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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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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차별화된 최고 인재인가?

 

이제까지 달에 착륙했던 사람들은 누가 있는가? 아마도 닐 암스트롱외에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것이 1969년의 일이고, 그 후 아폴로 12, 14, 15, 16, 17호 등이 달에 다녀왔지만, 닐 암스트롱 외에는 기억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당연히 닐 암스트롱이 첫 번째로 달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최고만이 기억되는 세상’,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다. 기업도, 사람도 최고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된다고 하면 반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원 시절부터, 아니 엄마 뱃속에서부터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사실 차별화된 최고 인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때나 대화를 나눌 때도 사람들이 '최고'이라는 단어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느낀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최고'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모두 최고가 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냥 최고이 아니라 '차별화된 최고'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모두 차별화라는 단어보다는 최고이라는 단어에만 눈길을 주는 것 같다. 나도 산업 사회에서 말하는 '최고'이 되자는 주장에는 절대 반대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최고', 즉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혼자 우뚝 서는 최고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산업사회의 최고 개념은 한 사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패배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외한 절대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장하는 차별화된 최고개념은 모든 사람들을 승리자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최고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수학은 못하지만 미술에서는 최고', '공부를 못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데는 최고', '느리지만 기발한 생각을 하는 데는 최고' 등 뭔가 자기만의 분야를 만들어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차별화된 최고의 개념을 인정하는 사회는 서로의 다른 능력을 인정하고 협력하여 더 큰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니라, 각자가 차별화된 최고 분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것을 만드는 상생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차별화된 최고 인재를 찾는 이유도 기업 자체가 차별화된 최고 기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사는 경우의 예를 들어보자. 과거에는 별로 핸드폰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주위의 말만 듣거나, 판매원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 샀기 때문에 최고 제품을 살 확률이 낮았다. 따라서 자기도 모르게, 또는 친인척인 판매사원들의 권유로 2, 3등 제품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에 대한 정보가 너무 많다. 가격 비교 사이트도 있고, 사용해 본 사람들의 핸드폰에 대한 평가를 올려놓은 사이트도 많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2등인 핸드폰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누구나 최고 제품을 사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식 사회가 되면서 필히 나타나게 된 현상이 바로 최고 제품에 대한 쓸림 현상승자 독식에 의한 양극화 현상이다. 글로벌 기업인 지이(GE)와 삼성이 세계 최고가 아닌 사업 분야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의 차별화된 최고 전략은 산업사회에서의 최고 제품 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산업사회에서의 최고 제품 전략이 모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현재의 차별화된 최고 전략은 동일한 제품이라도 소비자층을 차별화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 제조회사인 <현인지향>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사업 개시 2년 만에 일본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현인지향>의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은 불친절이다. 이 회사의 제품은 포장이 엉성하고, 제품에 대한 설명서도 없다. 제품에 대한 의문점이 생겨도 문의할 회사 내 담당자도 없다. <현인지향>은 컴퓨터 그래픽 카드의 주 고객이 전문가들이라는 데 마케팅의 주안점을 두었다. 즉 전문가들이라면 포장이 화려할 필요도 없고, 설명서도 필요 없다는 점에 착안을 한 것이다. 그러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하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인지향>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전문가로서 차별화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즉 포장에도 신경을 안 쓰고, 매뉴얼도 필요 없는 전문가로 보이고 싶어서 <현인지향>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문가들이 주 고객이었으나, 점차 일반인들도 전문가로 보이고 싶어서 <현인지향>의 제품을 주문하게 되면서 매출이 획기적으로 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케팅 전략은 고객들에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효과뿐만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제품의 출시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즉 포장, 사용 매뉴얼 작성, 상담 담당자 채용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제품 개발과 제조 이외의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으니 제품 출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제품의 사이클이 빠른 IT 사업에서 출시 속도가 경쟁업체보다 빠르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아마도 <현인지향>에서 뽑으려고 했던 인재는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잘 만드는 능력을 가진 인재보다는 차별화된 최고 마케팅 전략 인재였을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잘 만드는 일류 대학 출신보다는 지방대생이라도 차별화된 최고 마케팅 전략 능력을 가진 인재였을 것이다.

기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 인재의 예를 들어보겠다. 몇 년 전 윤효간이라는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제목으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한 공연을 관람했다. 아는 후배가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한 피아니스트의 특별 공연이라면서 나를 초대를 해서 우연히 그 공연을 관람한 것이다. 이 공연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윤효간이라는 피아니스트가 고졸(중퇴?)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윤효간은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것은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어릴 적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그러다 중학생 때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는데 등수에 들지 못하고 나서는 왜 피아노는 악보에 정해진 대로만 쳐야 하는 건지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 입시를 위해 규격화된 피아노 연주를 배우라는 주위(부모?)의 뜻을 거부하고 고3때 가출을 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자신만의 차별화된(?) 피아노 연주 방법을 개발(?)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피아노 연주방법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피아노가 무대 위에만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사막 위에도, 폐허 위에도, 국군 장병들 속에도 피아노를 놓는 파격을 저지르고 있다. 그는 피아노를 운반하기 위한 전용 차량까지 구비하고 있다. 윤효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자신만의 해석에 의한 연주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다른 피아니스들은 악보에 약하게 치라는 곳에서 세게 쳐 보고, 한 옥타브 올리거나 내려서 치는 윤효간 식의 파격적인 연주는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윤효간은 악보와는 다른 연주를 하면서 이를 세상에서 오직 윤효간만이 하는 차별화된 연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효간은 유명한 대학, 유명한 스승 밑에서 피아노를 배워야 성공한다는 세간의 상식을 깨고 자신만의 차별성으로 차별화된 최고 인재가 된 것이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도 최고 인재지만, 자신만의 피아노 연주 분야를 개척한 윤효간도 차별화된 최고 인재.

우리는 최고하면 수학에서 최고, 영어에서 최고, 학급에서 최고, 피아노 연주에서 최고를 생각한다. 또한 그 최고의 기준이 정해진 규격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 하는 데 달려있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최고 방식으로는 앞으로 성공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이 요구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선천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이다. 물론 윤효간도 노력은 했겠지만,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에 조성진만큼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효간은 피아노를 단순히 정해진 규격에 따라 잘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즐기는 도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윤효간만의 피아노 연주가 가능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연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조성진처럼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나와서 조성진을 2, 3등으로 밀어내겠지만, 윤효간을 2, 3등으로 밀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윤효간은 자신만의 분야에서 차별화된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날 윤효간의 연주회에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관람을 왔다. 이 연주회의 특징 중의 한 가지가 피아노 연주가 끝난 다음 질의응답 시간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그때 자녀들에게 윤효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날 부모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부모들은 고졸인 윤효간도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내 자녀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의망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온 아이들 중에서 어떤 아이가 윤효간을 따라서 했다고 해서 윤효간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절대로 차별화된 최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최고가 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어서 거기서 최고를 하면 된다. 아니 자신만의 분야를 만들면 저절로 최고가 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처럼 남이 만들어준 분야에서 최고하기는 너무 어렵지만, 피아니스트 윤효간처럼 자신이 만든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최고를 할 수 있다. 나는 지방 대학에 강연을 갈 때면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고 한다. 고졸 학력인 윤효간이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차별화된 최고이 되기 위한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격화된 최고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와 교사, 교수 등 주위로부터 구박을 받아 주눅이 든 지방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제 세상은 과거의 규격화된 최고 인재도 필요하지만, ‘차별화된 최고가 더욱 더 필요한 시대로 변했다.

 

새로운 시대는 차별화된 1등 인재를 원한다

 

나는 1980년대 강원도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내가 했던 주 업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멘트 제조공정의 열효율을 측정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최신 기술 정보를 모아 정리한 다음 다른 기술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시멘트는 섭씨 1450도의 고온에서 석회석 등 돌가루(?)를 구어서(전문 용어로 소성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연료(당시에는 벙커씨유였지만, 나중에는 유연탄으로 바뀌었다)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전기를 포함하면 에너지 비용이 70퍼센트를 넘었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시멘트 제조 공장에서 아주 중요한 업무였다. 제조원가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퍼센트를 조금 넘었으니까, 에너지 효율을 10퍼센트만 높이면 인건비를 두 배로 올려줄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에너지 효율을 측정하려면 각 공정의 공기의 풍량, 압력, 온도 등을 측정한 다음 에너지 수지(energy balance)를 계산해야 한다. 무거운 측정 기구를 들고 서너 명이 뜨겁고 먼지 많은 현장에서 오전 내내 측정을 하고나면, 오후에는 몇 시간에 걸쳐 계산을 해야 했다. 당시에는 컴퓨터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계산은 계산기를 이용해서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다. 그나마 1970년대 중반에 전자계산기가 나왔으니까 망정이지, 그 이전에는 주산으로 계산을 하거나 구구단을 외어가면서 계산을 해야 했다. 아무튼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에너지 효율을 계산하고 나면, 그 계산결과를 과장, 차장, 부장, 상무 등을 거쳐 공장장에게 보고하고, 공장장은 퇴근 전까지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하지만 최근 삼척공장을 가봤더니 내가 했던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 기술자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시멘트 제조공정에서 여전히 에너지 효율은 중요하지만, 모든 측정은 온라인으로, 계산은 컴퓨터로 행해져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장 근무자나 공장장은 물론이고 본사에서도 에너지 효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당시 회사 장학금을 받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의 석사 과정을 마친 다음 공장에서 근무하던 엘리트 기술자였다. 하지만 엘리트 기술자였던 내가 했을 정도로 중요했던 업무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이 필요 없는 업무가 되었다. 당시에 내가 받았던 학교 교육 내용은 측정하고 계산하는 업무에 적합한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이런 업무가 필요 없어진 지금도 대학의 교육 내용은 변함이 없다.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 업무를 아직도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인재상도 바뀌고 대학의 커리큘럼이나 교육 내용도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산업 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 교육을 고집하고 있다.

그럼 새로운 시대에는 어떤 인재가 필요한 것일까? 앞으로 계속 설명을 하겠지만, 우선 비유를 들어 보겠다. 어느 날 아내와 백화점에 갔다가 아내가 핸드백 코너에 전시된 어떤 핸드백을 가리키며 가격이 얼마나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루이비통 핸드백이었는데, 그 가격이 무려 500만 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50만 원을 잘못 표기했거나, 내가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1,000만 원이 넘는 핸드백도 많다는 것이었다. 시장에 가면 5만 원만 줘도 쓸 만한 핸드백을 살 수 있을 텐데, 왜 고급 백화점에서는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팔리고 있는 것일까? 핸드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소지품을 넣는 것이지만, 500만 원,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소지품만 넣기 위해서 그런 비싼 핸드백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용도라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5만 원짜리 핸드백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비싼 핸드백을 사는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가난했던 1970년대에는 5만 원짜리 핸드백이 대세였지만, 지금은 부유층이 많아지면서 500만 원,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찾는 소비자층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5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이익이 많이 남겠는가, 아니면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익이 많이 남겠는가? 누구나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서 파는 게 더 이익이 많이 남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제품을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만 원짜리 핸드백에 비해, 5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당연히 품질이 더 좋겠지만, 100배 더 좋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2, 3배 더 좋을까? 소비자들은 품질이 더 좋기 때문에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브랜드 때문에 100배나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원가가 2만 원(40퍼센트)라고 했을 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원가는 얼마나 될까? 2만 원보다는 많겠지만, 500만 원의 40퍼센트인 200만 원이 되지는 않을 것은 틀림이 없다.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20만 원(4퍼센트)이라고 가정하자. 물론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5만 원짜리보다는 500만 원짜리가 훨씬 더 많겠지만 말이다.

5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던 과거의 기업에서는 원가 절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다. 과거에 내가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했던 일이 바로 원가 절감을 하는 업무였다. 원가 절감에 기여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시멘트 회사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내가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주면서 스카우트 했던 것이다. 하지만 5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드는 현대의 기업에서는 원가 절감보다는 비싼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500만 원짜리 핸드백의 제조 원가인 20만 원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 1,000만 원짜리로 만드는 게 기업으로서는 훨씬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교육 내용은 아직도 핸드백의 제조 원가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은 제조원가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인재가 필요한 데도 말이다. 대학에서 이런 내용의 강의를 하면 교수들. 특히 공대 교수들은 그래도 품질 향상이나 원가 절감이 중요하고, 더 나아가 브랜드를 높이는 것은 공대의 교육의 목표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물론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이 중요하지만, 그런 인재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인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다. 지방대생들의 입장에서는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는 서울 명문대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능력으로는 뒤처질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만약 지방대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낸다면 기업에서 대환영을 받을 것임을 보장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지방대생들이 서울 명문대생들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제조원가를 낮추거나 품질향상을 하는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는 과거 산업사회에서 필요했던 제조원가를 낮추거나 품질향상을 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숫자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창의력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준이 바로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이라는 의미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수능 점수가 낮은 지방대생들이 수능 점수가 높은 서울 명문대생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서울 명문대생들이 잘 하는 분야는 대부분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대생들도 제품이나 서비스에 가치를 높이는 창의력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좀 더 일반화하여 얘기하자면 자본 중심의 대량 생산 체제의 산업사회에서는 표준화, 평준화된 인재가 필요했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시스템에 맞춰 개미처럼 근면, 성실하게 근무하는 평준화된 인재가 필요했다. 표준화된 시스템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보태는 튀는 인재는 대량 생산의 적이었다. 왜냐하면 표준화된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의미는 곧 불량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는 표준화된 시스템에 의해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였기 때문에,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변화를 꾀할 이유가 없었다. 산업사회의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말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든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난 돌이 예술 작품이 되고, 튀어야만 인정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튀어도 조금 튀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차별화되고 창의적인 1등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기업의 기존 제품을 잘 만드는 인재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획기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어 기업에 공헌하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하다. 5만 원짜리 핸드백을 싸고, 빨리 만들어내는 인재보다는 500만 원짜리, 1,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기업도 생존 경쟁에 내몰리면서 차별화된 1등 기업이 되어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차별화된 1등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차별화된 1등 인재를 요구하는 시대

 

어렸을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 우화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우화는 더운 여름날 개미와 베짱이가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개미는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반면에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개미가 베짱이를 보고 하는 말, “베짱아, 너는 일은 안 하고 노래만 부르고 있니? 이제 조금 있으면 추운 겨울이 닥칠 텐데, 그렇게 놀기만 하고 겨울 준비를 안 하면 굶어죽게 될 거야.” 그래도 베짱이는 개미의 조언을 들은 채 만 채 하면서 신나게 노래만 부르고 있다.

장면이 바뀌어서 눈보라 치는 겨울 어느 날. 베짱이가 남루한 여름옷을 입고 개미의 집을 찾아온다. “개미님, 너무 춥고 배가 고파요. 먹을 것 조금만 주세요.” 하면서 베짱이가 사정을 했지만, 따뜻한 집에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개미는 그래 내가 뭐라고 그랬니? 겨울을 대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내가 충고를 했는데도 너는 듣지 않았잖아.” 하면서 베짱이의 청을 매정하게 거절해서 결국 베짱이는 밖에서 굶어 죽었다.

 

하지만 이 우화는 최근 다른 버전으로 바뀌었다.

 

개미는 더운 여름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반면에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놀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개미가 베짱이를 보고 하는 말, “베짱아, 너는 일은 안 하고 노래만 부르고 있니? 이제 조금 있으면 추운 겨울이 닥칠 텐데, 그렇게 놀기만 하고 겨울 준비를 안 하면 굶어죽게 될 거야.” 그래도 베짱이는 개미의 조언을 들은 채 만 채 하면서 신나게 노래만 부르고 있다.

장면이 바뀌어 눈보라 치는 겨울 어느 날. 개미는 단칸방에서 추위에 떨며 누워있다. 더운 여름에 더위를 먹으면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느라고 허리 디스크가 걸려서 쥐꼬리만큼 모아둔 돈을 병원비로 다 날리고 난방비도 없어서 단칸방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베짱이는 좋은 집에서 배불리 먹으면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베짱이는 더운 여름날 열심히 연습한 노래가 대박을 터트려서 돈도 많이 모으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앞의 우화는 산업 사회에서의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과거의 인재상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뒤의 우화는 자신의 강점을 살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부를 쌓는 현대의 인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산업 사회의 인재상에 맞춰 자신의 강점과 무관하게 하기 싫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위의 우화에서의 개미처럼 무작정 열심히 일만 했다가는 몸만 망가지고 성공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은 세상이 원하는 일을 찾아 근면 성실하게 일하기보다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나게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산업 사회에서는 학교 공부를 잘 하는 인재가 요구되었지만, 이제는 끼를 발휘하는 인재가 성공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산업 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 사회에서 성공했던 기성세대들은 자녀들에게 무조건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고, 산업 사회의 인기 직종이었던 공무원, 의사, 교사, 교수 등이 되라고 강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끼를 발휘하여 적성에 맞는 중소기업에 취업하려고 하거나, 벤처라도 창업하려고 하면 기를 쓰고 반대하면서, 대기업에 취업하여 부모의 위신을 높여주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시대 변화에 따라 공무원, 의사 등 안정적이라 여겨지던 직업이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게 되고, 대기업이 직원들의 평생을 보장해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1960년 대 이후 농경 사회의 주역이었던 우리의 부모들 중에서 산업 사회의 도래를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논밭과 소를 팔면서 자녀 교육에 투자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제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변화 못지않게 큰 시대적 변화의 물결이 이미 우리에게 닥쳤다. 그 변화의 물결을 감지하고 그에 맞는 인재가 되는 사람은 성공의 기회를 거머쥐겠지만,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고 과거의 인재상을 고집하는 사람은 실패의 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좋은 가수란 어떤 가수일까? 가수니까 당연히 노래를 잘 불러야 좋은 가수라고 해야 마땅할 것 같은데, 요즘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과거와 달리 요즘 가수들은 노래도 잘 불러야 하지만, 춤도 잘 춰야 한다. 얼굴도 예쁘면(잘 생기면) 더 금상첨화이고. 특히 요즘 소위 말하는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노래보다는 춤의 비중이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서 여럿이 현란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이돌 가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춤이 노래의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다보니 아이돌 가수들도 노래를 연습하는 시간보다는 춤 연습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힘들다고 한다. 사실 기술의 발달로 노래는 얼마든지 편집이 가능하지만, 춤은 편집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노래는 여러 번 불러서 잘 부른 부분만 골라서 붙이든가, 음향 기술을 이용해 음을 다듬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노래는 잘 부르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 반면에 춤은 현장에서 보여 줘야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훨씬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노래는 립싱크로 부르는 척만 하고, 춤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하고 있다. 왜냐하면 춤을 격렬하게 추면 숨이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좋은 가수의 정의가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에서 춤을 잘 추는 가수로 변한 것일까? 그 이유는 기술의 발전으로 라디오 시대에서 텔레비전 시대로 변했기 때문이다. 음향만 들리는 라디오 시대에는 당연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중요했지만, 텔레비전 시대, 특히 대형 컬러텔레비전 시대에는 시청자의 시각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란한 영상이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들은 영상이 지루하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다른 곳으로 쉽게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청자의 혼을 빼놓을 수 있는 화려한 조명과 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물론 산업 사회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또는 아이돌 가수들의 인위적인 꾸밈에 싫증을 낸 시청자들을 위해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도 필요하지만, 현재의 대세는 시청자의 귀보다는 눈을 사로잡는 가수가 더 환영받고 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우리가 시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도가 청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도보다 몇 배나 더 크다는 사실로도 뒷받침이 된다. 즉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컬러텔레비전의 경우에는 청각보다 시각, 즉 노래보다 춤과 조명의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에, 노래보다 영상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좋은 가수의 기준(?)이 변하듯이, 사회나 기업에 필요한 인재의 기준도 변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표준화되고 평준화된 인재가 필요했다면, 현재의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하다. 왜 그런지, 또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앞으로 차차 설명해 나갈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인 차별화된 1등 인재가 자칫 1등이라는 용어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 공부 1등과 차별화된 1등 인재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학교 공부 1등은 1명밖에 없지만, 차별화된 1등은 모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학교 공부 1등은 1명을 제외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지만, 차별화된 1등은 모두를 승자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강점을 찾아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특히 지방대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쓰였다. 과거에는 그나마 공부는 잘했지만, 가정 형편이 변변치 않아 지방대학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수능 점수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지방대학을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지방대학생들은 기회만 있으면 서울 소재 대학으로 전학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느라 학교에 정을 못 붙이고 있다. 또한 패배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강점을 개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지방대학에 강연을 가서 지방대학생들을 대하거나, 기업의 입사 면접위원으로 지방대학생들을 면접하다보면 그들의 뿌리 깊은 패배의식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지방대생들도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되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현재의 사회 분위기나 교육 시스템이 그에 맞게 변하지 않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대생들에게 길이 없었지만, 다행히 새로운 시대 는 지방대생들도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7년 수능시험 응시생은 약 60만 명으로 추산된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입학 정원이 약 7만 명 정도인 12퍼센트니까, 나머지 88퍼센트는 지방대에 진학하거나 대학을 포기해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울에서도 이른바 'SKY'라 불리는 서울·고려·연세대의 정원은 1만 명 정도로 전체의 1퍼센트 대에 불과하다. 현재처럼 학교 성적이 좋은 소수가 서울 명문대를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높은 연봉을 받는데 반해, 대다수가 단순히 낮은 수능 점수 때문에 지방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패배자가 되도록 만든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현재 상태라면 대다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불행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 경쟁력도 떨어져 대한민국이 경쟁에서 낙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는 차별화된 1등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공부 잘하는 1만 찾는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차별화된 1등 인재로 만들어 대한민국 경제도 살리고, 개인들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이 새로운 시대를 맞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밝히고 대다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김송호 지음/ 물병자리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실재는 신이나 브라흐만이 아니라 열반이라는 정신상태다. 서양의 기독교가 일상생활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종교와 신을 취급하는데 비해, 동양에서 종교는 인간사를 다루는 철학이나 일상에 녹아있는 생활양식이다. 즉 신에 대한 숭배보다 일체로서의 조화를 이루며, 동시에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을 돕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씨는 서울대와 카이스트 석사, 미국 퍼듀대 공학박사를 받은 공학도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적극적인 신앙활동을 했다. 하지만 “마음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불교와 유교, 이슬람 등 다양한 종교를 접하면서 무릎을 쳤다. “서양에서 말하는 종교와 동양의 종교가 개념이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자이면서 종교철학에 관심을 가져온 김송호 씨는 ‘종교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고 “종교는 지금 대립이 아니라,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미얀마의 불상.

저자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지만 “신을 포기하면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기 때문에 억지를 써서라도 그 주장을 반박하려고”하는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내가 증명하고 싶은 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이기도 하고, 힌두교의 브라흐만이 될 수도 있고,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도와 같을 수도 있다. 신이 없다는 무신론자들의 주장도 포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과학적인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진화론의 입장에서 본 종교, 기도의 참다운 의미, 죽음이란 무엇이며, 지옥이나 천당의 뜻은 무엇인지, 인공지능 알파고가 가져온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불교는 합리적인 과학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오히려 불교가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반야심경> 구절이다. ‘형체가 있는 것도 실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실체가 없는 것도 형체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다. 이 구절의 범어 원문은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더라고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도 사실은 에너지 덩어리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창조론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얽매이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물학의 부분은 심층생태학이 주장하듯 “삶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맺어가는 너와의 관계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신이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 성당의 그림.

이런 주장을 통해 저자가 도달하는 결론은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점이다. 종교의 필요성을 저자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서 찾는다. 일례로 극심한 스트레스의 결과로 분출되는 묻지마 범죄의 해결법을 종교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던 종교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묻지마 범죄 증가의 한 요인이다. 과학의 발달로 종교의 비합리적인 면이 부각되면서 종교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종교를 현대인의 사고에 맞게 과학적으로 재조명해야 사회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종교 본연의 임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특히 서양에서는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는 논쟁을 지루하게 이어왔다. 더불어 과학의 발달은 서구 종교학자들의 논쟁에 ‘유리한 근거’로 인용되면서 왜곡현상도 발생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대립이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종교와 과학이 인류에게 제시해야 할 점은 “내가 옳다”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류와 생명의 조화와 행복” 등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253호/2016년11월30일자] 안직수 기자

제목과 목차

2016. 11. 30. 07:00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제목: 지방대생 성공 전략

 

목차

 

프롤로그: 지방대생이 서울 명문대생을 이기는 비결

 

1장 차별화된 1등 인재를 요구하는 시대

- 새로운 시대는 차별화된 1등 인재를 원한다

- 왜 차별화된 1등 인재인가?

- 공부만 잘하는 인재를 몰아내는 인공지능 시대

- 지식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

-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 중요한 시대

- 공유와 상생의 패러다임 등장

 

2장 기업은 차별화된 1등 인재가 필요하다

- 왜 기업은 면접으로 인재를 뽑는가?

- 인공지능 시대에 적합한 인재

- 네트워크 사회에 필요한 인재

- 스마트 스킬을 갖춘 인재

- T형 인재와 H형 인재

 

3장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되는 방법들

-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라

- 단점을 강점으로 바꿔라

- 다른 사람의 강점과 융합하라

- 자신의 강점들을 융합하라

- 열린 마음을 가져라

 

4장 평범한 능력으로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된 사람들

- 자신의 강점을 활용하여 성공한 가수 싸이

- 단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오프라 윈프리

- 네트워크 전략의 명수 스티브 잡스

- 강점 융합으로 전승 신화를 만든 이순신 장군

- 자신의 강점에 올인하여 성공한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

 

5장 지방대생이 성공하는 비결: 차별화된 1등 인재가 되라

- 수능 점수는 잊어라

- 산업사회에서 성공한 기성세대를 따라하지 마라

- 강점에 집중하라

- 전공을 뛰어 넘어라

- 열정으로 무장하라

 

에필로그: 지방대도 차별화된 1등 인재를 키우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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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신을 믿으라고 권하면 보통 '신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건 과학적으로 보면 틀린 논리죠. 인간의 눈은 단지 400~700㎚의 빛만을 감지할 수 있죠. 그 이하의 빛은 존재하더라도 전혀 감지하지 못해요. 청각도 마찬가지죠. 인간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실제 우주에 있는 소리 중 아주 일부예요. 상대성이론 방정식으로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이라는 것은 전체 물질의 5%에 불과해요."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 펴냄)'를 낸 김송호 박사(59)는 "과학을 하면 할수록 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과학자와 기업가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거쳐 미국 퍼듀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공학한림원 회원이자 대기업에서 신기술 개발 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신을 맹목적으로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쪽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요. 과학으로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만능주의도 문제고, 신화시대에나 어울리는 전근대적 종교관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쪽도 문제예요." 김 박사의 이번 책은 종교와 과학의 균형점을 제시한다. "신을 부정하는 쪽은 과학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고, 반대쪽을 종교는 신성할 뿐이라는 논리로 상대를 억압하고 있죠. 과학과 종교를 논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열린 자세입니다."

김 박사는 직선적 시간관에서 벗어나면 창조의 비밀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죠.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비난해요. 하지만 상대성이론에 기초해 보면 창조 초기의 1일은 현재 기준으로 몇 십억 년이에요. 그러니까. 6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이었던 거죠.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시간이었던 거예요."

김 박사에게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매우 명쾌한 답이 돌아온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너무 자극적으로 쓰인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유전자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다들 알다시피 벌이나 개미, 땅다람쥐, 돌고래 등 동물들에게서도 이타적인 행동들이 많이 발견돼요. 이기적인 요소만이 생명체를 이끌어왔다는 논리로는 최초 생명체, 대진화(종간 진화), 동물의 이타행동, 지구 생명체의 균형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없어요."

김 박사에게 "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냐"고 물었다. "신은 '방향성이 있는 에너지'입니다. 날개가 달려 있거나 긴 수염을 흩날리는 모습이 아니라 이 세상을 추동하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입니다. 흔히 성서에 나오는 기적을 소설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전기나 전자라는 과학적 개념을 몰랐을 때는 전기나 전자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적이라고 했을 겁니다. 설명하지 못했던 많은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여왔던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매일경제신문 2016년 11월 26일 허연 문화전문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현실 종교의 모순성 ‘과학적 神’으로 해결”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신의존재를…’낸 김송호박사

“‘과학적인 신’은 예수와 부처가 보여준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을 품어 안은 사랑의 신’입니다. 현실 종교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폭력적 양상도 과학을 통한 신으로 접근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나와 미국 퍼듀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인 김송호(사진) 박사.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고교·대학에서 가톨릭학생회장을 지낼 만큼 체계적인 교리공부와 신앙생활을 해왔던 그는 “늘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느끼는 답답함으로 지금은 ‘냉담자’가 됐다”며 “직접 과학의 전공을 살려 신을 찾아보았다”고 말한다.

최근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를 펴낸 김 박사는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증명된 신의 모습이 종교의 기본 교리와도 잘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김 박사는 이렇게 증명된 신을 ‘과학적인 신’이라고 이름 붙였다. 김 박사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을 기본으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빅뱅 이론 등을 이용한다. 엔트로피 법칙이란 빅뱅 이후 물리계의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하며 무질서해지는 것을 말한다. 무질서해질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우주에서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김 박사는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유일한 양상이다. 이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목적을 가진 외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특정한 의지를 가진 에너지”이며 “곧 만물 안에 신이 존재하는 ‘만유내재신(萬有內在神)’”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신(神) 개념은 철학에서 스피노자에 의해 처음 제기돼 과학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진 이신론(理神論), 또는 인도에 뿌리를 두고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화이트 헤드로 이어지며 현대신학에서도 주목받는 ‘범재신론(汎在神論)’에 가깝다. 김 박사는 “현재의 과학지식 수준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진리가 아니다”고 전제하면서도 “‘과학적인 신’은 무자비한 신을 앞세운 현실 종교의 만행과 반대로 무신론적 과학주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신에 대한 관점”이라고 제안했다.

[문화일보 2016년 11월 24일 엄주엽 선임기자]

"과학과 종교, 방법론 달라도 궁극적 목적지는 같아"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느끼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물병자리)의 저자 김송호 박사는 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진화론부터 시작해서 지옥과 천국의 존재 여부, 그리고 원죄에 대한 의문 등을 이 책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은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그렇게 증명된 신의 모습이 종교의 기본 교리와도 아주 잘 부합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그러면서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신을 '과학적인 신'이라고 명명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빅뱅 이론,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 법칙) 등을 이용해 '과학적인 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

빅뱅 이론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과학적 관찰 사실로부터 나온 이론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역으로 생각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아주 작은 점으로 응축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또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한 물리계의 쓸모 있는 에너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쓸모없는 에너지로 변하며 무질서해지기 마련이다. 한 물리계가 이전보다 더 무질서해지면 우리는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주의 초기 상태는 엔트로피가 제로인 무한히 작은 점 형태의 에너지 상태였는데, 빅뱅이 일어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엔트로피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빅뱅 이론과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의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저자는 이 예외적 경우로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 성장의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엔트로피의 감소는 엔트로피를 낮추는 외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고,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주에 질서가 있고 생명체가 있다는 것은 엔트로피를 관리하는 신이 있다는 증거"라며 "신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말하면 방향성이 있는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학이 종교보다 결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과학은 신이 실재를 입증하고 그 실체를 밝히는 데 유용한 도구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과학을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는데 과학도 상대적 진리에 불과하다"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파악될 수 있는 진리는 현재의 과학지식 수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탐구를 병행하여 같은 결론에 이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라며 "과학과 종교는 진리 추구 방법이 다를 뿐이지 궁극적인 목적지는 같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저자는 이 책에서 '이단에 대한 기준', '제사를 지내면 죄인가', '과학이 발전하면 종교가 사라질까' 등의 주제를 다루며 '과학적인 신'을 통해 바라본 지적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kihun@yna.co.kr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의 저자 김송호 박사.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2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공학박사 김송호 씨가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16.11.21. kihun@yna.co.kr

 

[연합뉴스 2016년 11월 21일] 

[서평] 김송호 ‘신재생에너지 기술 및 시장분석’

 

김송호 책표지

[에너지경제신문 안희민 기자] 또 한권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대중서가 나왔다. 김송호 삼표기초소재 전무가 펴낸 ‘신재생에너지 기술 및 시장분석’이다. 에너지경제신문 등 최근 언론 보도를 인용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 전망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아무래도 전문 연구서와 달리 피상적이지 않고 사례 등 구체성이 담보돼 읽기에도 부담이 적다.  

저자는 서울대 공대를 1979년 졸업하고 1981년 KAIST 석사, 1992년 퍼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화학공학이다. 동양시멘트에서 잠시 몸담았으며 케이지케미칼 이사, 홍진씨엔텍 대표이사를 거쳐 현재 삼표기초소재 전무를 맡고 있다. 그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및 시장분석’ 이외에도 ‘부의 진화론’(2014), ‘사오정 넘고 오륙도 돌아 행복공동체로’(2013), ‘퇴직은 행복의 시작이다’(2011), ‘녹색성장의 길’(2011), ‘CEO 공학의 숲에서 경영을 논하다’(2010) 등 다양한 책을 펴냈다.

저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전문 지식의 대중화’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기술 및 시장분석’도 마찬가지다. 책면이 A4용지 한 장 크기로 소프트커버를 사용해 ‘보고서’라는 인상을 준다. 내용도 어렵지 않다. 딱딱한 학술 논문이나 저서보다 에너지경제신문, 이투뉴스, 한국경제신문 등 언론과 제레미 리프킨의 대중적인 저서, 협회 보고서를 인용해 전문가에겐 친숙함을 대중에겐 신재생에너지를 일람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쓰여진 책은 아니다. 태양열, 태양광, 풍력, 지열, 해양에너지, 수소에너지와 연료전지, 바이오에너지, 폐기물 재활용, CCS, 핵융합 등 세부 목차를 잡고 말미에 신재생에너지 현황과 전망을 달았다. 내가 쓴 기사도 다수 인용됐는데 그대로 베끼지 않고 다른 신문 보도와 보고서에서 발췌한 내용과 함께 짜임새 있게 정리됐다.

에너지 기업에서 CTO로 일하는 박사급 전문가의 필력으로 각종 인쇄매체에 담긴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보가 다시 한 번 태어났다. 파리 협약 후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가운데 이 책은 ‘전문지식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충실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부 교재나 온실가스 감축, 신재생에너지 분야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에너지경제신문 ‘EE칼럼’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2016년 10월 3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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