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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덕씨는 “연간 500만원 소득을 올리는 ‘평균 농부’이지만 현재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6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개명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안씨가 활짝 웃고 있다. |
[나는 농부다] 도시농부 안병덕씨
골프, 등산, 농사…. 직장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노후에 할 수 있는 이 세가지 중 그는 농사가 제일 낫다고 했다. “골프는 폼은 나지만 돈이 들죠. 등산은 즐겁지만 생기는 것이 없어요. 게다가 그것도 하루 이틀이죠. 농사는 즐겁기도 하지만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서울 구파발에서 차로 20분 남짓 거리, 경기도 고양시 벽제시립공원묘지 맞은편 개명산 자락.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 거주하지만 여기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농사를 짓는 안병덕(60)씨는 도시농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도시농부란 흔히 자기 일을 가지고 있으면서 도시 근교에서 작은 농사를 짓는 자립적 소농을 의미한다. 생계형 소농과는 다르다. 안씨는 이곳 900평 땅에서 ‘벽제농장’이라는 이름 아래 무, 배추, 토마토, 수수, 파, 녹두, 고추, 상추, 오이, 애호박, 땅콩 등 온갖 것들을 재배하고 있다. 그것도 농약이나 화학비료 하나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2년 전에는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를 만들어 이 지역 15명 정도의 도시농부들과 교류도 하고 있다.
72학번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한 안씨는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내가 제일 잘나가”를 노래 부를 만한 사람이었다. 1979년부터 국제종합건설에 근무하며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열정적인 삶을 불태우기도 했고, 이후 쌍용정보통신 임원을 지냈다. 최연소 과장과 부장을 거쳐 1995년 41살에 이사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7년 말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터지면서 임원 자리에서 물러났고, 관련 벤처기업에서 3년 동안 일하다가 결국 직장에서 은퇴했다.
“당시 40대 후반이었는데 ‘직장생활은 더는 안 하겠다, 농사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귀농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귀농은 결국 못 하고 여기에 눌러앉게 됐네요.” 지난 6일 만난 그는 2001년부터 14년째 도시농부로서의 삶에 대해 “현재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농사는 돈을 만들려고 해서 힘든 것입니다. 굳이 돈이 아니라면 자기 능력껏 힘닿는 대로 하면 됩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게 크죠. 농사지어 보니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잘릴 염려 없는 평생직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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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 자신이 분양한 주말농장 텃밭 운영자들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
대기업 임원 출신 40대 은퇴
기독교공동체 소유 땅 빌려
유기농법으로 ‘출퇴근 농사’
소득 낮아도 절약하며 적응
땅과 생명 지키는 일 보람
‘상자 텃밭’이라도 시작하길
2000년 직장을 그만둔 뒤 안씨는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생태귀농학교에 다니며 농부로서의 제2의 인생을 꿈꿨다. 전북 무주에 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내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마음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귀농하려면 혼자 하라고 난리였습니다. 고등학교, 초등학교 자식도 있었고요.” 그래도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은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아내가 환경단체에서 활동했는데, 지인을 통해 이곳을 소개시켜주며 굳이 시골에 가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안씨는 기독교공동체인 동광원 지원 소유의 이곳 2000평 땅 중 900평을 무상으로 빌려 2001년부터 논벼와 밭벼는 물론 일반 채소 등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곳곳에 보면 버려진 땅들이 많아요. 농사짓기 어려운 땅들이죠. 농사짓겠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굳이 시골 안 가더라도 큰 부담 없이 농사지을 수 있습니다.”
안씨는 250평은 주말농장 텃밭을 하는 25가구에 분양했다. 그를 만난 날이 현충일 휴일인 때문에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는 3~4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자녀를 동반한 이들은 도시락과 막걸리까지 싸오고 상추도 따는 등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사는 조영재 주부는 처녀 때부터 이곳 벽제농장을 들락거렸고, 결혼 뒤에는 가족과 함께 텃밭을 찾아 오이·토마토·고구마·감자 등을 30평 정도 텃밭에서 재배하고 있다. 안씨로부터 8년 동안 농부 수업을 받고 경남 함양으로 귀농하는 사람도 있었다. 텃밭은 평당 1만6000원에 분양되는데, 안씨는 평당 1만원은 원주인에게 준다. 대신 원주인은 그가 농사짓는 땅에 대해선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당 6000원을 가지고 주말농장 하는 사람들에게 종자나 퇴비, 농자재 등을 제공해준다.
안씨는 1년에 5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며 자신은 ‘평균농부’라고 했다. “사람들은 연매출 500만원 그걸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500평에서 500만원 수입 올리면 농사 잘 짓는 거라고 해요. 논농사 3000평 지으면 쌀 60가마 정도 나오는데 팔면 1000만원 받습니다. 이게 우리 농업의 현실입니다.” 그는 도시농부로서 소득이 적은 만큼 줄여 쓰는 지혜도 배웠다고 했다. “농사 자체가 돈이 안 되다 보니 돈을 아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몸에 뱁니다. 삶을 바꿔야 해요. 택시 타는 것도 겁나더라고요. 미터 올라가는 것 보면 알타리 한 단 날아가는 것 같아요. 생활이 변하게 되는 거지요. 돈을 덜 쓰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노후 걱정도 없어졌어요. 가난하면 덜 쓰게 되고 덜 쓰는 만큼 후세에 남겨뒀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먹는 것은 자급자족하니 자녀 교육비 빼고는 크게 돈 들 일도 없어요. 친구들이 ‘노후자금은 10억원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제가 미쳤다고 했어요.”
그는 농부는 공익요원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농사를 짓는 순간 땅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는 겁니다. 농사는 다원적 기능이 있는데, 벼농사는 쌀 생산 외에 홍수조절 기능도 있어요. 논이 없다 생각해봐요. 홍수조절을 위해 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세금이 엄청 들지요.”
안씨는 직장생활 때는 고액 연봉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농사를 지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빚진 삶’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내가 쌀을 사 먹은 게 농부들의 땀과 눈물을 사 먹은 거지요. 남은 생이라도 내가 그 길을 걸으리라 생각했어요. 땡볕에서 오이 키워봐야 얼마 못 받아 돈으로 치면 억울하지만 사람들이 잘 먹는다 생각하면 괜찮아요. 옛날에는 내가 싸게 먹었으니까요….”
고양시 도시농부의 개척자인 안씨는 농사 관련 강의도 자주 나가고, 겨울철에는 시민단체 모임에도 나가는 등 다양한 삶도 살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의 에코생활협동조합 비상근 이사장도 6년이나 지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일단 작게는 5평이라도, 아니 상자 텃밭이라도 농사를 지어봐라. 싹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고.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조언도 한다. “직장생활 하고 자기 집 가진 사람(전세라도)이 절반은 된다. 줄여가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빈손으로 죽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시골농부들이 ‘부채만 없어도 홀가분하게 농사짓겠다’고 대부분 얘기하지 않는가? 농사는 기꺼이 사람들이 공짜로 가르쳐준다. 그리고 힘들다면 자기 힘 닿는 데까지 하면 된다. 누가 뭐라는 사람 없다.”
[한겨레 2014녀 6월 11일 고양/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