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프로네시스, 2010년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 뭔가 한 수 배웠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물론 그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서는 이마를 찌푸리고, 집중해서 글을 읽어야 하는 부담을 감수하긴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책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자본주의의 허점을 이론적으로 분석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저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많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책을 읽기가 어렵고, 읽는 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긴 했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뭔가 가슴 한편이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나쁜 점, 허점에 대해 논한 책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허점이 아니라, 사회학자와 철학자의 관점에서 살펴본 허점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경제에 생산이 중요한가, 소비가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의 자본주의에서는 소비가 더 중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주장이다. 생산은 기술발전과 풍부한 자본에 의해 얼마든지 확충할 수 있는데 반해, 생산된 재화가 소비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근간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저축이 미덕이었지만, 현재는 저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경제가 침체되면 정부에서 나서서 공휴일을 늘리고, 소비 쿠폰을 발행하고, 대출을 장려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소비가 경제의 원동력이 된 세상에서 개인의 입장은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생산의 주축인 노동자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본주의 초기에는 경제가 발전하면 생산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노동자의 숫자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생산이 늘어나도 노동자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임금도 줄어들고 있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데 돈을 쓰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노동자들이 임금 외에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을 통해 과외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수입을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는 상황이 되었다. 노동자들이 가난해지고, 자본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소비의 도구로 전락한 개인이 이런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개인이 소비자일 때만이 자본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개인들이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소비 영역이야말로 소비자가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산업자본의 음모, 나아가 소비자의 허영을 부추겨 소비를 촉진하려는 산업자본의 전략이 관철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가라타니 고진이 <트렌스크리틱(Transcritique)>에서 주장한 ‘노동자=소비자’에게 ‘일하지 않는 것’과 ‘사지 않는 것’이 동시에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대체 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소비 협동조합’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화폐 주권을 개인들이 되찾을 수 있는 화폐제도인 린턴(Michael Linton)이 1982년 제안한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도입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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