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15 호)
【 제주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해서 내리면 육지에서 느낄 수 없는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나도 제주에 갈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들지만, 나랑 같이 제주를 찾았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럼 제주에 갈 때 새로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제주가 육지와 달리 최근에 생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가 140억 년 전에 생성된 후, 46억 년 전에 지구가 생성되었고, 한반도도 수억 년 전에 형성되었다. 물론 한반도는 여러 차례의 지각 변동을 거쳐서 형성되긴 했지만, 수억 년 전에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보여 진다.
이와 반면에 제주는 약 2백만 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다섯 차례의 화산 활동을 거치면서 지금의 제주도 형태가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형성은 180만 년 전 서귀포층의 형성으로 시작해서 130만 년 전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이 형성되고, 70~30만 년 전에 지금의 제주도 해안선이 만들어졌다. 45만 년 전에 차귀도가 형성되었고, 20만 년 전에 한라산, 2만 5천 년 전에 오름이 만들어지면서 완성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도 화산활동이 탐지되기도 했는데, 산방산 근처에 있는 군산오름은 고려시대인 1016년에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한반도의 나이를 100세라고 치면 제주도의 나이는 한 살도 채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제주도에 가면 갓난아이의 젖비린내가 나는 것이다.
한라산을 빼놓고는 제주도를 얘기할 수 없다. 어찌 보면 한라산이 제주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라산은 제주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있다. 그러다보니 한라산 남쪽은 약간 경사가 심하고, 북쪽은 약간 경사가 덜한 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단단한 서귀포층을 피해서 북쪽에 오름 형성 등 화산활동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오름들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초기 대규모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서귀포 측, 즉 남쪽에 단단한 암석층이 많고, 북쪽 지형은 나중에 오름 형성으로 인한 성긴 바위층(곶자왈)이 많다. 그 때문에 남쪽에는 그나마 작은 하천도 있고, 그에 따라 천지연 폭포 등 폭포들도 있지만, 북쪽은 비가 오자마자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건천만이 존재하고, 지하로 스며든 물이 해변가에서 솟아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삼다수 공장도 북쪽 지역인 교래리에 소재하고 있다.
제주는 동서 방향으로 73킬로미터, 남북 방향으로 31킬로미터인 타원 형태를 띠고 있다. 남쪽과 북쪽도 차이점이 많지만, 동쪽과 서쪽도 차이점이 꽤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동쪽에 비해 서쪽에 농토가 많고 살기가 나은 편이다. 동쪽이 살기가 힘들다보니 뱀을 섬기는 신앙 등 민속신앙이 더 득세하고 있는 편이다. 지금은 동쪽에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만장굴, 비자림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아 살기가 좋아졌지만, 아직도 유명한 맛집이 별로 없는 등 그 영향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에 대한 지질 연구 결과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130미터까지 낮아졌기 때문에 육지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제주도는 1만 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에 접어들면서 해수면이 높아지자 자연스럽게 섬이 되었다. 빙하기와 간빙기는 다섯 차례 정도 반복되었는데, 이런 흔적은 지질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제주에 최초로 정착한 정착민은 1만 년 전 제주에 온 고산리 신석기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들의 흔적은 고산리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탐라국은 서기 1세기경에 탄생했는데,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선박 제조 기술과 항해술이 뛰어나 한반도는 물론 중국, 일본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독립 국가 지위를 유지했던 탐라국은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려에 귀속되었다. 어찌 보면 이때부터 탐라국은 식민지와 비슷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제주는 귀양지이면서 감귤, 전복 등 진상품을 바쳐야 하는 변방의 식민지로 변해갔다. 이런 푸대접과 탄압을 못 견뎌서 많은 제주민들이 육지로 탈출하자, 1629년부터 200년 간 허가 없이는 육지로 나갈 수 없는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다. 그야말로 제주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는 셈이 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제주민들의 고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몽골의 침입에 항거하였던 삼별초들이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들어오자 여몽연합군이 쳐들어오면서 수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었다. 또 여몽연합군이 제주에 상륙하여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1273년부터 100년간 제주도는 몽골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몽골은 몽골인들(목호들)을 제주에 이주시켜 제주의 중산간 초원 지역에 말을 방목하도록 하였다. 이 시기 제주는 고려의 영토가 아니라 실질적인 몽골의 식민지였다. 몽골의 원나라를 쫓아낸 명나라가 제주의 말들을 징발하여 보내라고 하자 몽골인인 목호들이 저항하였다. 그래서 1374년 목호의 난을 진압하고자 고려는 최영 장군을 보냈다. 이 진압과정에서도 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었다. 그 이후에도 이재수의 난, 4·3 등에 의해 많은 제주민들이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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