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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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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11.13 제주에도 지역 차별이 있다고? 1

행복한 엔지니어의 뉴스레터 (제 873 호)

 

【 제주에도 지역 차별이 있다고? 】

 

제주도는 동서 방향으로 73킬로미터, 남북 방향으로 31킬로미터인 타원 형태를 띠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이 지형적으로, 지질학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한라산이 제주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있다 보니 한라산 남쪽은 약간 경사가 심하고, 북쪽은 약간 경사가 덜한 편입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남쪽에 단단한 서귀포층이 형성되고 나서, 그곳을 기반으로 북쪽에 오름 형성 등 화산활동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제주도에 있는 368개로 알려진 오름들 중 대부분이 한라산 북쪽(제주시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초기 대규모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남쪽의 서귀포 층은 단단한 암석층이고, 북쪽은 나중에 오름 형성으로 인해 형성되어 성긴 바위층(곶자왈)이 많습니다.

그 때문에 남쪽에는 그나마 물이 흐르는 하천도 있고, 폭포도 있지만, 북쪽은 비가 오자마자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만이 존재합니다.

 

제주도 남쪽 지역과 북쪽 지역도 차이점이 많이 있지만, 제주도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도 차이점이 꽤 많이 존재하는 편입니다.

대체적으로 보아 동쪽 지역에 비해 서쪽 지역에 농토가 많아 살기가 나은 편이지만, 서쪽은 해조류가 품질도 좋고 풍부한 편입니다.

이런 연유로 예로부터 제주도 동쪽 지역에 해녀가 많았지만, 이 지역이 살기는 훨씬 더 힘들었습니다.

 

지금이야 해녀가 수입도 많이 챙길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일할 수 있는 좋은 직업(?)으로 여겨지지만 과거에는 수탈의 대상이라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고무방수 옷을 입고 겨울에도 물질을 할 수 있었지만, 과거에는 무명옷을 입은 채 추운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고생을 감내해야만 했었습니다.

일제 때는 일본의 최신 동력선에 어장을 강탈당하고, 채취한 해산물을 헐값에 일본인들에게 빼앗겨서 생활고에 허덕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동쪽 지역이 살기 힘든 여건이다 보니 뱀을 섬기는 신앙 등 민속신앙이 서쪽 지역보다 훨씬 더 득세하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김녕사굴 전설 등 동쪽 지역에는 뱀과 관련된 신앙이 많았고, 동쪽 지역 아가씨가 시집을 가면 뱀도 같이 따라간다는 말이 있어서 결혼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를 흔히 ‘1만 8천 신들의 고향’, ‘당 오백, 절 오백’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속 신앙이 왕성했었는데, 그 대부분이 동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신당은 제주 전역에 350개가 있으며, 대개 본향당, 일뤠당, 여드렛당, 해신당, 산신당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을의 수호신 격인 본향당은 본향당은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습니다.

웰뤠당은 육아와 병을 낫게 해주는 기능을, 여드렛당은 애초에 뱀을 모시는 당이었으나 이곳을 찾는 이들은 육아·치병뿐 아니라 가정의 안녕까지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해신당은 어업종사들에게, 산신당은 목축과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니면서 치성을 드렸던 신당입니다.

 

지금은 제주칠머리당굿이 무형문화재로, 1986년에는 송당본향당에서 치러지는 제의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또 2005년엔 제주도 내 신당 5곳이 제주도 문화재 민속자료로 지정됐고,. 2009년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에서 인정하는 세계적 보물이 됐습니다.

하지만 1702년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에 의해, 조선말에는 천주교인들에 의해,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붐을 이룰 당시에는 미신타파라는 명분으로 신당 문화가 억압받았습니다.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도 서쪽 지역은 비교적 선교가 쉬웠으나, 동쪽 지역은 민속 신앙으로 인해 선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주민 대비 신자 수가 많았던 곳도 서쪽 지역에 위치한 신창이었고, 콜롬반외방선교회의 성이시돌 목장이 자리 잡은 곳도 서쪽 지역인 한림읍이었습니다.

지금은 동쪽에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만장굴, 비자림 등 유명한 관광지가 많아 살기가 좋아졌지만, 아직도 유명한 맛집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그런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주도 행정구역이 북쪽의 제주시와 남쪽의 서귀포시 등 2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과거에는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는 것은 좋지만, 북제주군과 남제주군 대신에 동제주군과 서제주군으로 나눠야 맞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주도의 자연적, 지형적인 차별 상태를 잘 이해하는 것도 제주 속살 여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풀어본 이야기입니다.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기술자

 

김송호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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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송되었던 뉴스레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제 개인 블로그 http://happyengineer.tistory.com/의 <주간 뉴스레터> 목록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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