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22 호)
【 0과 1의 차이 】
“1층에서 기다릴게요.”
“알았어요.”
몇 년 전 인도네시아 회사에 근무하기 위해 갔을 때 한국으로 귀국하는 아내를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운전기사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아내를 배웅하고 나서 내가 숙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운전기사를 1층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공항에 차가 많아서 내가 내린 자리에 그대로 주차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다른 곳에 갔다가 1층에서 기다리면 아내를 배웅하고 나서 내가 1층으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를 배웅하고 1층에 가서 아무리 찾아도 내 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대화는 나눌 수 있었고, 안 되면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었기 때문에 1층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1층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항에 기다리는 차가 너무 많아서 내 차를 찾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면서 다시 살펴보았다. 그런데도 내 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씩씩거리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2층에서 운전기사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1층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니 왜 2층에 있는 거야?” 화는 나는데 인도네시아어를 유창하게 못하니 뭐라고 제대로 따질 수도 없고 답답했다. 그래도 번역기를 써가면서 대화를 해봤더니 인도네시아에서 1층은 한국에서 얘기하는 2층이고, 한국에서 말하는 1층을 인도네시아에서는 ‘lantai dasar’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1층과 운전기사가 생각했던 1층이 달랐던 것이었다. 한국에서 말하는 1층은 인도네시아에서는 0층이라고 할 수 있고, 굳이 번역하자면 ‘지상층(로비층)’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0층이 없고, 지상은 바로 1층부터 시작하고, 지하는 지하 1층(B1)으로 시작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지상 1층과 지하 1층 사이에 ‘0층’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 후에 건물 층수를 세는 방법에 대한 조사를 해봤더니 한국과 일본, 미국 등에서는 지상의 첫 번째 층을 ‘1층’이라고 하는 반면에, 유럽 국가들은 지상의 첫 번째 층을 ‘0층’ 또는 ‘지상층(ground floor)’라고 하고, 그 위층부터 1, 2, 3층 등으로 부른다고 한다. 또 스페인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말하는 지하 1층부터 1층으로 세기도 한다니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층수를 셀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특정 층을 아예 없애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4층 표기를 없애고 바로 5층을 매긴다든지 3A나 F로 표기를 대체하기도 한다. 더욱이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14, 24, 34 등은 물론 40, 41, 42 등 4자가 들어간 모든 층 표시를 없애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건축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중국과 마찬가지로 4가 들어간 층은 모두 표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에는 ‘0(L), 1, 2, 3, 5, ~ 13, 15, ~ 39, 50, 51 ~' 등으로 표기되어 그 건물이 몇 층인지 엘리베이터 표기만을 봐서는 짐작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와 반면에 기독교 영향이 큰 유럽 및 북미의 경우는 13, 이탈리아의 경우는 17을 거르는 경우가 있다.
이왕 숫자 얘기가 나온 김에 ‘0과 1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숫자를 세는 문자는 있었다. 예를 들면 한자 문화권에서 일(一), 이(二), 삼(三), 사(四) 등으로 세고, 로마 문자로는 Ⅰ, Ⅱ, Ⅲ, Ⅳ, Ⅴ 등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요즘은 숫자 하면 아라비아 숫자인 ‘1, 2, 3, 4 ...’를 떠올린다. 실제로 수학에서는 아라비아 숫자가 보편화되어 있고, 아라비아 숫자가 없으면 수학 연산 표기를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각 나라의 숫자 표기 문자도 10까지 세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나, 큰 숫자를 셀 때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와 반면에 아라비아 숫자는 아무리 큰 숫자도 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산을 하는 데도 아주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라비아 숫자의 가장 큰 장점은 ‘0'이라는 숫자에 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숫자에는 실제적으로는 ’0'이라는 개념의 숫자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무 것도 없는데 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아라비아 숫자를 통해 ‘0’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추상적인 숫자를 구체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8-8=0’이라는 계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반면에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8-8=없다’로 표기되어 더 이상 사고를 확장할 수 없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8+0=8’, ‘8-0=8’을 넘어 ‘8x0=0’, ‘8÷0=∞’ 등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추상적인 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0’이라는 개념 도입이 추상적인 계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0이 십진수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10, 100, 1000 등 큰 숫자를 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어, 수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해졌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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