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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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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100만 넘어 기록 행진
98세·89세 노부부 알콩달콩 로맨스
20대 관객이 54%, 갈수록 입소문
3주째 상영관 수 186 → 728개로 늘어
역대 최고 ‘워낭소리’ 293만명 넘봐

 

76년 동안 서로 깊이 아끼며 사랑해 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한 장면. 영화 제목은 고대가요 ‘공무도하가’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 대명문화공장]

노부부의 잔잔한 사랑이 겨울 극장가를 이토록 뜨겁게 달굴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11월 27일 개봉, 진모영 감독, 이하 ‘님아’)가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11일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섰다. 순제작비 1억2000만원을 들인 저예산 다큐의 놀라운 성과다.

 ‘님아’는 14일 현재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영화사 자체 집계). 한국 독립영화 사상 최단 기간에 30만 관객(개봉 13일째)을 돌파하기도 했다. 2009년 한국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역사를 새로 쓴 ‘워낭소리’(이충렬 감독)의 293만 기록도 깰 수 있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76년을 해로한 조병만(98) 할아버지와 강계열(89) 할머니다.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할머니 모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전 노부부의 1년을 훑는다. 커플룩을 맞춰 입고, 아이처럼 장난치다가도 서로 살뜰히 보살피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큰 감동을 준다. 내레이션이나 특별한 설명 없이 할머니·할아버지의 모습만으로 구성했다는 점도 여느 다큐와 다르다.

 ◆‘노인 영화’보다 ‘로맨스 영화’=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그것도 노인이 주인공인 이 작품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건 ‘님아’가 노인 영화가 아닌 로맨스 영화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젊은 관객의 호응이 예상 외로 높다. 멀티플렉스상영관 CGV가 회원을 대상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대 관객의 비율이 54.2%(13일 기준)로 가장 높았다. 30대(24.3%), 40대(15.5%)가 뒤를 잇는다.

 2011년 KBS ‘인간극장’에 소개됐던 부부를 찾아가 이를 다큐 영화로 만든 진모영 감독은 “이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모든 연령대의 관객이 공감해주고 있다.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흔히 노인이 등장하면 실버 영화로 치부되기 쉬운데, ‘님아’는 누구나 공감 가능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 편의 가족 영화로 전환됐다”고 설명한다.

 현실이 각박한 만큼 따뜻한 정서에 목마른 관객을 불러모은다는 해석도 있다. 맹수진 영화평론가는 “한 사람이 한 상대와 수십 년 간 변치 않는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워낭소리’와 유사하다. 관계가 단절되고 파편화된 현실에서 76년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관객을 울리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관객 입소문 덕 톡톡히 봐=콘텐트의 힘도 탁월했지만, ‘님아’의 열풍 뒤에는 관객의 입소문이 있었다. 지난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 관객상을 탈 정도로 호응이 좋자, 홍보사는 적극적으로 시사회를 열어 입소문을 유도했다. 영화사 하늘 최경미 실장은 “대개 개봉 일주일 전쯤 시사회를 열지만, ‘님아’는 개봉 3~4주 전부터 시사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진 감독도 SNS를 통해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시사회에서부터 시작된 입소문 덕에 ‘님아’는 독립영화로서는 제법 큰 규모인 186개 상영관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워낭소리’가 10개 관에서 개봉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숫자다. SNS 등에서 입소문은 이어졌고, 개봉 3주째에는 스크린 수가 728개(13일 기준)까지 늘어났다. 현재 40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영화는 ‘인터스텔라’와 ‘엑소더스:신들과 왕들’ 뿐이다. ‘님아’의 열기가 더 오래갈 것이라 짐작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2014년 12월 15일 임주리·고석희 기자)

 

* 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강추합니다.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307 호)

 

【 진화론이 지지를 받는 이유 】

 

과학과 종교에 대해서 논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과학에 결정적인 우세를 안겨준 것도 바로 진화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동설 등 천체 물리학의 부상이 과학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지동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과학과 종교의 대결에서 큰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틀림없는 과학적 사실일까요?

물론 성서 내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창조론과 진화론을 비교한다면 진화론이 더 과학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진화론 그 자체가 완벽하게 과학적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냐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습니다.

 

성서 글자 그대로의 창조론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는 얘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창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보다 많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생명 탄생의 비밀, 다른 종으로의 진화 등은 아직 확실한 과학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화론이 완벽하게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앞에 보내 드린 뉴스레터에서 양자역학의 관점이나 연구비 등의 외부적 여건에 의해 과학적 사실에 왜곡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하는데, 진화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과학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다윈이 진화론을 제안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윈의 진화론이 각광을 받게 된 가장 큰 요인도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 특히 당시 위세를 떨치던 천주교의 교리에서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구절처럼 부가 죄악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에 의해 적자생존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부각되면서 부의 축적은 적자생존에서 승자가 차지하는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해 낙오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스펜서 등의 견해가 종교 지도자 및 기업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는 새로 부국이 된 미국의 기업가 정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의 크기가 적자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라는 과학적 뒷받침을 등에 업은 스펜서의 구호는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제도에 적용하는 사회적 다윈주의는 잘못된 진화론적 주장을 내세워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가 마치 진화론에 의한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를 원용한 합리적 원칙으로 미화되기도 합니다.

적자생존에 의해 자연계가 균형을 유지하듯이, 자유방임 경제, 규제 없는 자본주의 등과 같은 원칙을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또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19세기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진보를 혼동한 나머지, 적자생존의 개념을 인간 사회의 진화에 적용하여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진화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생학, 나치즘, 인종주의적 이민정책, 장애우 등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진화론적 주장이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진화론은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진화(문명화)된 민족이 덜 진화된 민족(야만인)을 정복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부 양심적인 학자들이 부당한 사회적, 윤리적 가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진화론이 악용되는 것을 보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항거는 쇠귀에 경 읽기였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내용에 반감을 느끼신다면 알게 모르게 자본가들이 앞세운 진화론적 논리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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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나 http://www.linknow.kr/group/happygroup의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은 저에게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글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금둔사 지허 스님

2014. 12. 18. 10:29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지난 주말에 전라남도에 간 김에 순천에 있는 금둔사의 지허 스님을 찾아 뵜습니다.

제가 지허 스님을 안 것이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지허 스님으로부터 덖음차도 구해서 마시고 찾아 뵐 때마다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