴했다.

심도학사의 강의는 뜨거웠다. 길 교수는 “성 오거스틴의 출현으로 이전에 있던 교부들의 시대는 갔다. 그들의 저서는 오히려 빛이 바랬다. 성 오거스틴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최고의 신학자’로 불린다. 그는 내성적 성찰의 대가였다. 당시 주교였던 그는 자신의 창피한 내면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며 자신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길 교수는 “요즘 신학생 중에는 『신국론』 같은 오거스틴의 저서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 기독교의 고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종교적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녹아 있다. 그걸 도외시하기에 기독교의 눈과 가슴이 자꾸만 좁아진다. 자꾸만 배타적으로 변한다”며 아쉬워했다.

강의는 점심때까지 이어졌다. 식사는 길 교수의 부인이 직접 준비했다. 정갈한 맛의 건강식이었다. 참가자들은 “심도학사에 오면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다섯 끼를 이곳에서 먹는다. 강의 못지않게 이곳의 밥맛이 늘 기다려진다”고 칭찬했다. 오후에 길 교수는 참가자들과 뒷산을 산책했다. 침묵 속에서 걷는 ‘묵언(默言) 명상’이다. 산책 후 오후 6시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밤 10시30분까지 강의가 계속된다.

짬을 낸 길 교수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했다. 그에게 ‘인간과 종교, 그리고 진리’에 대해 물었다.
질의 :종교가 우선인가, 진리가 우선인가.
응답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 종교가 있었던 게 아니다. 종교는 진리를 찾아가는 통로일 뿐이다.”
질의 :그럼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나.
응답 :“기독교 이전의 예수, 불교 이전의 부처다. 그분들이 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벌거벗은 인간’으로 만났지 않았을까. ‘당신은 뭐가 고민이오? 나는 뭐가 고민이오.’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종교가 왜 존재하나. 결국은 참 사람, 참 인간이다. 참 자아의 발견이다. 종교는 이것을 위한 수단이다.”

길 교수는 종교의 핵심이 ‘영성’이라고 강조했다. “서구에서는 탈종교의 시대가 열린 지 오래됐다. 우리나라도 탈종교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각 종교의 성직자 수도 점점 줄어든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에 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향락적인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적 속박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도 영성적 목마름이 있다. 나는 그게 더 커지리라 본다. 그래서 미래 사회로 갈수록 종교가 아니라 ‘영성’이 더 중요하다.”
질의 :그런 영성 운동의 방향은.
응답 :“탈종교가 아니라 초종교적이어야 한다. 심도학사에는 신부님도 오시고, 스님과 목사님도 오신다. 종교를 찾아서 오는 게 아니라 진리를 찾아서 온다. 내 종교가 알고 싶은 만큼 타종교도 알고 싶어서 온다. 하느님은 무한하지만 종교는 유한하다. 그러니 기존의 종교적 패러다임을 깨야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는 ‘종교’에 목이 마른 게 아니라 ‘진리’에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한편 길 교수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2016 서울인문포럼’(사무국 02- 587- 2708, seoulhforum@naver.com)에서 ‘인문학과 가치중립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그는 “대학의 인문학은 죽어가는데, ‘백화점 인문학’ ‘기업체 인문학’ ‘요점정리 학원식 인문학’은 붐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문적 인문학, 자연스러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좋은 책 읽기’라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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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학사(尋道學舍)

심도학사(尋道學舍)
강화도 고려산 자락에 위치한 심도학사 는 사단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길희성 교수는 “이제 나의 재산이 아니다. 심도학사는 공부하는 이들의 것이다. 후임자가 정해지면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종교 관련 서적 5000권이 소장돼 있다. 주말마다 ‘도덕경’ ‘반야심경’ ‘대학’ ‘복음서’ ‘바가바드기타’ ‘고백록’ ‘육조단경’ 등의 고전과 동서양 종교를 관통하는 주제별 강좌가 열린다. 회당 참가비는 15만원(숙박·식사 포함). 032-932-2957, 공식카페 cafe.daum.net/simdohaksa


강화도=백성호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16년 9월 19일] “종교 이젠 패러다임 깨야 스님·목사님도 내 강의 듣죠”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

2016. 9. 8.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제가 <신재생 에너지 기술 및 시장 분석>(비피기술거래)을 출간했습니다.

전문 서적이라 책 값이 6만 원이라 좀 비싸지만, 앞으로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목 차례>

제1장 태양열 1
1. 태양열 발전 3
1.1 태양열 발전 기술 4
1.2 태양열 발전소 건설 현황 10
2. 기타 태양열 이용 분야 12
2.1 조리 12
2.2 냉방 15
2.3 온수 활용 18
2.4 해수 담수화 19

제2장 태양광 21
1. 태양전지 기술 21
1.1 태양전지의 원리 21
1.2 태양전지의 종류 24
2. 태양광 비즈니스 26
2.1 세계 태양광 시장 현황 및 전망 26
2.2 세계 태양광 관련 추진 사업 35
2.3 한국의 태양광 시장 현황 및 전망 39
2.4 한국의 태양광 관련 추진 사업 41
2.5 태양광 관련 기업들 44
2.6 국내 태양광 비즈니스의 향후 과제 50

제3장 풍력 55
1. 풍력 발전 기술 55
1.1 풍력 발전기의 구성 55
1.2 풍력 발전기의 분류 57
2. 풍력 발전 비즈니스 61
2.1 세계 풍력 발전 시장 현황 및 전망 61
2.2 한국의 풍력 발전 산업 현황 및 전망 64
2.3 세계 풍력 발전 추진 사업 70
2.4 한국의 풍력 발전 추진 사업 75
2.5 풍력 발전 산업 전망 81
2.6 풍력 발전의 새로운 시도들 84
2.7 풍력 발전의 확대를 위해 풀어야할 과제 89

제4장 지열 93
1. 지열 이용 기술 93
1.1 지열 이용의 장단점 93
1.2 고온 지열의 이용 ? 난방, 지열 발전 94
1.3 저온 지열의 이용-냉난방 95
2. 지열 발전 비즈니스 98
2.1 세계 지열 발전 시장 현황 및 전망 98
2.2 한국의 지열 에너지 산업의 현황과 전망 103
2.3 지열 발전 기술 동향 108
2.4 지열 에너지의 문제점 및 해결과제 110

제5장 해양 에너지 114
1. 조력 발전 114
1.1 조력 발전의 종류 114
1.2 조력 발전의 장단점 117
1.3 세계 조력 발전 현황 118
1.4 한국의 조력 발전 현황 120
2. 파력발전 124
2.1 파력 발전의 종류 124
2.2 파력 발전의 장단점 125
2.3 파력 발전 현황 125
2.4 한국의 파력 발전 현황 126
3. 온도차 발전 127
3.1 온도차 발전의 종류 127
3.2 온도차 발전의 장단점 127
3.3 온도차 발전의 현황 127
3.4 한국의 온도차 발전 현황 128

제6장 수소 에너지와 연료전지 131
1. 수소 에너지의 기술 131
1.1 수소 에너지 기술 원리 131
1.2 수소 에너지의 장단점 136
2. 수소 에너지 비즈니스 137
2.1 수소 에너지 산업 현황 137
2.2 수소 에너지 산업의 단점 극복 139
3. 수소 연료전지 142
3.1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 산업 142
3.2 다른 연료전지들 143

제7장 바이오 에너지 146
1. 바이오 에너지 생산 기술 146
1.1 바이오 연료의 종류 148
1.2 바이오매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 150
1.3 바이오 에너지 기술 요소 151
2. 바이오 에너지 비즈니스 153
2.1 세계 바이오 에너지 시장 현황 및 발전 계획 153
2.2 한국의 바이오 에너지 산업 157
3. 바이오 에너지 산업이 풀어야할 과제 163

제8장 폐기물 재활용 166
1. 재활용의 필요성 166
2. 재활용 방법 168
2.1 폐기물을 수선 보완해서 재활용하는 방법 168
2.2 폐기물 중에서 유용한 성분을 추출해서 재이용하는 방법 169
2.3 가연성 폐기물을 폐기물 에너지로 재이용하는 방법 170
3. 폐기물 재활용 산업 171
3.1 세계 각국의 폐기물 재활용 정책 171
3.2. 폐기물 재활용 산업 현황 및 전망 173

제9장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179
1. CCS 기술 179
1.1 이산화탄소 포집, 수송, 저장 기술 179
1.2 CCS 기술의 문제점 182
1.3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다른 기술 183
2. CCS 비즈니스 185
2.1 세계 각국의 CCS 산업 현황과 전망 185
2.2 한국의 CCS 산업 현황과 전망 188

제10장 핵융합 194
1. 핵융합 기술 194
1.1 핵융합의 원리 194
1.2 핵융합의 장단점 196
1.3 핵융합의 해결과제 198
2. 핵융합 기술 개발 현황 200
2.1 세계의 핵융합 기술 개발 현황 200
2.2 한국의 핵융합 기술 개발 현황 202

제11장 신재생에너지 향후 전망 206
1. 신재생에너지 시장 전망 206
1.1 세계 신재생에너지 시장 전망 206
1.2 한국의 신재생 에너지 시장 전망 214
2. 신재생 에너지 경쟁력 비교 221
2.1 기술적 측면 221
2.2 상용화 측면 223
2.3 투자 측면 224

성경과 과학은 공존이 가능할까. 기독교적 창조론과 현대 과학은 상호 보완적일까, 아니면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최근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국창조과학회’ 안팎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창조론’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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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부터 7일간 미국 서부를 돌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사실이다”는 전제 하에 구약 창세기에 대한 과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미국창조과학 연구소의 입장을 취재했다. 창조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들의 주장에는 반박하는 ‘점진적 창조론’, 그리고 신(神)과 진화론을 동시에 수용하는 ‘유신론적 진화론’ 등 다른 주장들도 함께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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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진영은 노아의 방주도 실재했다고 본다. 영화 ?노아?에서 동물들이 암수 짝을 지어 방주를 향해 들어가고 있다. [킹맨(미국)=백성호 기자]

◆노아의 대홍수=구약 성경에는 ‘노아의 대홍수’가 기록돼 있다. 지구상에는 약 320개의 대홍수 전설이 내려온다. 미국창조과학 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17년째 300회 이상 ‘창조과학 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지질학 전문가 이재만 선교사는 “노아의 대홍수는 지구를 물로 뒤덮은 ‘전지구적 사건’이었다”며 “창세기에도 ‘땅에 물이 크게 불어나서, 온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높은 산들이 물에 잠겼다’는 구절이 있다. 이건 역사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대홍수 때 지구가 통째로 물에 잠겼고, 이후 해저 지진 등에 의해 땅이 솟으면서 바다와 육지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선교사 이재만 ‘젊은지구론’
“공룡·인간과 살다가 빙하시대 멸종
그랜드 캐니언, 노아 홍수의 증거”

물리학자 양승훈 ‘오래된 지구론’
“젊은 지구론, 성경 문자적으로 해석
노아 홍수 외에 격변 여러차례 있어”

이 선교사는 “당시 미처 바다로 빠지지 못한 물들은 고원 위에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호수를 형성했다. 그 호수의 둑이 터지면서 쏟아진 거대한 저탁류(물과 함께 이동하는 고밀도 퇴적물의 흐름)가 땅을 깎으면서 생겨난 게 그랜드 캐니언의 지형이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젊은 지구론’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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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선교사(왼쪽)가 지난달 31일 미국 그랜드 캐니언의 지층을 통해 ‘노아의 대홍수’를 설명하고 있다. [킹맨(미국)=백성호 기자]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 창립을 주도하며 ‘창조 과학’ 대중화에 기여했던 물리학자 양승훈(캐다나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 교수는 2008년 학회를 탈퇴했다. 양 교수는 ‘젊은 지구론’에 맞서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고 있다. ‘젊은 지구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지구상에 노아의 홍수 외에도 여러 차례의 격변이 있었다”는 ‘다중격변론’을 제기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 이전에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운석의 충돌에 의한 다중격변이 지구상에 있었으며, 노아의 대홍수는 신생대 홍적세 지층을 만든 마지막 격변이라고 반박한다.

◆고대 식물과 공룡=아담 창조 이전에 지구상에 생물이 있었을까.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담의 창조 이전에 여러 차례의 창조와 멸종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 ‘젊은 지구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 성경에 반하는 주장”이라고 받아친다. 미국 창조과학연구소는 “노아의 방주에는 공룡도 함께 탔었다. 공룡은 인간과 동시대에 살았다. 대홍수 이후에 찾아온 빙하시대와 해빙 때 공룡이 멸종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룡에 대한 성경적 이해’다.

방사성 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 결과에 대한 입장도 갈린다.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을 과학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오류가 많다는 이유다. 이 선교사는 “화석을 ‘고생대·중생대·신생대’ 등으로 나누는 지질시대표는 이들 화석에 대한 연대측정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론인가, 진화론인가=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는 아킬레스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적 존재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본다. “자바인과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의 유골은 중간단계가 아닌 사람의 것으로 판명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은 현존하는 원숭이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단계 생물로 여겨졌던 시조새도 최근 학계에서 “시조새는 조류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든, ‘오래된 지구론’을 주장하든 창조론자들은 “인간의 출발점은 진화가 아닌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반면 신(神)과 진화론을 모두 끌어안는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진화론적 유신론’의 입장을 취하는 진영도 있다. 천체물리학자 우종학(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창조과학’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믿는 것은 ‘성경을 우상시하는 성경교’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기독교’다.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해석의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물리학계에서 제시하는 138억 년이란 우주의 역사와 진화론적 발전 과정을 수용한다.

이처럼 기독교 안에서도 ‘창조와 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린다. 상대를 단죄하는 종교재판식 논쟁이 아니라 기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생산적 토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출처: 중앙일보 2016년 8월8일] “지구 나이는 6000년…노아 방주에 공룡도 탔다”

드디어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올 11월경에 책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신희섭 박사 - 채수일 한신대 총장
기독교, 과학적 성과 외면할 수 없어
죽음·영생 의미 오늘날엔 달라져
과학에 마음 열었던 달라이 라마
불교 백팔번뇌도 뇌과학으로 설명

 
올올해 종교·과학센터를 설립한 채수일 한신대 총장(오른쪽)과 뇌과학자 신희섭 박사. 21세기 종교를 이해하려면 뇌과학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뇌과학 연구의 권위자 신희섭 박사(64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가 신학자들 앞에서 ‘뇌 연구를 통한 마음의 이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올해 설립된 한신대종교와과학센터(센터장 전철)가 마련한제1회 종교와과학 포럼이 열린 자리다.

신 박사는 “뇌과학은 의식이 어떻게 뇌와 연결돼 있는가를 다루는 학문”이라며 “뇌과학자로서 뇌와 연관이 없는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구 선진국에서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학문 간 대화가 권장되고 있지만, 이날처럼 기독교 신학계가 먼저 나서 종교-과학 간 융합연구를 주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종교와과학센터는 유럽· 북미 센터와의 공동연구와 ‘성직자를 위한 과학 코스’ 등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이날 포럼이 끝난 후 뇌과학자와 신학자의 대담을 따로 마련했다. 신 박사와 채수일 한신대 총장(62)이 두 주인공이다. 채 총장은 “기독교 신학 자체가 대화하는 학문“이라며 “과학과 종교가 서로 존중하며 대화할 때 인간에 대한 탐구가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종교와 과학은 보완관계

채수일(이하 채):기독교가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에서 스스로 변증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와 대화가 필요하다. 현재 일부에서는 과학과 등을 지는 극단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의견이 다르더라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게 결국 서로를 돕는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 없는 과학은 불완전하고 과학 없는 종교는 맹목적이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에 공감한다. 종교에는 과학이 필요한데, 과학자로서 종교를 어떻게 보시는지 묻고 싶다.

신희섭(이하 신):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뇌의 기능이 인간의 행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다. 우리는 커피 잔을 들고 이것이 커피 잔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기분이 우울한지 등을 묻는 것이다. 과학이 이런 질문을 파고들다 보면 종교와 철학에 가 닿을 수밖에 없다.하지만 지금 뇌 연구는 아직 이런 큰 질문에 가 닿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가를 규명하는 수준에 와 있다(웃음). 분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의식과 행위가 뇌와 연결돼 있다는점이다. 예술·철학·종교는 모두 뇌과학의 탐구 대상이다.

채: 과학과의 대화에 개방적인 신학자가 있지만 아직은 그들이 소수인 게 현실이다. 한편 자연과학자들 가운데 '종교는 사기'라고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신: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79)는 미 신경과학자들과 대담에 나설 만큼 과학과의 대화에 적극적이다. 불교에서는 과학적인 팩트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종교체험 할 때 뇌에 무슨 변화가 있는 지 미 하버드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협력했다. 저는 불교에 관심이 많은데 불교 자체가 뇌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유식 사상(唯識思想)마음 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마음에 의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사상)은 심리학이고 뇌과학이다. '백팔번뇌'라는 말을 보라. 사람의 마음을 108개로 구분해 놓은 것인데, 그게다 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신 단장은 불교가 뇌과학에 가까운 이유로 “관심사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불교에선 사람이 왜 괴로운가를 물으며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따진다. 탐구 대상이 마음이기 때문에 저절로 뇌과학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채수일 한신대 총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뇌는적응과 필요에 의해변화하는 것“

채: 기독교는 뇌과학뿐만 아니라 천체물리학·진화론 등 다양한 과학적 발전·발견과 충돌을 일으켜왔다.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기초해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원론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 몸과 영혼을 나누어 본다.기독교 신학은 현재 많은 도전을 마주하고 있는데 저는 뇌과학이 이원론적 기독교 신학에 자기 수정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결정론'과 '뇌 환원주의'에 대해 저항이 적지 않다.

신: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말은유전학 연구하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 유전자가 중요하기는 해도 환경의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태아는 수정됐을 때부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산모의 스트레스 호르몬은 태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정서 상태도 큰 영향을 미친다. 뇌는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고 변화한다. 그것을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 부르는데, 그 가소성이 대단하다. 이 가소성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과 같은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채: 그렇다면 뇌가 진화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신: 가소성이 크다는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반응의 결과가 뇌에 저장되는데 반응의 결과가 뇌 회로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맞다.

채:사람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는가.

신: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매우 종합적인 것이다. 뇌과학에서 풀고 싶어하는 수수께끼가 바로 사람의 성격인데, 사람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은 뇌 전체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평생의 경험과 기억이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무엇을 바꿀 수 있느냐 언제 바꿀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유아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의 가소성이 가장 큰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숭이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태어났을 때 먹을 것은 잘 주면서 부모의 스킨쉽없이 키운 원숭이는 자라서 문제가 생긴다. 매우 잔인한 연구이지만 이것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

채:하지만 사도 바울(성경에 따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다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처럼 극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 않나.

신: 일명 '은혜를 받았다'는 변화를 묻는 것인가.저는 그것을 굉장히 어려운 변화, 다양한 변화를 유도하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뇌에는 워낙 다양한 회로가 관련 돼 있고 그런 회로가 바뀔 정도라면 엄청난 영향이 필요하다. 그런 변화가 '있다' '없다'는 것은 제가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저는 그것을 엄청난 영향에 의해 뇌의 단단한 회로들이 바뀌었구나 하고 해석한다.


◆죽음과 내세영생의 의미

채:종교는 인간 인식의 한계, 생명의 한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열망 등에 근거해 고유한 관점을 형성해왔다. 예를 들면 '내세'의 존재 여부를 놓고 과학계와 종교계의 충돌이 크다.

신: 내세의 문제는 과학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있는 것으로도, 반대로 없는 것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과학적인 논의는 불가능하고 전통적인 종교적인 논의만 가능한 것이다.

채: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어떤 종류로든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가령 서구 사람들은 자신이 매주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뇌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연구한 두 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마이클 맥과이어는 『 신의 뇌』라는 책에서 '뇌가 종교를 만들어낸 것은 종교적 믿음이 뇌와 신체 생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뇌가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막연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을, 불균형과 비대칭보다 균형과 대칭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그것은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입증해야 한다(웃음). 경험상으로 보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한 게 사실이다. 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것에 대해 몰라서 그렇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뭔지 확실히 알면 두렵지 않을 수도 있다. 뇌는 합리화를 잘한다. '합리화하는 뇌'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자신을 속인다는 뜻이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는'무자기' 즉,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말씀이 모두 합리화하는 뇌를 설명해 준다고 본다.우리는 도대체 종교가 무엇인지도 다시 물어봐야 한다. 어릴 때 저의 할머니는 "조상님이 도왔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그 분에겐 제사가 생활의 일부였다. 이럴 때 조상님은 종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습성을 보여준다. 같은 종교라고 해도 너무도 다른 경우를 많이 보았다. 예컨대 불교에 귀의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구복신앙을 갖지만, 고승들을 보면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점에서 저는 '종교'보다는 종교를 믿는 습성인 '종교성'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종교와과학의 융합 연구를 위해 올해 종교와과학센터를 설립한 채수일 한신대 총장(오른쪽)과 뇌과학자 신희섭 한국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채: 근본적으로 종교성이라는 것이 인간 안에 내재돼 있다고 보시는 것 같다. 저도 그 점에 동의한다.종교성이라는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은데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폄하하는 것은 문제다. 인간에게는 인식의 한계가 있고 인간은 결국 죽는다, 신은 불멸이다 하는 것에 기대며 종교의 우월적 가치를주장한다.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가.

신: 저는 칼릴 지브란(1883~1931)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죽음이 뭐냐. 바람 속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것, 태양에 녹아드는 것'(For what is it to die but to stand naked in the wind and to melt into the sun). 영화 '박쥐'의 강렬한 마지막 장면을 보았을 때 이 싯구가 떠올랐다. 이 시는 언제나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과학자도 동물 실험을 많이 하다 보니까 연말이면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을 위해위령제를 지낸다.

채: 생쥐를 위해 위령제를 지내는 것은 쥐와 살아 있는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사도 그렇다. 실제로 죽은 자에게 혼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죽은 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제사를 무조건미신이라고 보는입장은 잘못된 것이다. 제사의 본질에 대한 논의 출발 자체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신: 과학이 종교를 위협한다고 보시지는 않나.

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학문과의 대화는 상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내 정신적 체계의 무지를 깨닫게 해준다. 신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 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죽음을 원죄의 결과인 것처럼 말하는데, 오늘날의 신학은 과연 그런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끝은 곧 시작인 것이다.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영생은 생명의 무한한 연장 상태가 아니라, 과학적인 깨달음으로 다시 생각하면 '의미로 충만한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과학과의 대화가 그런 통찰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신학과 과학의 대화 가능성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저는 과학과의 대화가 신학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리=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신희섭(64)=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 코넬대에서 유전학 연구로 박사학위. 미 MIT 조교수·포항공대 생명과학 교수·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 역임.

◆채수일(62)=한국신학대학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석사), 독일 하이델베르크대(박사)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2009년부터 한신대 총장. 세계교회협의회(WCC) 정의평화창조위원회·국제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15일) 



그 동안 출간했던 책들

2014. 8. 26. 07:21 | Posted by 행복 기술자

그 동안 제가 출간했던 책이 13권입니다.

2007년에 <대한민국 이공계 공돌이리를 버려라>(청림출판)를 출간한 이후 거의 1년에 2권 정도의 책을 출간한 셈입니다.

최근에는 1년에 1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과학적인 신>을 출간할 목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단독 출간> 9권

- 부의 진화론(태웅출판사, 2014년 3월)

- 사오정 넘고 오륙도 돌아 행복공동체로(필맥, 2013년 4월)

- 퇴직은 행복의 시작이다(필맥, 2011년 4월)

- 녹색성장의 길 1권, 2권(한국표준협회, 2011년 2월)

- CEO 공학의 숲에서 경영을 논하다(페이퍼로드, 2010년 3월)

- 당신의 미래에 취업하라(필맥, 2009년 9월)

- 부동산 신 투자전략(지상사, 2009년 3월)

- 행복하게 나이 들기(휴먼앤북스, 2008년 5월)

- 대한민국 이공계 공돌이를 버려라(청림출판, 2007년 6월)

 

       

 

 

 

 

<공저> 2권

- 소심남녀의 재테크 도전기(지식노마드, 2009년 12월)

- 사람 예찬(세종미디어, 2009년 11월)

 

 

 

< 번역서> 2권

- 감정조절설명서(지상사, 2012년 8월) 

- 어니스트 시그널(비즈니스맵,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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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혹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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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회관 대강당에 메튜 폭스의 강연을 들으러온 청중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창조’란 말이 부쩍 떴다. 그러나 그 ‘창조’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직도 안갯속이다. 진정한 창조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해주는 인물이 한국을 찾았다. 미국 오클랜드에 창조영성대학을 설립한 매슈 폭스(74) 신부다. 


그는 여성성과 창조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이고 원죄론 위주의 교회를 ‘우주적 그리스도’의 창조적 교회로 변화시켜야 함을 역설하는 개혁가다. 그가 말하는 ‘우주적 그리스도’란 우주 만생명 자체가 바로 하느님이요, 그리스도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가톨릭 도미니칸 수도회 소속의 신부로서 34년 동안 지냈으나 그런 개혁적 발언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돼 1995년 축출됐다. 이후 성공회가 그를 영입했기에 그는 성공회 신부다.


 그러나 지난 19~24일 그의 제자 고혜경 박사의 소개로 그를 초청한 것은 가톨릭 쪽이었다. 지난 20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열린 에코포럼의 세시간 강연엔 가톨릭 사제·수녀 100여명을 비롯한 400여명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차 ‘새로운 교회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그는 <우주 그리스도의 도래>, <원복> 등을 통해 책으로만 소개됐을 뿐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영성가를 지난 23일 한 호텔에서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창조영성가답게 ‘직관’을 중시한다. 그는 “하느님이 매 순간 천사, 즉 직관을 쏟아붓고 있는데 우리가 문을 닫아걸고 있다”며 “직관에 도움을 청하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직관이 가부장적 질서나 근본주의에서 벗어날 때 꽃필 수 있다고 본다. 불교의 선승다운 면모다. 내공을 갖추고서도 허례 같은 걸 요구하지 않으면 진정한 문답이 가능해진다.


 첫 질문은 그의 전문 특허인 창조성에 대해서다. ‘인간들의 창조성이라는 게 탐욕을 이루기 위해 자연과 생명, 즉 ‘우주적 그리스도’를 해치는 데 더 많이 쓰이지 않느냐’는 거였다.


 “맞다.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핵무기를 만들 때도 창조성이 발휘된다. 인간이 그렇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 인간의 악이 모든 동물들의 악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를 보라. 그런 파괴적 힘은 다분히 가부장적이어서 소수의 이익만을 섬기는 것이다. 신의 모성성으로부터 나온 창조는 정의와 자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 소수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과 모든 생명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명까지 위하는 창조성이어야 한다.”


 폭스 신부는 모성성과 창조성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세상에 더욱 확산되어가는 ‘근본주의 경향’을 꼽는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인 근본주의에 대해 그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주위에 깊은 참호를 파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매스컴과 인터넷으로 세상이 동시에 소통되고 있는데 왜 근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느냐”고 물었다.


 “여전히 가부장적 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질서와 통제만을 선호하고, 혼돈을 싫어한다. 질서와 통제가 극대화한 사회가 파시즘이다. 옛날엔 혼돈을 여신과 동일시했다. 혼돈은 새로운 탄생을 가져온다. 아이가 태어날 때 보라. 피범벅이 되어 혼돈 그 자체다. 생명은 그곳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가부장제는 혼돈을 싫어해 여성성의 발현을 이단이라며 마녀사냥을 했다. 동성애자나 성소수자도 핍박한다. 다양성을 인정치 않는다. 본래 자연 그 자체는 다양한 것인데도 말이다.”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는 것도 다양성에 대한 열린 태도 때문이다. 그는 “전임 두 교황(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도 16세)은 이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간적으로 열려 있으며, 다양한 것에 강한 호기심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는 근본주의적 종교재판의 희생양이다. 그래서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선 부정과 군사기지 건설, 환경 파괴 등에 반대해 정의를 외친 신부·수도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종북’으로 비판을 받는데, 그들에게 해줄 말이 있느냐”고.


 “예언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논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소수 권력자를 만족시키는 현 체제는 당연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물건너간 것이고 핍박을 자처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랬고, 토마스 아퀴나스도 죽어서까지 3번이나 파문을 당했다. 에크하르트도 그토록 비난을 받았고, 힐데가르트 수녀도 700년이나 유폐됐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반대한 시위에 나섰을 때 흑인 목사들조차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설사 상사가 잘못된 일에 동조하라고 하더라도 양심에 따라야 한다’는 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이다. 현시대의 응원을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그런 위대한 선조들과 순교자들, 예언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받는 억압에 대해 누구도 수동적으로 있어선 안 된다”는 행동파다. 억압받고 창조성을 억누르면 우울해지고 비관주의만 팽배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질서와 통제의 우상인 가부장적 하느님이 아니라 모성적인 창조적, 우주적 하느님을 발현해 가라고 독려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직관적 창조주의자다운 마지막 충고를 잊지 않는다.


 “가능성, 즉 대안이나 출구가 없을 때 절망하게 된다. 예언자들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논쟁과 비난에만 매몰되지 말고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만들어내고 조직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어야 한다. 사람들은 논쟁보다 기쁨을 좋아한다. 좋아한 것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창조적이니 못할 게 없지 않은가.”


 (한겨레신문 2014년 7월 31일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제 책(제목: 부의 진회론)이 출간되었습니다

2014. 3. 8.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목차>

 

프롤로그
자본주의는 최후의 경제 체제인가?
제1장 부의 진화
제2장 경제 성장에 따른 이슈들
제3장 한국에서의 부의 진화
제4장 경제 성장은 지속될 수 있는가?
제5장 부의 패러다임 전환
제6장 한국 경제 위기, 공유와 상생이 해결책이다
에필로그
공유와 상생의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출판사 책 소개>

 

자본주의는 최후의 경제체제인가?


자본주의는 초기의 상업 자본주의를 거쳐, 산업 혁명 이후의 산업 자본주의, 최근의 금융 자본주의 등으로 끊임없이 변천되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자본주의는 그 형태는 조금 바뀌겠지만, 또 다른 발전된 형태로 지속될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하고 있다. 이런 자본주의의 지속성에 대한 맹신은 1990년대 초반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를 대신할 체제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난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경제 체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가 앞으로도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경제 체제인가?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경제 체제는 없는 것인가? 요즘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완벽성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의 대부분은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현실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자본주의 신봉자인 신자유주의자들의 경우에는 현재의 세계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는 시스템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항변하면서 세계화와 규제의 완전 철폐 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세계 경제 위기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 때문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특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분석하고 그에 대한 단편적인 처방을 제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크게 보아서 화석 연료의 활용과 그를 기반으로 한 금융 거품의 형성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자본주의의 두 축,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기반인 화석 연료가 고갈된다면 현대 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이 책에서 던져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은 주로 화석 연료는 충분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금융 거품이 꺼짐으로써 경제 위기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 대세였다. 하지만 이제 화석 연료의 고갈이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화석 연료가 무한정하다는 전제가 깨지는 순간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그 뿌리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가 아닌 공학도인 내가 이 책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앞으로 닥칠 경제 위기를 이해하고 새로운 경제 체제를 예측하는 데 화석 연료의 고갈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나름대로 현재 경제 위기의 원인과 여러 가지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는 이제까지의 경제학자들의 이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현대 경제 이론은 산업 혁명 이후의 상황에 맞춰져 있다. 즉, 자원은 무한정하며, 인간은 경제 활동을 통해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전제가 경제이론에 깔려 있다. 다시 말해 경제 이론은 무한정한 자원을 활용해서 부로 잘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제 자원, 특히 화석 연료는 더 이상 무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만 현재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경제 이론에 의해 단기적인 대책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의 고갈을 반드시 고려하여야만 한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현재 겪고 있는 금융 위기는 앞으로 닥칠 화석 연료의 고갈 문제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금융 위기에서는 개인 간에 또는 국가 간에 부를 얼마나 뺏고 뺏기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들이 적게 번다든가, 돈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있는 것마저 뺏긴다든가 하는 문제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화석 연료의 고갈 문제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잘못 대처하면 인류의 모든 부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생존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현재의 경제 위기를 경제학자가 아닌 공학도의 입장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학도인 내가 부에 대한 분석을 하는 데 있어서 갖는 장점은 단순한 통계 분석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 이치를 경제 분석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자연 법칙으로 인정받고 있는 열역학 법칙, 그중에서도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을 경제에 적용한 엔트로피 경제학을 통해 부의 정체를 분석하는 시도도 해보고자 한다. 엔트로피 경제학은 부가 무한하게 커질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엔트로피 경제학을 통해 부의 거품은 언젠가는 터질 것이며, 그 시기가 멀지 않았음도 밝히고자 한다. 물론 자연에 적용되는 엔트로피 법칙을 사회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느냐 하는 비판적인 의견도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현상도 자연 현상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적용 대상이 된다는 점도 밝힐 예정이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은 문제점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결책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 경제시스템의 문제점을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경제 성장을 위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경제 성장이 해결 방안이다. 서로 공유하고 상생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면 화석 연료 고갈에 의한 위기도, 금융 거품의 붕괴에 의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위기는‘위험+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경제 위기가 오히려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행복한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 원리의 단계

일반적으로 과학 원리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린다. 어떤 경우에는 ‘~~ 법칙’이라 불리기도 하고, ‘~~이론’, ‘~~론’ 또는 ‘~~설’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일반상대성 이론, 진화론, 지동설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법칙을 붙이고, 어떤 경우에 이론, 론, 설 등의 말을 뒤에 붙이는가? 아직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여기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법칙은 확고한 원리로 인정받는 경우에 붙이고 있다. 예를 들면 ‘만유인력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물질 보존의 법칙’ ‘열역학 법칙’ 멘델의 ‘유전 법칙’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물질보존의 법칙의 경우만 해도 물질과 에너지가 별개라고 생각한 고전물리학에서는 법칙으로 성립이 되었지만, 물질과 에너지가 상호 전이가 가능하다는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고 나서는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에너지까지 물질 보존의 법칙에 고려하고, 물질까지 에너지 보존 법칙에 고려한다면 이 두 가지 법칙은 여전히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법칙이 보통 관찰된 비교적 단순한 현상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체험을 경험론적으로 체계화시킨 것이라면, 이론은 관찰된 현상을 보다 폭 넓게 적용하기 위하여 가설을 세워 만들어낸 논리체계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당연시 했던 절대공간, 절대시간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우주에 대한 관찰 결과에 더 적합하도록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뉴턴의 고전역학 법칙들을 풀 수 있다. 다시 말해 뉴턴역학은 상대성 이론의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즉 계산하는 조건을 우리 일상생활의 인식범위로 한정하면 상대성 이론과 뉴턴역학은 거의 결과가 같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자면 뉴턴역학은 모든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맞지 않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들어맞기 때문에 아직도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뉴턴역학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풀 수 있기 반면에, 상대성 이론은 전문가 수준에서만 풀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뉴턴역학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이 일상생활에 점차 많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일상생활에서도 뉴턴역학보다는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야 될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잇다. 예를 들어 요즘 일상화되고 있는 GPS을 통해 자동차 위치를 계산할 때 뉴턴역학만 적용하게 되면 하루 수 킬로미터의 오차가 생기게 된다. 물론 현재 GPS를 통해 자동차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은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이론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지만, 어떤 가설을 통해 관찰된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을 때 이를 보통 ‘~~론’이라 칭하게 된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는 진화론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과학적으로 봤을 때 진화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할만한 확실한 근거는 아직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진화론이 옳으냐, 창조론이 옳으냐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진화론의 근거로 화석 등의 자료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동종 생물의 차이를 들고 있지만, 진화론을 반박할 자료들도 만만치 않게 많이 있다. 진화론의 가장 큰 취약점은 과거의 현상을 재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불어 생물의 다양성이라든가, 복잡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생물체가 어떻게 우연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성경을 절대적인 과학적 사실로 믿고 있는 창조론의 경우에도 명확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최근 대두되고 있는 ‘성경이 비유적 해석’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이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3부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예를 들어 시간이라는 단위가 빅뱅 초기와 앞으로 열적 죽음에 도달할 먼 훗날에 현재와 똑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과학적이다. 그러니까 창세기에 기술된 하루가 현재의 기준으로 계산된 하루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성경에 기술한 창조론도 과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론적인 근거나 체계가 부족하지만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방법을 ‘~~설’이라고 한다. 대개 ‘~~설’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같이 진화 현상을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여서 제시됐지만, 맨델의 유전법칙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된 성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보다 강력한 근거가 제시되면서 ‘~~론’이나 ‘~~법칙’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원자설’과 같이 고대 그리스에서 데모크리토스에 단순히 개념적으로 제시 되었지만 차후에 실험을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면서 ‘원자론’으로 격상된 경우도 있다. 사실 ‘~~설’은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그대로 단군신화설과 같이 누구나 그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카더라’ 수준의 논란거리 제공을 함으로써 차후 증명을 요하는 모든 경우를 포함하게 된다.

법칙을 주로 많이 사용하던 시기는 고전물리학이 완성되기까지인 19세기 말까지다. 실제로 19세기 말에는 자연현상을 모두 이해했으니 물리학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서 고전물리학 자체 모순에서 비롯한 심각한 문제가 알려지게 되었다. 즉 유명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이론 확립으로 고전물리학은 극히 제한된 조건 하에서만 성립하는 법칙임이 밝혀졌다. 즉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 범위 안에서는 고전물리학이 성립되지만, 우주와 같이 아주 거대한 대상이나 원자와 같은 아주 미세한 대상에는 고전물리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법칙’이란 용어도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잘 쓰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법칙을 벗어난 새로운 법칙이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믿었던 과학법칙도 나중에 부정될 수 있다면 과학법칙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그런 불확실성 하에서 과학법칙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의 속성을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된 견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과학이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인식작용이라고 정의했는데, 그렇다면 과학법칙의 불확실성을 우리의 인식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과학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과학법칙을 적용해서 현상을 예측하고 대응하되, 다른 현상이 발생할 경우에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좀 더 고상하게 표현해서 과학적 사고라고 부르는데, 이 ‘과학적 사고’는 중요하기 때문에 뒤에 별도로 다루기로 하겠다.

‘과학은 객관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과학적 실재론’이라고 부른데, 현재는 이러한 과학적 실재론은 받아들이지 않는 게 대세다. 그렇다면 어떤 이론적 해석이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현대는 대체적으로 상호주관성을 통해 과학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추세다. 상호주관성이란 대다수 과학자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 즉 실험, 관측과 논리적 추론을 통한 검증을 거쳐 상호 인정하면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과학 활동이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우리의 인식작용이라면, 이는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다수 과학자들이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면 과학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일반적인 과정은 과학 잡지 또는 기술 잡지에 기고하여 심사를 받으면서 1차로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을 받고, 발표된 논문은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확인 작업을 거치면서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현재 매년 수십만 편의 학술 논문이 발표되지만 수 년 후 과학 집단 내에서 인정되어 과학적 사실로 수용되는 내용은 10퍼센트 미만이다. 사실 과학이 발전한 이유는 미신이나 종교를 타파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과학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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