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 성장을 얘기할 때 가장 크게 떠오르는 화두가 ‘녹색 성장’이다. 경제성장과 환경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는 감수해야 한다는 게 당연한 논리였다. 그런데 녹색 성장은 환경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녹색 성장이 최근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물론 환경 보호, 특히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지만 화석 연료의 고갈 문제도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를 적게 또는 안 쓰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면서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과연 이런 이상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녹색 성장의 핵심 축은 크게 화석 연료의 의존도를 낮추는 신재생에너지의 개발과 화석 연료를 적게 쓰도록 유도하는 정책의 개발이다. 정책적인 부분에서 가장 큰 핵심은 화석 연료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즉 이제까지는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를 용인할 것이냐 하는 규제 위주의 정책이었지만, 녹색 성장 정책에서는 환경 문제를 경제적인 수치로 환산하여 경제와 환경을 시장 논리에 의해 풀어보자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서도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행하려는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들 수 있다.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는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권리를 돈으로 사고 팔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노력을 하면 그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경제적인 부담이 크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이산화탄소를 줄이도록 노력을 하도록 만들자는 것이 기본적인 개념이다.
전체적인 논리는 그럴 듯한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우선 이 논리대로라면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현재를 기준으로 낮춰야 한다. 그러면 선진국들은 경제발전이 그리 크지 않고,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이제부터 제조업 위주의 경제성장을 하려고 하는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라고 하면 큰 부담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 협약인 도쿄의정서가 만들어진 이후 몇 차례의 후속 회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가 지난해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후진국들과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론, 즉 이제까지 선진국들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혜택을 누려왔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우선 져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탄소 배출권을 가장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는 유럽(EU)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인 금융에 이를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조업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게 밀리고, 첨단 분야와 서비스업은 미국에게 밀리기 때문에 녹색 성장을 금융 분야와 결합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녹색 성장은 지구 온난화를 방지해서 지구를 구하자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각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환경 문제를 경제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녹색 성장 정책은 그리 쉽게 결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아직까지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 구조 상 녹색 성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뒤를 쫓아오는 중국 등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녹색 성장’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녹색 성장 자체가 환경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로 풀어보자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이해관계가 얽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녹색 성장의 명분과 실리를 잘 구분해서 한국 경제의 방향을 설정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다.
(에너지경제신문 2016년 2월 28일 자에 실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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