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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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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784 호)

 

【 순천 금둔사 납월매와 지허 스님 】

 

‘스님 떠나자 기이한 일…매화 100송이 피던 금둔사 무슨 일이’ (중앙일보 2024년 2월 2일 기사 제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6341)

아마 이 기사를 처음 접한 분들은 ‘이게 무슨 의미야?’라고 의아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스님은 지허 스님을, 매화 100송이는 순천 금둔사에 있는 납월매를 의미합니다.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금둔사를 복원하고 주지로 계셨던 지허 스님은 40년 전에 낙안읍성의 600년 묵은 매화나무에서 씨앗을 받아서 금둔사 대웅전 옆에 심었고, 그 중 여섯 그루가 살아남았습니다.

이 매화나무들은 납월, 즉 음력 12월이 되면 꽃을 피워서 ‘납월매’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매화나무들은 꽃이 피는 순서에 따라 1번부터 6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을 정도입니다.

 

납월매가 워낙 일찍 꽃을 피우다보니 한겨울 봄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꽃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등 여러 신문에서 금둔사 납월매의 개화 소식을 전하면 ‘아, 이제 봄이 멀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저는 가끔 납월매 소식을 듣고는 순천까지 차를 몰고 가서 지허 스님께 덖음차를 얻어 마시면서 좋은 말씀을 듣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허 스님께서 몇 년 전부터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해 계시다가 2023년 10월에 입적하셨습니다.

지허 스님께서 이렇게 입적하시자 그 슬픔을 못 이겨서인지 납월매가 올해는 납월에 꽃을 피우지 않았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최근 납월매가 꽃을 피웠다는 소식을 접하니, 아마도 기후 변화 등 다른 요인 때문에 납월매가 늦게 꽃을 피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제가 지허 스님을 알게 된 건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제가 순천에 사업차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순천 선암사에 놀러가서 매화를 구경하다가 지허 스님을 만났습니다.

순천 선암사는 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입구의 진입로가 운치가 있고, 매화나무와 차밭이 아주 유명합니다.

 

선암사는 원래 태고종 소속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조계종으로 소유 이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계속 분쟁을 하고 있던 사찰입니다.

아마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툭하면 태고종 스님들과 조계종 스님들의 난투극이 벌어졌다는 기사에 몇 번 나왔던 바로 그 사찰입니다.

지금은 법정 다툼 끝에 태고종 소속으로 최종 판결이 났고, 그에 따라 태고종 종정원까지 선암사 내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가 선암사를 방문했을 당시에 지허 스님께서는 주지로 계셨는데, 마당에서 매화를 구경하고 있는 저희 일행에게 다가와서 선암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방에 우리를 초대해서 선암사 칠전선원에서 만든 덖음차를 대접해 주시면서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마셨던 덖음차가 너무 맛있어서 그 후에는 계속 지허 스님으로부터 덖음차를 구해 마시고 있습니다.

 

이후 틈이 날 때마다 선암사로 지허 스님을 찾아뵙고 좋은 말씀도 듣고 덖음차도 얻어 마시면서 계속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지허 스님께서 선암사 주지 소임을 마치시고, 손수 금둔사를 재건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금둔사는 백제 때 창건된 절로,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는데, 지허 스님께서 절을 다시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지허 스님께서 금둔사에 계시는 동안에도 틈이 나는 대로 찾아뵈었고, 덖음차도 지허 스님으로부터 계속 받아서 마셨습니다.

지허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에는 토굴 생활도 하시고, 경전 공부도 많이 하셨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마다 가슴에 와 닿아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그러다 몇 년 전 태고종의 종정으로 추대되시었는데, 선암사 종정원에는 가끔 가시고 금둔사에서 주석하시면서 검소하게 지내셨습니다.

 

최근 제가 인도네시아에 근무하게 되면서 주로 전화로만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0월 지허 스님께서 갑자기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다비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지허 스님과는 지금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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