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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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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새해가 밝았습니다’라고 적었다가 고쳐 썼습니다. ‘밝았다’는 서술어가 아무래도 걸렸기 때문입니다. 청춘에게 새해는 과연 밝은 기운으로 빛나는가. 밝음보다는 어두움에 좀 더 가깝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새해 첫 호만큼은 무언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청춘처럼 살아가는 ‘최고령 현역’을 만나 새해 덕담을 들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노년이 바라보는 젊음
최고령 현역이 가라사대


헬조선과 수저계급론.

이 두 가지 키워드는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춘 세대의 답답한 현실을 대변한다. 저 흉한 말들에는 희망 대신 절망이, 도전 대신 포기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아흔을 넘나드는 나이에도 끝없이 도전하는 청춘 같은 노인이 우리 사회엔 적지 않다.

이들 ‘최고령 현역’들은 “도전하고 일할 수 있는 한 언제나 청춘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청춘리포트팀이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최고령 현역을 만나 ‘2016년 청춘의 길’을 물었다.

 
91세 의사 강재균
인생엔 힘든 일이 아흔아홉 가지야
그걸 이겨낼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해

91세 의사 강재균
인생엔 힘든 일이 아흔아홉 가지야
그걸 이겨낼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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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균 할아버지가 20대 시절 사진을 꺼내 들었다. 청춘의 의미를 묻자 ‘청춘은 성실’이라고 답했다.

강재균 할아버지는 91세의 나이에도 하루 평균 20여 명의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다. 1964년 전주에 ‘강 이비인후과’를 개원한 강 할아버지는 53년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환자를 돌봤다. 그간 그를 거쳐 간 환자만 35만여 명. 함께 의대(서울대)를 다닌 동기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이제 가까운 친구마저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한다. 50여 년간 일해 왔으니 지칠 법도 한데 강 할아버지는 여전히 스스로를 ‘나이 든 청춘’이라고 말한다.

강 할아버지는 5포 세대(취업·연애·결혼·출산·주택을 포기한 세대)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청춘들에게 ‘즐거운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90이 넘도록 살아보니 세상에는 99가지의 힘든 일이 있고 즐거운 일은 한두 가지뿐이더라고요. 99가지의 힘든 일을 모두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한 가지의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진심이 필요해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자문해야죠. 진심이 없으면 주변에 휘둘리게 돼 무언가를 억지로 하게 되고 결국 내 열정도 달아날 수밖에 없죠.”

강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그때 환자를 돌보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병사들이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한 성취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세상 사람들이 재밌고 즐겁다고 이야기하는 걸 수도 없이 해 봤지만, 여전히 흰색 가운을 입고 환자들과 마주 앉을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들을 끝까지 돌보고 싶어요.”

 
89세 명창 박송희
일흔 넘어 인간문화재 … 난 늘 늦었지
뭐든 꾸준히 하면 인정받게 돼 있어

89세 명창 박송희
일흔 넘어 인간문화재 … 난 늘 늦었지
뭐든 꾸준히 하면 인정받게 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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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희 명창과 20대 시절의 공연 사진. 박 명창은 ‘청춘은 무한도전’이라며 청년 세대를 격려했다.

박송희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다. 올해 89세로 최고령 소리꾼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소리와 음악에 대한 열정은 후배들 못지않다. 지난해 9월 제자인 소리꾼 민혜성(44)씨와 함께 국립국악원 무대에 올라 판소리 ‘숙영낭자전’을 완창했을 정도다. 박 명창은 열네 살에 ‘권번(券番·일제시대에 전통 예술을 가르치던 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도 매일 4~5시간씩 연습하는 소리꾼의 길을 걷고 있다.

“ 뭐든지 늦었지. 30대 후반에야 판소리 스승을 만났고, 일흔둘에 문화재가 됐으니….”

박 명창은 60여 년간 소리를 해 오면서 늘 남들보다 한 발자국씩 뒤처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청춘들에게 ‘꾸준함’을 강조했다.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꾸준함이 없으면 그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다는 조언이다.

“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소리를 합니다. 쉬는 날엔 목에 가시가 돋치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꾸준히 그날 해야 할 일들을 해온 게 소리를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제 마지막 목표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계속 소리를 하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네요. 마음먹은 대로 열심히 도전하면 누군가 반드시 알아줍니다. 조금 늦더라도 괜찮아요.”

 
81세 음대생 변현덕
‘100세 공연’ 목표로 피아노 열공 중
안 힘드냐고? 마음이 젊으니 괜찮아

81세 음대생 변현덕
‘100세 공연’ 목표로 피아노 열공 중
안 힘드냐고? 마음이 젊으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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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현덕 할아버지와 고등학생 시절의 사진. 그는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했다.

 

지난해 서울대 음대 기악과에 입학한 변현덕(81) 할아버지는 최고령 대학 신입생이다. 60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했지만 피아니스트의 꿈을 놓지 못했다. 꾸준히 도전한 끝에 결국 50여 년 만에 같은 대학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다. 그는 현재 본인보다 60살 이상 어린 손자뻘 학생들과 함께 피아노 공부를 하고 있다.

 서울대 입학 후 변 할아버지는 매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하루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도 교양 과목을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피아노를 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웃었다.

 변 할아버지의 최종 목표는 ‘100세 공연’이다. ‘100세가 되려면 아직 20년이나 남았는데 계속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다.

 “피아노는 몸으로 치는 게 아니라 정신력과 마음가짐으로 치는 거예요. 어린 친구들과 달리 나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걸 경험해봤기 때문에 오롯이 피아노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몸은 늙었을지 몰라도 저는 여전히 제가 20~30대라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거든요. 청춘이라는 건 결국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젊고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중앙일보 2016년 1월 16일 정진우·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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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병원 방문자의 체온을 측정하던 한 의료진은 진기한 경험을 했다. 체온이 36.5도에 못미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던 것. 그는 "처음에는 체온계 고장을 의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체온계는 정상이었고, 사람들의 체온이 저하됐던 것이다.

커버스토리 건강에 빨간불 체온 저하


예로부터 ‘정기존내 사불가간(正氣存內 邪不可干)’이라고 했다. 가장 오래된 한의학서 '황제내경'에 나오는 말이다. 몸 안에 기운이 충만하면 나쁜 기운이 쳐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부족하면 병을 얻는다 했다. 한의학에서는 기(氣), 그중에서도 특히 온기를 중시했다. 몸을 따뜻하게 보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 한의학적 개념은 체온에 그대로 적용된다. 체온을 올리면 면역력이 증가하고 떨어지면 면역력도 함께 줄어든다. 한의학 전문가들은 몸이 차가워진 현대인에게 특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만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임수복(68)씨. 그는 11년 전 폐암을 앓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을 받고 완치됐다. 암이 완치되기는 했지만 재발 가능성이 있었다. 근본적인 건강관리도 필요했다. 그는 수술 후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 위주의 식단과 운동으로 체온을 올렸다. 체온이 면역력과 직결된다는 조언을 듣고 나서다. 사실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의 체온은 35.8도밖에 되지 않았다. 임씨는 “수술 후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꿔 지금은 체온을 37도로 유지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몸이 한결 가뿐해지고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분당 90회를 넘나들던 그의 맥박수도 이제는 70회 정도로 안정을 찾았다.

면역력 결정인자 ‘체온’

체온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 체온 ‘36.5도’는 사실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다. 체온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시시각각 변한다. 하루에도 0.5도 안팎으로 변한다. 보통 오전 6시에 가장 낮고, 오후 4~6시에 가장 높다. 또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낮아진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재활의학과 송미연 교수는 “실제로 체온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난다”며 “정상 체온이 36.5도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평상 시 체온이 37도에 이르는 반면, 어떤 사람은 35도대에 머무른다”고 말했다. 누구나 자신의 체온이 36.5도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체온도 다른 건강지표처럼 정상 범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셈이다.

정상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상 체온 자체가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한의학에서는 정상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면역력과 직결된다고 본다.

체온은 신진대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몸에 열이 오르면 기혈 순환이 원활해지고 세포 활동이 촉진돼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근육의 정상적인 수축과 이완이 가능해지고 비로소 각 장기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순환기내과 조승연 교수는 “체온이 올라가면 세포 등 인체 활동이 활발해져 기초대사량이 증가한다”며 “체온이 1도 상승함에 따라 기초대사량은 13%, 면역력은 약 30%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체온 낮아지면 암세포 증식

이상적인 체온은 36.5~37도다. 반대로 체온이 이보다 떨어지면 면역력이 감소한다. 문제는 낮아진 체온이 암세포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온도라는 점이다. 35도는 암세포가 증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경희대병원 한방내과 김영철 교수는 “암세포는 고열에서는 성장하지 못하지만 정상체온보다 1.5도 낮은 35도는 암세포가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라며 “몸의 면역체계는 36.5도 이상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열성질환, 고열을 앓았던 암환자들은 암이 완치되거나 걸리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며 “암은 그만큼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오게 돼 있고, 면역력이 떨어지면 체온이 낮고, 체온이 낮으면 고열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고 덧붙였다.

암뿐이 아니다. 낮은 체온은 거의 모든 질환과 관련돼 있다. 건강의 적신호인 셈이다. 신체 말단까지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족냉증이 생긴다. 소화기관이 제 기능을 못해 소화장애가 생긴다.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체내 에너지도 부족해진다.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두통을 비롯한 각종 통증도 유발한다. 김 교수는 “체온이 낮아진 것은 몸의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며 “혈액순환을 비롯해 기혈 흐름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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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왜 체온이 낮아졌을까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과반은 정상 체온을 밑돈다고 입을 모은다. 어떻게 보면 체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첫째로 운동량이 부족하다. 운동은 체온을 결정짓는 요소다. 근육은 몸 안에서 핵심적인 열 발생 기관이다. 근육이 많을수록 체온이 높게 유지된다. 송 교수는 “운동하면 몸에 열이 발생하는데 근육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열 발생으로 체온이 빨리 올라가고 오래 유지된다”며 “주위에서 추위를 안 타는 사람들을 보면 지방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근육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둘째로 밤낮이 바뀐 생활을 많이 한다. 황제내경의 양생법에서는 낮에 활동을 많이 하고 해가 떨어지면 잠을 충분히 잘 것을 권한다. 낮에 양기를 쌓고 밤에 숙면을 통해 음기를 쌓으라는 지침이다. 하지만 대부분 제때 수면하지 못한다. 경희대병원 한방부인과 황덕상 교수는 “혈액·체액·수분은 음기에 해당하고, 음기가 잘 돌려면 숙면이 필요한데 오히려 밤낮이 뒤바뀐 사람이 많다”며 “마치 보일러는 멀쩡한데 배관에 돌 물이 다 떨어져 보일러는 과열되고 방은 냉골이 되는 격”이라고 말했다.

셋째는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체내 긴장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고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서 체온이 내려간다. 황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이 달아오른다고 표현하는데 속은 냉해지게 된다”며 “차가운 기운은 올리고 뜨거운 기운은 내리라는 수승화강(水昇火降), 두한족열(頭寒足熱) 원리에 반하는 상태가 된다”고 지적했다.

넷째로 과식도 문제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체내 혈액이 위로 집중돼 40%에 이른다. 몸 곳곳에 퍼져야 하는 혈액의 양을 장시간 소화 기능에 묶어두는 셈이다. 또 먹은 음식물의 과한 영양분이 지방으로 저장돼 몸이 열을 낼 수 있는 기능을 막는다. 지방은 최종적으로 소비되는 에너지원이자 에너지 저장 창고다. 송 교수는 “현대인의 생활습관은 체온을 떨어뜨리기 쉬운 조건”이라며 “체온에 관심을 갖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5년 12월 14일 류장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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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부터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웰다잉법'이 9일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은 임종을 앞둔 환자들에게 연명 치료 대신 통증 완화·상담 치료를 제공하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확대하고,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 개인의 결정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연명 치료'와 '존엄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여야가 이날 복지위에서 웰다잉법을 가결했지만 국회 법사위원회 심사를 추가로 거쳐야 하기 때문에 법안은 이르면 1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공포 2년 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가장 큰 변화는 연명 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법안은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국립연명의료 관리기관에 등록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기록이 있으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의 사전 의사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에는 가족과 전문의의 결정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게 된다.

최근 서울대 의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연명의료 지속 여부를 환자 본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80.1%)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는 "최근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면서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의 제도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웰다잉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병원 등도 바뀌어야 한다. 우선 호스피스 병동 등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윤 교수는 "가족과 병원이 치료에 최선을 다한 뒤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에 대해서는 삶을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 '웰다잉법'의 취지"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병원도 이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제도화하고 이를 국민에게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웰다잉법은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후속 조치로 추진됐지만 국회는 수년째 이를 방치했다. 올해 다시 발의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등 현안이 끊이질 않아 법안 심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경제 2015년 12월 10일 김기철 기자 / 김강래 기자]

1.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불편당 마당에서 요강 앞에 앉은 고진하 목사와 권포근씨 부부. 사진 고은비 제공

 

뉘엿뉘엿 저녁놀이 물드는 황혼녘,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쑥부쟁이 한 다발을 꺾어 왔다. 늦여름에 수술을 하고 집에서 요양 중인 아내에게 꺾어 온 꽃을 쑥 내밀었다. 아직 병색이 덜 가신 아내 얼굴이 꽃처럼 환해졌다. 어머, 고마워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거실로 들어가니, 창가의 탁자 위에 연보랏빛 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꽃을 담아 놓은 용기를 보니 화병이 아니고 요강이다. 아니, 요강에 꽃을?

어머니도 나도 아내·딸도 한 개씩
밤새 방안에서 요강을 탄다

아침이면 찰랑찰랑 텃밭에 거름
불편함이 주는 아름다운 순환

날숨 버려야 들숨 들어오듯
욕심만 채우다 보면 변비 걸린 삶

비움의 미덕 잊어버리면
심각한 영적 치매에 걸린다

쑥부쟁이를 담아 놓은 요강은 아내 생일에 내가 선물한 나무요강이다. 풍물시장 골동품 가게에서 헐값에 샀다. 옛날 귀부인들이 가마를 타고 다닐 때 쓰던 거라고, 골동품 가게 주인은 너스레를 떨었지만, 난 그게 그렇게 오래된 진짜 골동품이 아니고 재현품이란 걸 안다. 아내는 나무요강을 화수분처럼 마루 구석에 모셔 두었는데, 오늘 거기 처음으로 꽃을 담았다. 당신 미적 감각은 정말 놀라워, 요강에 꽃을 꽂을 생각을 하다니!

사실 우리 집엔 나무요강 말고도 요강이 세 개나 된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쓰시던 요강, 아내와 딸이 함께 쓰는 요강, 그리고 내가 쓰는 요강! 몇 년 전 지금의 전통한옥으로 이사하고 보니, 변소가 바깥에 있어 너무 불편했다. 당호를 불편당으로 짓고 불편도 불행도 즐기자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추운 겨울 한밤중에 내복 바람으로 변소를 다녀오면 온몸이 얼어붙었다. 여보, 안 되겠어요. 요강 좀 구해 봐요. 나는 곧 가까운 고물상을 순례하듯 돌며 요강을 몇 개 구해 왔다. 한 번도 요강을 써보지 않은 딸도 반색을 하며 그날 밤부터 요강을 타기(!) 시작했다.

요강을 타고 나서부터 식구들의 정도 새록새록 더 불어나더라. 한 요강에 오줌을 누면 서로의 몸 냄새도 자연스레 맡게 되니까. 더욱이 요강을 쓰면 자신의 건강 상태도 저절로 돌아보게 되더라. 내가 눈 오줌의 색깔을 보고 그 냄새도 맡게 되니까. 탁한 음식을 먹은 날은 영락없이 오줌의 색깔도 거무죽죽하고 악취를 풍겼다. 아, 그래, 내 몸에 함부로 뭘 집어넣으면 안 되겠구나! 정갈한 음식을 가려 먹어야겠구나! 요강을 사용하고부터 자연스레 내 내면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연 그 자체인 몸은 정직하다. 먹는 것이 곧 내 몸이 된다. 한의사이기도 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말했다.

 2. 권포근씨가 꽃을 꽂아둔 나무요강. 3. 아침에 요강의 오줌을 채소밭의 거름으로 주는 고 목사.  사진 고은비 제공
2. 권포근씨가 꽃을 꽂아둔 나무요강. 3. 아침에 요강의 오줌을 채소밭의 거름으로 주는 고 목사. 사진 고은비 제공

“문명에 의해 조작된 미(味)를 우리는 음식이라 부른다. 그런데 입구멍에서 똥구멍까지의 시종(始終)은 자연이다. 땅으로부터 입구멍까지의 미(味)는 조작될 수 있지만 입구멍으로부터 똥구멍까지의 미(味)는 조작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똥이야말로 몸이라는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그렇다. 문명의 조작을 덜 가한 정갈한 음식을 먹으면 오줌 색깔도 맑고 탁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잡초를 뜯어 천연의 밥상을 자주 차려 먹는 우리 식구들의 요강 속 오줌은 산골짝 옹달샘에서 솟는 물처럼 청정하다. 도올의 표현을 빗대어 말하면, 맑은 오줌이야말로 몸이라는 우주의 가장 청정한 자연의 모습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요강을 들고 텃밭으로 가는 일이다. 요즘 텃밭에서 한창 자라는 배추와 무에 거름을 주기 위해서! 찰랑찰랑하는 요강을 신줏단지처럼 조심스레 들고 텃밭으로 나가면 배추와 무가 자라는 밭고랑에 오줌을 쏟아붓는다. 비료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오줌 거름을 먹은 배추와 무는 싱싱하다.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배추·무 잎을 파먹는 벌레들이 있으나 거름 기운이 좋으니 식물의 성장엔 전혀 지장이 없다.

사실 내가 먹을 식물에 내 몸에서 나온 배설물을 주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비료가 나오기 전 우리 조상들의 농법이 그랬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밥이 되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었으니까.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어떤 시인이 ‘똥이 밥으로 돌아가야 세상이 바로 선다’고 노래했다. 이런 시구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일 요강을 써야 하는 불편을 즐기며 내가 새삼 깨달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양변기의 편리를 누릴 땐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이 소중한 지면에 내가 요강 타령을 늘어놓는 더 중요한 현실적 이유도 있다. 요강을 쓰자 물 절약도 엄청 되더라.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양변기에 눈 오줌의 양에 비해 흘려보낸 물의 양은 수백 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가 갈수록 가뭄 현상이 심각해지고, 앞으로 물 부족으로 고통받게 될 게 뻔한데, 아주 쉬운 데서부터 물 절약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양변기로 흘려보내는 물만 절약해도 식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그래서 이 지면을 빌려 제안하는 바다. 모두 예쁜 요강 하나씩 마련해 요강을 타자고! 작은 교회를 섬기는 나는 교우들에게도 요강을 쓰자고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그건 단지 이런 현실적 이유만은 아니다. 어떤 이가 말하는 ‘식탁과 변기의 순환적 동질성’이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아침마다 용변을 보고 나면 배설의 수고를 치른 항문 주위를 애무하듯 만지며 물로 씻어준다. 문명의 편리와 위생의식에 길든 우리는 손이 배설물에 닿는 것을 칠색 팔색을 하지만, 똥오줌이 과연 그렇게 더러운 것인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성스러운 어머니 대지는 그 더러움을 품어 우리에게 생명의 밥을 돌려주지 않던가. 배설은 자연이다. 배설의 자연을 거스르면 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날숨을 버려야 들숨이 들어오는 이치와도 같다. 날숨을 버리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 그러므로 숨이든 오줌이든 똥이든 배설은 중요하다. 어릴 적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을 잔뜩 먹고 똥을 누지 못해 죽도록 고생한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토록 변비 걸린 듯 답답하고 정체된 것은 탐욕의 숟가락으로 큰 아가리에 떠 넣을 줄만 알았지 배설할 줄은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너나없이 탐욕의 사슬에 꽁꽁 묶여버린 오늘의 천민자본주의는 배설, 즉 버림의 미덕을 모른다. 오죽하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7) 같은 수도승이 버림을 ‘모든 덕 가운데 가장 뛰어난 덕’이라고 했겠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을 정화하고, 양심을 깨끗하게 씻어주며, 마음을 불태우고, 영을 깨우고, 소망에 생기를 주고, 하느님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찰랑거리는 요강을 들고 대문 밖에 있는 텃밭으로 나갔다. 영롱한 이슬이 맺힌 배추밭 고랑에 오줌을 쏟아붓고 돌아서는데, 앞집의 박씨 할머니가 경로당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호동그랗게 눈을 뜨고 묻는다. “아니, 고선상네는 아직도 요강을 써요?” “네, 우린 변소가 밖에 있잖아요. 그리고 요강을 쓰면 거름도 배추밭에 줄 수 있고….” 박씨 할머니는 내가 들고 있는 요강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우리도 다시 요강을 마련해야겠어요.” 양옥에 사시는 박씨 할머니가 이렇게 얘기한 것은 당신 남편이 치매를 앓고 계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박씨 할머니의 남편은 용변이 마렵다고 하여 화장실로 데려가다 보면 자주 똥오줌을 싼다고 한다. 어디 이 할아버지뿐이겠는가. 치매, 오늘 우리는 밥과 똥, 들숨과 날숨의 아름다운 순환을 망각하고 산다. 배설과 버림과 비움의 미덕을 잊고 산다. 이것은 기우뚱, 균형을 잃어버린, 심각한 영적 치매 현상이 아닌가.

 

한겨레 2015년 10월 13일 고진하(원주 한살림교회 목사·시인)

제주이민 1만명 시대.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경관 좋은 제주에 정착하길 꿈꾸는 이가 많다. 아무 준비 없이 와서도 성공한 ‘불도저형’, 이곳저곳 충분히 살아본 후 제주 정착을 결심한 ‘신중형’, 제주에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새 일자리를 구한 ‘재취업형’ 등 유형도 다양하다.

제주에 내려와 정착한 ‘한때 육지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대부분 “제주는 살기 좋은 곳이지만 이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때부턴 로망이 아닌 현실”이라며 “집을 구하는 일부터, 생계까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불도저형 | 게스트하우스 운영하는 장병진·강주나 부부

덜컥 산 8천만원짜리 빈집이 효자로

도시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던 중 제주 올레길을 다녀온 뒤 제주에서 집 짓고 사는 게 소원이 된 전직 경찰공무원 장병진 씨(45). 그는 2012년 갑자기 무모한(?) 투자를 했다. 제주시 월정리해변, 한적한 동네에 집 매물이 8000만원에 나왔다는 얘길 들고 인터넷 지도만 검색해본 뒤 5분 만에 덜컥 매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다는 게 장 씨 얘기다.

아내 강주나 씨(37)에게 동의를 구한 뒤 다니던 회사를 곧장 떠났다. 장 씨가 먼저 제주로 내려왔다. 월급쟁이 부부가 한꺼번에 일을 그만두는 것은 너무나도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이내 회사 업무로 힘들어하던 아내도 제주로 내려오고 싶어 했고 결국 이들은 제주이민의 꿈을 이뤘다.

장씨 부부는 일단 제주에서 얻은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 운영해보기로 했다. 허름한 빈집은 건물 뼈대와 지붕, 돌담의 원형만 살려 개조했다. 처음엔 부담스럽지 않게 온돌방 4개 규모로 시작했다. 리모델링 비용으로 꼬박 1억원이 들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의 이름을 따 ‘여울목’이라고 지었다.

이들이 정착한 월정리는 해안 경관이 기가 막혔다. 게다가 월정리가 ‘외지인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제주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고즈넉한 마을’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제주 사람들도 되레 놀러 오는 명소가 됐다. 그러는 동안 주변 땅을 더 사들여 숙소를 독채 2채, 방 7개 규모로 늘렸다. 늘 객실이 꽉 차는 것도 아니지만 부부가 올리는 월 매출은 500만~600만원 남짓.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고 나도 매월 300만~400만원은 순수입이 됐다.

“월정리가 유명해지기 전 이사 온 덕분에 월세 지출 없이 운영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입니다. 최근 이 동네에 새로 입주하려는 외지인 중에는 작은 창고 하나를 빌리는 데도 월 200만~500만원씩 달라는 말에 낙심해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있어요. 우리 부부도 지금 이주를 결심했다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방법이 없었겠죠.”

천혜의 경관이 내다보이는 ‘내 집’에 살면서 이들 부부 사고방식도 달라졌다.

강주나 씨는 도시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쇼핑 생각이 간절하지 않게 됐고, 장병진 씨는 취미로만 치던 기타로 작곡을 시작해 벌써 두 번째 앨범을 냈다. 부부는 “도시의 팍팍했던 기준을 하나둘씩 버리고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진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말했다.

감사하다고 어려운 점이 없으랴. 바다만 보이면 마냥 좋을 줄 알았던 집을 직접 유지하고 관리하려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는 게 장병진 씨 푸념이다. 이를테면 해풍에 문 경첩이 쉽게 부식돼 1년에 한 번꼴로는 바꿔줘야 하는 일부터, 게스트하우스도 결국 손님을 맞는 일이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참 많단다.

신중형 | 서귀포에서 카페 운영 남태현 씨

“제주 곳곳서 살아보고 결정해야”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커피숍 ‘원테이블’을 운영 중인 남태현 씨(42)는 올해로 제주에 내려온 지 6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서울에서 열심히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연히 중국으로 떠났다. 5년간의 유학, 직장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0년 제주로 들어왔다. 딱히 제주에 연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서울 못지않게 갑갑한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제주에 정착한 남 씨는 커피숍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가 운영하는 커피숍 원테이블은 40평 남짓한 땅에 2013년 지어진 2층 목조주택이다. 당시 3.3㎡당 100만원 정도였던 땅값을 포함해 집 짓고 커피숍을 꾸미는 데 2억원이 채 들지 않았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집 짓기는 생각보다 진땀 빼는 작업이었다. 땅을 사들여 업체에 설계를 맡기고 집을 완공하기까지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인터넷 블로그에 목조주택 짓는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해 올렸더니 커피숍을 열기 전부터 홍보 효과를 봤다. 올레길을 걷는 트레킹족, 블로그 글을 보고 찾아온 외지인, 연인들의 방문이 특히 많다. 남 씨는 다른 커피숍과 차별화하기 위해 손님이 쓴 엽서를 원하는 날짜에 맞춰 보내주는 서비스를 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가게 문을 닫은 뒤에는 2층 집으로 곧장 퇴근합니다. 서울에선 60분 걸리던 통근 시간이 법환동에선 ‘6초’로 줄었어요(웃음). 그 시간을 법환포구 주변을 산책하며 사색하는 데 쓸 수 있으니 하루의 시작이 편안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아직 개발이 덜 된 동네라 가게들끼리 경쟁한다는 느낌은 없어요. 저는 법환동 마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제주이민을 준비하는 이들이 솔깃할 만한 조언도 해줬다. 제주로 이주하고 싶은데 어느 지역에 정착해야 할지 못 정했다면 결코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남 씨는 2013년 법환동으로 오기 전 중문, 월정리, 대평리, 이중섭거리 등 제주 동서남북 안 거친 곳이 없다. 오랜 기간 살아야 할 동네를 정하는 일인 만큼 일정 기간씩 머물며 직접 살아보고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는 “조급한 마음에 남들 따라 덜컥 이사 오거나 바다 전망 하나만 보고 넓은 땅을 샀다가 적응 못 하고 떠난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재취업형 | 무릉외갓집 실장 홍창욱 씨

제주 정착일기 연재해 유명인사로

2009년 제주로 이주한 홍창욱 씨(39)는 제주에서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취업문을 계속 두드린 사례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각종 아르바이트를 거쳐 공익재단에 취직했지만 꽉 막힌 서울 출퇴근길을 오갈 때마다 풍광 아름다운 제주로 내려가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퇴근 후에도 제주 지역 내 일자리를 알아보며 취업문을 두드렸습니다. 동시에 아내와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걷는 행사에 참여하며 아내를 설득하는 작업(?)도 겸했지요. 아내는 제주에서 월 200만원 정도만 벌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내려가겠다며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제주 지역에서 IT 관련 콘텐츠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했고 월세(연세)방을 얻어 아내와 함께 제주로 이사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에서 첫아이가 태어났다. 서울에서 일하던 때보단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덕에 육아에도 전념할 수 있었다. 육아에 푹 빠진 그에게 제주 지역신문사에 다니는 후배가 “제주에서의 삶을 글로 써보라”는 제안을 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이용하는 일자리치고 괜찮은 편이었다. 다행히 홍 씨는 글쓰기에 흥미도, 재능도 있었다. 제주 정착일기를 신문에 연재한 것이 반응이 좋아 어느새 책(‘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으로도 출간됐다. 홍 씨처럼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을 모아 또 다른 책 ‘제주, 살아보니 어때?’도 펴냈다.

현재 홍 씨는 서귀포시 무릉리에서 무릉외갓집 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었는데 함께 일했던 지인 소개로 무릉외갓집과 인연이 닿았다.

무릉외갓집은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제주 농산물들을 꾸러미로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회원가정에 배달하는 영농조합법인이다. 처음엔 다들 ‘이런 게 가능할까’ 했지만 홍창욱 씨는 이를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각 지역 협동조합마다 무릉외갓집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 일에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신문에 칼럼을 쓰는 데다 강연에 팟캐스트도 진행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덕분에 홍창욱 씨는 제주 지역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제주 선주민들과 이주민들을 연결해주는 ‘마당발’ 역할도 자처한다.

“제주 사람들은 텃새가 심하다는 소문도 있는데 오해입니다. 서울 살 때도 이웃과 친하게 못 지내듯 사람 사는 건 어디서나 비슷해요. 제주에서 살 거라면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는 자리에 자주 참석해보세요. 낯설어 하다가도 한번 친해지면 또 한없이 품고 도와주는 게 제주 사람이랍니다.”

[매일경제 2015년 10월 30일 제주 = 정다운 기자]

피트니스센터·수영장…삶의 질 높이는 곳이 집값도 많이 올라

 

해피타운 ② 커뮤니티 아파트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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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세종시 중흥S클래스 센텀시티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워터파크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다. [이근우 기자]
2008년 말 입주한 서울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 '자이안센터(Xian Center)'. 지하 2층~지상 3층 연면적 9240㎡로 국내 최대급 커뮤니티시설이다. 유리로 덮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 중앙 카페테리아에서 주민들의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바로 옆 키즈룸에는 3~4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젊은 엄마와 할머니들이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웠다.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연을 매개로 현재 반포자이에는 탁구·골프 동호회, 산악회 등 100여 개가 넘는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 가운데 92%가 도시에 몰려 산다. 그리고 10명 중 6명이 아파트에 산다.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문화는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풍속도다. 하지만 '단절'과 '폐쇄'로 상징되던 아파트 주거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며 아파트 단지 내 인간관계가 중시되면서 4베이, 알파룸 등 개별 가구의 '평면'보다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한 공간 배치, '커뮤니티' 시설이 강조되고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공동체 문화가 싹을 틔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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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서울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인 '자이안센터' GX룸에서 다이내믹 댄스를 배우는 입주민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주민들은 언니 동생 자매같이 정답게 안부를 묻고 대화를 할 정도로 친하다. [이충우 기자]
지난달 30일 매일경제신문이 2009년 제13회 대상 수상작인 반포자이 이후 6년간 살기 좋은 아파트 역대 수상 아파트 총 38개 단지(전용면적 84㎡ 기준)의 가격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시장 평균을 크게 앞질렀다. 연면적 9240㎡ 크기 초대형 커뮤니티센터를 갖춘 반포자이는 이웃 래미안 퍼스티지와 함께 대한민국 아파트의 기준을 평면 중심에서 커뮤니티 중심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건혁 서울대 교수는 "국내 아파트들의 평면 개발 수준은 새로 짓는 아파트의 경우 차이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했다"며 "살기 좋은 아파트의 기준은 커뮤니티시설과 단지 전체 설계 등 건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면서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이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연도별로 비교해보면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평균 9.44%에 달할 동안 살기 좋은 아파트 수상작(최우수상 이상)은 평균 15%씩 상승했다. 반포자이 아파트값은 2008년 말 대비 20%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서초구 아파트값 상승률(6%)보다 3배 이상 높다. 특히 지상 커뮤니티시설 규제가 현실화되기 직전인 2011년 선정된 '커뮤니티' 아파트 가격은 19.5% 올라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6%)의 3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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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국내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는 1950년대 중반 사원 기숙시설 형태로 지어진 행촌아파트와 종암아파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대단지형 아파트가 국내에 본격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중반 반포주공, 압구정 현대가 시작이다. 이때만 해도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은 어린이 놀이터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젠 새로 들어서는 웬만한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시설에는 피트니스센터, 독서실, 실내골프연습장은 기본이고 수영장, 찜질방까지 갖춘 곳이 늘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통적인 마을과 달리 도시 아파트는 가구별 폐쇄형 구조여서 인간적인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며 "아파트 커뮤니티시설은 주민 생활을 지원하면서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올해 제19회 살기 좋은 아파트 수상작을 휩쓴 아파트 단지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이 같은 트렌드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대상 수상작인 대전 서구 '도안신도시 7단지 예미지' 의 경우 주민들은 지하에 마련된 실내 배드민턴장을 즐겨 찾는다. 면적 800㎡에 높이 10m 크기로 총 3개면에 160석의 관람석도 갖췄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미래 주택은 공생과 공유가 강조되면서 커뮤니티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외국처럼 공동 주방과 공동 세탁실 등 '공동 작업공간'을 만들어 일상에서 이웃과 접촉 빈도를 늘리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015년 10월 1일 특별취재팀 = 이근우 차장(팀장) / 정승환 기자 / 임영신 기자 / 안병준 기자]

낮 길이가 짧아지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일부는 계절성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활기찬 야외활동으로 햇빛을 쬐는 시간을 늘리거나 충분한 숙면을 취하면 개선될 수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낮 길이가 짧아지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일부는 계절성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은 활기찬 야외활동으로 햇빛을 쬐는 시간을 늘리거나 충분한 숙면을 취하면 개선될 수 있다.

 

‘계절성 우울증’ 대처법

가을이 깊어져 낮 길이가 점차 짧아지면 우울감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며칠 지나면 좋아진다. 하지만 일부는 우울감이 심해져 직장생활이나 집안일을 제대로 못하기도 한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 부른다. 특히 여성한테서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한 감정 이외에도 탄수화물 섭취에 집착하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관련 전문의들은 계절성 우울증은 활기찬 야외활동으로 햇빛을 쬐는 시간을 늘리는 등 생활습관을 바꿔 예방하거나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조량 줄어 우울증 생기거나 악화
남성보다 여성 환자가 대부분
탄수화물 집착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야외활동과 깊은 잠으로 예방 가능

 

■ 여성이 계절성 우울증 더 겪어
사람의 기분은 온도나 습도, 햇빛을 쬐는 시간 등에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선 적도 인근의 남쪽에 사는 사람보다 북쪽 사람들이 대체로 말수가 적고 침울한 표정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북쪽이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낮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사는 이들이 계절성 우울증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아울러 사계절이 뚜렷해 일조량의 변화가 심한 온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한테 계절성 우울증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절성 우울증으로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성비를 보면 여성이 90%가 넘는다. ‘가을을 타는 남자’라는 속설과 달리 여성이 기후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셈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계절성 우울증에 취약한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등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정된다.

■ 탄수화물류에 집착 계절성 우울증은 우울한 감정이 가을과 겨울철 동안 지속되는 것 이외에도 불안·짜증 등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하며,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낮엔 꾸벅꾸벅 조는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계절성 우울증과 관련한 특이 증상의 하나는 탄수화물류를 과다하게 섭취해 몸무게가 늘어나는 현상이다. 특히 밥·라면·빵 등을 비롯해 단 음식이 먹고 싶어지고, 잠들기 전에 식욕 증가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밤참을 자주 먹곤 한다.

■ 빛 치료가 도움되기도 계절이 바뀌며 우울한 감정이 들거나 가벼운 우울증에 빠지더라도 대부분은 계절 변화에 익숙해지며 상태가 좋아진다. 하지만 중증으로 악화하면 치료가 필요하다. 날마다 일정 시간 강한 광선에 노출시키는 광선요법이 계절성 우울증의 가장 우선적인 치료법으로 추천된다. 330여명한테 강한 빛을 아침에 2시간씩 일주일 동안 쬐게 했더니 67%에서 증상이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일반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항우울제를 주로 쓴다.

빛 치료의 원리처럼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고 이겨내려면 햇빛을 쬐며 야외활동을 하는 것이 권장된다. 기온이 더 낮아져 춥다고 실내에서 웅크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시간을 늘릴수록 우울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것이다.

■ 꿀잠도 챙겨야 우울증 예방 숙면을 취하면 뇌와 신체 모두 쉬게 된다. 이때 우리 몸을 순환하는 대부분의 피가 근육으로 가서 근육의 에너지를 보충하게 된다. 깊은 잠을 자면 면역계도 튼튼해져 질병에 덜 걸리게 된다. 잘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우울증도 줄일 수 있다. 우울하다고 술을 마시면 깊은 잠을 방해해 오히려 더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커피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환절기에는 커피 등 카페인 음료와 술을 줄여야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커피나 술보다는 생강차, 칡차, 연차, 우롱차 등 카페인이 적게 든 차가 좋다. 불규칙한 낮잠도 밤잠에 깊게 빠지는 것을 방해하므로 오후 3시 이후엔 낮잠을 피해야 한다. 밤늦게 지방이나 단백질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깊은 잠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몸무게를 증가시켜 우울증을 더 심하게 하고 다시 음식을 더 챙겨먹는 악순환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햇빛을 쬐며 날마다 30~40분 정도 가볍게 땀이 날 정도로 걸으면 깊은 잠을 유도하고 우울증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된다.

 

(한겨레 2015년 9월 30일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도움말: 하태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1인기업·예술가 뭉치고 공동 육아마을 만들기도

 

◆ 해피타운 ② 커뮤니티 아파트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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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정릉시장에서 내린 뒤 다시 언덕길을 200여 m 오르면 6층짜리 도시형생활주택이 나온다. 이 건물 3층에 위치한 전용면적 14㎡ 원룸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회사 '앱티스트(APPTIST)' 이경진 대표(32)의 사무실이자 보금자리다.

현관문에는 회사 간판이 붙어 있다. 방 내부는 컴퓨터 모니터 3개를 둔 책상과 소파형 침대, 전자 기타, 냉장고, 식기류 등이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다. 원룸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는 6만원. 시세 대비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 대표를 비롯해 입주민 22명은 모두 1인 기업 대표와 예비창업자다. 건물 이름은 '도전숙(宿)'이다.

지난해 6월 입주한 이씨는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데 사무실까지 한꺼번에 얻었다"며 "입주민들도 창업이라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니 투자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고 말했다.

창업, 예술 등 공통 관심사를 가진 주민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며 사는 '소셜하우징(사회적 주택)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캐나다 밴쿠버 등 선진국 도시들에선 이 같은 소셜하우징 실험이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서 있다. 도심 한복판에 초고층 빌딩을 짓는 개발업자에게 인근 지역에 예술·창업 등 도전적인 삶을 사는 젊은이들을 위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해부터 도전숙과 함께 예술가들이 함께 사는 '막쿱'(중구 만리동), 공동육아 열혈 부모들을 위한 '이음채'(강서구 가양동), 사회초년생들이 모인 '이웃기웃'(서대문구 홍은동) 등 다양한 소셜하우징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총 5곳 146가구가 공급됐고 내년까지 도전숙 3·4호(46가구)와 예술인주택(20가구)이 추가될 예정이다.

미술,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분야 예술가가 모여 사는 '막쿱'은 1층이 공연장으로 활용되고 계단과 복도는 입주민의 회화, 영화 포스터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공연·전시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공동체 꿈'을 잃어버린 도시 공간에서 마을 공동체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은 마을 공동체의 원조로 꼽힌다. 1994년 부모들이 품앗이로 아이를 돌보는 '마을 어린이집'에서 시작돼 현재 1000여 명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작은 카페' 등 주민이 직접 만든 시설과 단체가 40여 곳에 달한다.

[중앙일보 2015년 10월 1일 특별취재팀 = 이근우 차장(팀장) / 정승환 기자 / 임영신 기자 / 안병준 기자]

행복수명 30대부터 준비를
노후 20년 빈곤·질병 시달려…가족들마저 불행의 늪으로
고령화 가속화 큰 충격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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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회사 부장이었던 이 모씨(55)는 6년 전 서울의 한 아파트를 구입했다. 당시 3억원을 무리하게 대출받았다가 퇴직하면서 하우스푸어 신세로 전락했다. 새로운 노후를 위해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리려고 했으나 종잣돈인 퇴직금이 3000만원에 불과했다. 외환위기 이후 중간정산을 받은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독립을 하려면 10년은 족히 남은 자녀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얼마 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남몰래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전체 우울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이씨처럼 50~70대 등 베이비부머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우울증 환자 수가 전체 우울증 환자 가운데 20.2% 비중으로 연령대별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60대가 17.9%, 70대가 17.6% 순으로 우울증 환자의 56%가 50~70대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평균수명은 81.9세다. 하지만 건강수명은 66세, 경제수명은 69세로 평균수명 대비 10년이나 차이가 발생한다.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한 시간을 뺀 기간이다. 경제수명은 은퇴 후 소득을 얻지 못하고 보유한 자산으로 생활을 영위했을 때 준비된 은퇴자산이 소진되는 기간을 뜻한다.

이에 따라 건강 또는 경제수명이 아닌 '행복수명'의 패러다임이 중요해지고 있다. 행복수명은 나와 가족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는 기간으로, 생물학적 수명에 궁극적인 삶의 목적인 행복을 더한 개념이다. 가족과 건강, 경제적 여유 등을 통틀어 현재의 삶에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요즘 경제수명과 평균수명 간 10년 이상 격차가 나면서 질병이나 빈곤에 따른 노후 불안이 커지고 있다. 또 올해 13.1%인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불과 10년 후인 2026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수창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장은 "준비 없는 고령화는 한국 경제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3040세대 때부터 행복수명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 정년 연령을 늦추려고 노력하나 50대에 접어들면 언제 회사를 떠야 할지 모르는 환경이다. 반면 평균수명은 급격히 증가했다.

그나마 모은 돈도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수익이 나지 않고, 유난히 높은 교육열로 자녀에게 많은 돈이 소요된다. 비재무적 요인도 우리의 행복한 노후를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하기 전에는 바쁘다면서 여행은커녕 제대로 놀아 보거나 봉사해 본 적이 없다. 평소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지 않은 사람이 막상 은퇴하고 나면 잘할 수 있을까. 하루라도 빨리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이 대책이다.

최성환 한화생명 보험연구소장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씀씀이도 큰 사회초년생들에게는 은퇴는 먼 미래이자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며 "은퇴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준비운동 없이 급히 오르면 탈이 나므로 은퇴를 안일하게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제 평균수명 증가로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활기차며 행복하게 사는 준비를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문이다.

[매일경제 2015년 9월 29일 김덕식 기자]

기대수명 남 77.20세·여 83.66세…건강수명 남 68.26세·여 72.05세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의 격차 줄이려면 건강증진·질병예방 힘써야"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여명이 늘었지만, 사망할 때까지 온전히 건강하게 살지 못하고 평생 10여년간은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건강수명이 기대수명보다 10년 정도 짧은 탓에 생기는 일이다.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이 공개한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의 조사결과를 보면, 2013년 기준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남성 68.26세, 여성 72.05세로 나왔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남성은 77.20세, 여성은 83.66세인 점에 비춰볼 때, 건강수명과의 격차는 남성은 8.94년, 여성은 11.61년이었다.

주어진 수명까지 살면서 남성은 9년가량을, 여성은 12년 정도를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만성질환을 앓거나 신체장애를 겪다가 숨진다는 말이다.

이 연구결과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88개국의 2013년 건강수명을 조사한 것으로 지난 8월 영국의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실렸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건강수명은 전 세계 9위였다. 1위는 일본(남성 71.1세, 여성 75.5세)이었다.

건강수명은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말한다. 평균 생존 기간을 의미하는 기대여명에 건강과 삶의 질 지표를 적용해 추산한다. 수명의 양보다 수명의 질이 중요해지는 추세에 맞춰 세계보건기구(WHO) 등 연구기관이나 연구자가 저마다 방식으로 산출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7월 내놓은 '우리나라의 건강수명 산출' 보고서(고숙자·정영호 연구위원)에서 계산한 2011년 태어난 아기의 건강수명은 70.74세였다. 성별 건강수명은 남성 68.79세, 여성 72.48세로 3.69년의 차이가 있었다.

기대여명과 건강수명 간에 격차가 나는 것은 주로 만성질환에 기인한다.

보사연에 따르면 2011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는 1인당 평균 3.34개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을 정도로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았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예방의학교실 조민우 교수팀이 지난 1월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각종 만성질환은 건강수명을 줄이며 이 중에서 가장 큰 손실을 끼치는 만성질환은 고혈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관절염, 뇌졸중이 그 뒤를 이었다.

건강수명에 손실을 안기는 만성질환을 성별로 보면 남성은 뇌졸중, 고혈압, 당뇨 순이었고 여성은 관절염, 고혈압, 골다공증 등의 순이었다.

남인순 의원은 "기대여명과 건강수명 간의 차이를 줄이려면 병이 사후 치료 중심에서 사전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 중심으로 건강보험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건강수명을 건강관리와 예방부문에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연합뉴스 2015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