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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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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국토 답사 체험기 펴낸 강신길씨

길꾼 강신길씨가 평화누리길 트레킹 도중 사진을 찍고 있다. 안나푸르나 제공

강신길(73)씨는 친구들 사이에 ‘길꾼’으로 불린다. 만 62살에 히말라야 100㎞ 안나푸르나 트레킹(도보여행)에 도전한 이래 지금껏 국내외 트레킹 코스 4743㎞를 누볐다. 코로나가 밀어닥친 지난해도 경북 청송에서 강원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 240㎞를 걸었다.‘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중국 호도협/옥룡설산 트레킹, 뉴질랜드 밀포드사운드 트레킹, 알프스 몽블랑 트레킹, 페루 까미노 잉카 트레킹, 히말라야 무스탕 트레킹,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그가 2011년 이후 완주한 국외 트레킹 코스다.그는 60대 후반으로 접어든 2014년부터 4년 동안 우리 땅도 ㅁ자로 한 바퀴 돌았다. 부산에서 올라가는 동해안 탐방로인 해파랑길(770㎞)을 먼저 걷고 순차적으로 동서횡단 디엠제트(비무장지대) 평화누리길(428㎞)과 서해안(600㎞)·남해안(857㎞) 트레킹을 마무리했다.최근 2700㎞ 가까운 ㅁ자 국토 트레킹 체험을 글로 풀어 생애 두번 째 책 <대한민국 둘레길>(안나푸르나)을 낸 ‘길꾼’을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청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8년 전 첫번째 책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를 출간했다.

<대한민국 둘레길> 표지.

 

그는 2009년 20년 이상 꾸려오던 의류 수출업체를 정리하고 조기 은퇴했다. 연 매출 3천만 달러 규모로 경영 상태는 좋았지만, 미국 수입사와 중국·베트남 등의 제조업체를 연결해 납기일을 맞추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졌단다. 그때 생각한 ‘제2의 인생’은 문필가의 삶이었다. 고려대 국문과 출신인 그는 시간이 나면 좋아하던 독서도 맘껏 하고 수필도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독서와 글쓰기를 갈망하던 그가 길꾼이 된 데는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산티아고 순례길 체험의 영향이 컸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너무 힘이 들어 심장이 터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산증 때문에 20m 앞도 걷기 힘들었죠. 그렇게 4200m 고지에 오르니 마치 세상을 다 정복한 것 같더군요. 이런 어려움도 극복했으니 두려울 게 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 희열을 다시 맛보려 이듬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했죠.”가톨릭 신자인 그는 산티아고 길에서 ‘영적인 체험’도 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뒤 어떻게 하면 다시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 국내에도 770㎞나 되는 해파랑길이 있다는 걸 알고 도전했죠. ‘산티아고 체험’이 다시 일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걸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디엠제트 평화누리길도 걸었고 서해안과 남해안 땅도 밟았죠.”8년 전 지리산둘레길도 한 바퀴 돈 그는 제주 올레길 종주는 만 80살이 되는 해로 남겨뒀다. 그에 앞서 호남과 영남 유생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오던 길인 삼남길과 영남길 트레킹을 마칠 계획이다. “제주 올레길은 일부러 남겨두었어요. 팔순에도 한 번에 성공할 만큼 체력을 키우려고요.”그는 이번 책에 우리땅 곳곳의 숨겨진 아름다움은 물론 직접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이 땅의 현실도 기록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묻자 그는 “바위와 파도, 소나무숲 사이로 걸었던 경북 영덕 블루로드길과 산티아고 느낌이 들었던 전북 부안 마실길 2·3코스 그리고 안개와 임진강 갈대숲이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낸 평화누리길 11코스, 에메랄드 바다빛이 아름다운 남해군 앵강만 해변” 등을 꼽았다. 특히 남해 금산 아래 상주면은 앵강만 바다 물색이나 농촌 풍경이 좋아 언젠가 꼭 한번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단다.

길꾼 강신길씨가 에메랄드빛이라고 감탄한 남해군 앵강만 바다 풍경. 그는 은모래 해수욕장이 아름다운 남해군 상주면을 살고 싶은 동네 1순위로 꼽았다. 안나푸르나 제공

 

길꾼의 눈에 크게 들어온 모습 중 하나는 농촌의 쇠락이다. “트레킹 중 딱 한 번 농민이 직접 벼를 베는 모습을 봤어요. 대개는 기계가 모도 심고 벼도 베더군요. 농업 회사는 돈을 벌겠지만 농민이 버는 몫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어촌과 농촌이 한데 어우러진 남해안 마을을 봐도 어촌에는 돈이 돌아 젊은이들이 있지만 농촌에는 사람이 없어요. 나라는 산업화로 발전했지만 농촌은 분배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절실히 느꼈어요.”

 

2009년 의류수출업 접고 조기은퇴국문학 전공 되살려 ‘문필가’ 꿈꿔

62살때 안나푸르나 100km 첫 도전산티아고 순례길 ‘영적 체험’ 못잊어

2014년부터 4년간 전국 ㅁ자 한바퀴최근 두번째 책 ‘대한민국 둘레길’

 

그가 꼽은 국내 트레킹의 가장 큰 어려움은 ‘숙소 잡기’다. 하루 평균 40㎞쯤 걷는 데 마치는 지점의 마을에서 숙소를 잡지 못해 면이나 읍으로 택시를 타고 나와 묵은 뒤 이튿날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가는 일도 여러 차례였다. “평화누리길 쪽에는 면 단위에도 숙소가 없어요. 산티아고는 5㎞마다 숙소와 먹을 것을 구할 곳이 있어요. 우리도 지자체에서 10㎞나 안 되면 20㎞ 단위로라도 숙소를 확보해주면 좋겠어요. 예컨대 이장 집을 숙소로 지정하고 숙박비 보조도 해주면 해파랑길 등의 트레킹 활성화에 도움이 되겠죠.”가장 행복한 트레킹 순간을 묻자 그는 “출발해서 7일에서 10일 사이”라고 했다. “5일까지는 제 몸의 약한 부분이 약한 순서대로 아프기 시작해요. 그러다 오륙일이 지나면 통증이 다 사라져요. 7일쯤 되면 체력은 달리지만 몸은 가벼워요. 걷는 게 힘들면서도 신나죠. 특히 하루 걷기가 20~25㎞를 넘어가는 오후 2시부터는 기계처럼 자동으로 걸어요. 아무 생각 없이 내 발등만 보고 걷죠. 그게 ‘걷는 맛’입니다. 그래서 6개월쯤 지나면 또 길을 나서고 싶어지죠.”

지난달 27일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강신길씨. 그는 3년 전 고인이 된 영화배우 신성일(본명 강신영)씨의 사촌 동생이기도 하다. 신성일 배우가 그의 작은아버지 아들이다.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트레킹에 나설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뭘 아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3가지 질문을 머릿속에 담아간단다. 이 물음은 톨스토이의 책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부제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에 가기 전에 우연히 톨스토이 책을 봤죠. 혼자 하루 10시간 이상 걸으면 반 이상은 사색을 합니다. 처음엔 친구와 싸웠던 기억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생각할 게 없어요.”길을 걷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온 ‘성찰’이 궁금했다. “자연은 다투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길에서 쉬다 보면 큰 나무 밑에 작은 나무들도 층층이 똑같이 잘 자라요. 자연은 다 어울려 잘 자랍니다. 키 크다고 무시하지 않고, 작다고 주눅 들지도 않아요. 인간도 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어울려 살잖아요. 저 역시 모두가 더불어 사는 데 작은 보탬이 되자는 생각을 했죠.”자신의 트레킹 주제가 ‘감사’라고도 했다. “트레킹을 하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희한하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요. 산티아고 때 어느 날 새벽 출발하려니 한 스페인 할머니가 나무로 된 문을 손으로 급하게 두들기며 다른 길을 가리키더군요. 제가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을 보신 거죠. 덕분에 그날 트레킹이 수월했죠.”

 

강성만 선임기자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7960.html#csidxa2b994aea9cab6385c6894114b641c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