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보슬비가 내리던 지난달 어느 토요일 아침, 배낭을 메고 세종시 집을 나선 나와 아들은 고속열차(KTX)에 몸을 실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2025 세계유산축전―선암사∙순천갯벌’이 한창인 전남 순천이었다.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그 의미를 시민들과 나누는 문화축제다. 선암사와 순천 갯벌 일대에서 펼쳐진 세계유산축전은 다양한 부대 행사가 더해졌다. 그중 하나가 ‘갈대 백패킹’이다. 우리를 순천으로 이끈 프로그램이다. 순천만 안풍습지에서 진행되는 1박2일 캠핑 행사다. 이 지역은 평소에는 야영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니, 순천만의 생태와 밤하늘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단 1회에 그쳤던 지난해와는 달리, 올해엔 축전 기간 중 총 3회에 걸쳐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오후 4시부터 시작되기에 오전에 도착한 우리에겐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오전 10시30분에 순천역을 출발하는 시티투어버스에 올랐다. 남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으로 순천의 요모조모를 들려주는 베테랑 관광 가이드의 해설은 흥을 돋웠다. 송광사와 순천만습지, 순천만국가정원을 돌아보는 시티투어버스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했다. 그중 한 외국인 여성이 눈에 띄었다.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밝힌 여성은 최근 유럽을 휩쓴 케이(K)팝과 케이드라마 열풍에 매료돼 한국을 찾았다고 했다. 서울과 제주, 경주, 전주를 거쳐 순천까지, 한달째 홀로 전국을 여행 중인 그는 “한국은 어느 도시를 가든 도로가 깨끗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한국 여행을 적극 추천할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시티투어버스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우리는 순천만습지 매표소 앞 세계유산축전 부스에서 ‘갈대 백패킹’ 참가자로서 체크인을 했다. 매표소부터 ‘갈대 백패킹’ 행사가 진행되는 안풍습지까지는 3㎞. 아이 걸음으로 한시간 거리다. 오전 내내 내린 보슬비가 그쳤다. 우리는 해밀(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만끽하며 순천만을 눈에 담았다. 갯벌과 논,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에 마음까지 맑아졌다.
“아빠! 여기 한 손은 작고 한 손만 큰 게 보이지? 저게 농게야! 그리고 저건, 칠게인가 보다!” 최근 갯벌 생태에 대해 배웠다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서진이가 재잘거리며 흑두루미와 칠면초, 짱뚱어 등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읊조렸다. “참, 멸종위기종인 검은머리갈매기는 전세계의 11%가 순천만에 서식한대. 아! 저기 망원경 있다! 검은머리갈매기 있나 찾아보자!” 서진이는 망원경을 향해 뛰어갔고, 길가의 작은 게들은 재빠르게 길을 터주었다.

좌우로 펼쳐진 논과 갈대밭을 음미하며 걷다 보니 오른편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한편에 하얀 몽골 텐트가 보였다. “왐마, 날씨가 참 덥죠~. 시원한 물 한잔 들이켜고 마음에 드는 자리 잡으세요.” ‘갈대 백패킹’ 스태프가 시원한 생수병을 건네며 우리를 반겨줬다. “오늘 박지는 여기가 좋겠어, 아빠!” 시원하게 펼쳐진 안풍습지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리던 아들이 외쳤다. 우리가 텐트를 설치하는 사이, 하나둘 이웃이 늘어갔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있었다. 두 딸과 함께 배낭을 메고 여수에서 온 가족,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순천에서 온 가족, 그리고 서진이 또래의 아이와 창원에서 온 또 다른 아빠 백패커가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어른과 아이 백패커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순천만습지를 둘러싼 논과 밭의 곡물은 추수철이 돼도 수확하지 않아요. 순천만을 찾는 겨울 철새들과 흑두루미의 식량인 셈이죠. 그래서 이 주변의 논밭에는 농약을 치지 않는답니다.” 세계유산축전과 ‘갈대 백패킹’의 운영을 맡고 있는 양지현(45)씨가 아직은 초록이 깃든 주변을 둘러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세계유산축전이 끝나면 황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을 감상하러 수많은 사람이 순천만을 찾을 거예요. 그리고 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겨울 철새들이 순천만을 수놓습니다. 특히 흑두루미의 군무는 정말 장관이에요. 겨울의 차분한 순천만에서 즐기는 탐조 프로그램도 아이들과 즐기기 참 좋습니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다. 아이들은 마치 오랜 친구인 듯 연신 웃음을 쏟아내며 잔디밭을 뛰놀았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순천만의 밤은 고요하게 저물어 갔다.
박준형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저자
[한겨레 ESC 2025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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