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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로서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과 더불어 인생 후반기를 맞아 행복을 추구하는 기술자의 변신 스토리입니다. --------- 기술 자문(건설 소재, 재활용), 강연 및 글(칼럼, 기고문) 요청은 010-6358-0057 또는 tiger_ceo@naver.com으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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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앱 등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에이비(AB)5’ 법안이 새해 1일 발효됐다. 논란이 거세긴 하나 유럽 국가들에 이어 혁신 공유경제의 본산지이자 시장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도 이런 법안이 발효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배달 종사자의 산재 체계 개편을 언급했는데, 한국도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서두를 때다. 에이비5 법안은 노동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가 독립계약자인지 아닌지를 회사 쪽이 핵심업무 종사 여부 등 세가지 기준으로 입증하도록 했다. 이를 입증 못 하면 정직원으로 인정해 최저임금·유급휴가·건강보험 등을 제공해야 한다. 워싱턴과 오리건 등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준비 중인데 비용의 대폭 증가를 우려한 기업들의 반발이 크다.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음식배달업체인 포스트메이츠는 위헌 소송을 냈고 대체법안 마련을 위한 로비전에 나섰다. 기업뿐 아니라 계약 해지를 우려한 사진가, 프리랜서 기자들도 반발하는가 하면, 미 연방법원이 2일 캘리포니아 트럭연합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는 등 시작부터 논란이 크다.반면 프랑스는 플랫폼업체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자 권리를 명문화한 법을 제정해 노동3권 등을 보장하도록 했고, 산별 협상 전통이 강한 독일은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의 행동강령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처럼 각국의 대응이 다르고 갈등도 있지만, 플랫폼 노동이 세계적으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논의의 대상이 됐다는 점만은 분명하다.최근 몇년 새 한국에서도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현실이 부각된 데 이어, 지난해엔 배달 종사자와 택배기사, 대리기사 등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잇따랐다. 하지만 법·제도의 부재 속에 2일 ‘배달의 민족’ 라이더들이 매일 밤 바뀌는 프로모션 수수료를 비판했듯, ‘노동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당장은 종사자 안전을 위해 산재 체계 개편을 포함한 사회안전망 확보와 분야별 표준계약서를 도입하며 우리 실정에 맞는 기준을 세워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50여만명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논의는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플랫폼업체의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올해를 사회적 논의의 원년으로 삼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923099.html#csidx81aa335e7eb65108a895610990c3f72

 

[사설] 50만 플랫폼노동자 문제, ‘사회적 논의’ 원년 되길

모바일 앱 등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에이비(AB)5’ 법안이 새해 1일 발효됐다.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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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월 4일]

[신문기사] 인공지능이 칼이 될 때

2020. 1. 22. 07:08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전치형 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새해를 앞두고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AI·에이아이) 국가전략’은 “아이티(IT) 강국을 넘어 에이아이 강국으로”라는 표어를 담고 있다. ‘선진국’ 대신 ‘강국’이라는 단어를 골랐다는 사실에서 정부의 결기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군사 강국’, ‘복지 강국’, ‘스포츠 강국’이라는 표현과 달리 ‘에이아이 강국’은 무엇이 어떻게 강한 나라일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세계를 선도하는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 구현” 등 전략 문서가 제시하는 추진 과제를 보면 감이 잡히긴 하지만, ‘에이아이 강국’에서 살고 싶은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국가전략 발표보다 두달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힌 ‘인공지능 기본구상’은 인공지능을 우리가 당면한 각종 문제의 해결사로 추켜세운다. 우리가 “가장 똑똑하면서도 인간다운 인공지능”을 만든다면 그 인공지능은 “고령화 사회의 국민 건강, 독거노인 복지, 홀로 사는 여성의 안전, 고도화되는 범죄 예방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낼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으로 인류를 이끌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에서 신기술에 대한 강한 기대와 신뢰를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은 아예 “인공지능 정부가 되겠습니다”라고 다짐하기도 했다.대통령과 정부가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기술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은 중요하다. 인공지능은 정부가 작동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인공지능 정부’는 우리가 기다리던 그런 정부가 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에도 국정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바로 그런 이유로 대통령과 정부는 마치 검찰을 대하듯이 인공지능을 대할 필요가 있다. 세상 모든 문제에 개입하여 뒤흔들 수 있는 힘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점검하고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곤란한 문제들을 단칼에 풀어주는 해결사는 매력적일지 몰라도 감시와 견제 없는 해결사는 사람을 옥죄고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가장 똑똑하면서도 인간다운 인공지능”이 저절로 더 멋진 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 것은 검찰이 가장 유능하면서도 합리적일 것이라 믿고 기다리면 더 정의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정부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과 검찰의 공통점은 둘 다 사람을 식별하고 분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준을 세워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거나 공권력을 행사한다. 검찰이 내리는 판단이 어떤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듯이, 정부 안에서 인공지능이 내리는 판단도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인공지능을 복지나 범죄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이 어떤 자격이나 이력이 있는 사람인지, 과연 그 사람을 믿어도 되는지 아니면 골라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싶어한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을 법한 담당 공무원이나 경찰보다는 인공지능이 적법한 수혜자와 잠재적 범죄자를 가리는 데에 더 나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그러나 인공지능이 사람의 정체와 가치를 더 잘 판단하리라는 믿음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인공지능은 아직 ‘문재인 대통령 국정철학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즉 인공지능이 사람을 분류하고, 성향을 분석하고,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을 배분하는 결정을 할 때, 그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롭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들은 인공지능이 이미 소외되고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 즉 현재의 불평등과 불공정과 부정의를 답습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가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시에서 경찰이 인공지능 기반의 얼굴인식기술 사용을 금지한 것은 백인 남성에 비해 유색인종과 여성 식별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인공지능은 요긴하면서도 위험한 칼과 같다. “가장 똑똑하면서도 인간다운 인공지능”이라는 희망적인 수사만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없다.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이라는 애매모호한 원칙보다 더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사회적 약자를 부당하게 겨누는 것을 막는 정책과 실천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4716.html#csidxc35ce0e24b38fb59456ee4cab1c78dd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인공지능이 칼이 될 때

인공지능 기술은 2010년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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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0년 1월 17일]

1865년 영국 태생이 150년도 더 지나 한국 땅에서 이렇게나 자주 불려 나와 쓰일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자동차 시속을 4마일(6.4㎞, 도심 2마일)로 제한하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통제하도록 했다는 그 법 말이다. 본명(기관차 도로법·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은 희미하고 ‘붉은 깃발법’이란 별명으로 선명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걸림돌로 여겨진 은산분리 제도에 이어, 이른바 ‘타다 금지법’(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에 이 딱지가 덧붙고 있다.지금에야 우스운 규제 장치로 보이고 오로지 기득권(마차산업) 지키기였다고 하나, 당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땐 도로 상태가 엉망이었고, 자동차라는 게 육중한 증기기관으로 소음이 엄청났으며, 말과 마차가 운송의 중심을 차지하던 시절이라 승객과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또 하나의 붉은 깃발법이란 딱지를 받은 여객법 개정안은 일정한 기여금을 내고 ‘플랫폼운송 면허’를 받으면 총량제 안에서 택시처럼 합법적으로 운송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타다 서비스는 지금과 달리 면허를 취득해야 합법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타다 쪽에선 추가 비용을 물어야 할 처지여서 반발할 법한데, 개정안은 정부와 모빌리티 업계가 1년가량 논의를 벌여 만든 ‘7·17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반영한 것이다. 느닷없이 들이밀어진 게 아니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는 타다에 대한 검찰의 기소(10월28일)였을 뿐이다.현행 택시업은 면허를 확보하고 차량을 구입하고 일정한 경력·자격의 기사를 둬야 하며 차량 외관, 요금, 운행 지역의 규제를 받지만, 타다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유사 서비스임에도 전혀 다른 규제 환경에 들어 있다. 불공정 시비를 낳는 대목이다. 이는 택시 서비스에 고객 불만이 큰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요금 규제로 서비스 질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없으니 택시 기사는 굳이 친절 응대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고, 고객 쪽에선 요행히 친절한 택시를 만났더라도 서비스 재구매의 길을 찾기 어려우며, 택시 회사로선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한 재투자의 이유가 별로 없는 악순환 구조다.

 

서울 강남구 한 주차장에 서 있는 타다 차량.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플랫폼 택시가 도입되면 택시업계의 이런 구조에 변화가 일 수 있다. 탑승 거리나 시간에 따른 요금 외 규제를 풀면 다양한 요금체계에 맞춰 애견 동승 따위의 여러 부가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갖춘 플랫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택시 기사를 적절히 관리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고객 입장에서는 맞춤형 운송 서비스를 재구매하게 되고, 회사 쪽의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택시 업체들을 자극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과 결합하는 사례도 생겨날 수 있다. 쏘카의 자회사로 타다를 운영하는 브이씨엔씨와 달리 코나투스(반반택시), 케이에스티모빌리티(마카롱택시) 같은 스타트업 업체들과 카카오모빌리티, 우버는 법 개정안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현실이 이런 기대감을 높인다.여객법 개정안과 관련해선 풀어야 할 후속 숙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플랫폼 면허 사업자 수, 기여금 수준, 서비스의 지역 단위, 차고지 규정, 렌터카 허용 여부 따위를 정해야 한다. ‘타다 금지다, 아니다’라는 식의 논란보다는 후속 과제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여객법 개정안은 신규 서비스 등장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협상과 타협을 통해 풀어낸 좋은 선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하지 않고는 혁신 그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택시 기사들의 잇따른 분신 사태에서 이미 경험한 바다.‘붉은 깃발법’은 제정 31년 만인 1896년에 폐지됐다. 기술 진보로 내연기관이 퍼지고 자동차 산업이 성장한 데 따른 변화였다고 한다. 이 법 탓에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다른 나라들에 뒤처졌다는 얘기는 한번쯤 의심해봐야 한다. 역사적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는 선명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김영배ㅣ논설위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1187.html#csidx0eaaa5706e19d90be09b4baf9b26bcb

 

[아침햇발] ‘붉은 깃발법’의 쓸모

서울 강남구 한 주차장에 서 있는 타다 차량.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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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2월 18일]

최민영 ㅣ 산업팀 기자

 

타다가 쾌적하고 편리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늦은 밤 귀가할 때 택시보다 타다를 부르고 싶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타다를 호출하려 하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커다란 11인승 승합차의 비어 있는 옆자리는 낭비로만 느껴지고, 기사들의 처우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도 혼란스럽다. 타다는 차량 소유를 공유로 바꾸고 드라이버들에겐 행복한 일자리를, 이용자들에겐 만족할 수 있는 탑승 경험을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여기에 전부 동의하기는 어렵다.미국 <타임>의 논설주간인 아난드 기리다라다스는 지난해 <엘리트 독식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미국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혁신기업을 창업한 이들과 이런 기업에 투자한 사람 등이 참여하는 행사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속내를 듣고 폭로했다. 이들은 ‘임팩트 투자’ ‘윈윈’과 같은 수식어를 쓰면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서비스로 사회 문제를 ‘혁신’할 수 있다고 대중을 설득한다. 이는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먹혀들지만 사실 그 서비스는 문제를 바꿔내기보단 비켜가는 방식이고 혁신이라는 수사는 자본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기만 했다는 것이다.‘혁신의 대명사’가 된 타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타다 출범 이후 운영사 브이씨엔씨(VCNC)와 모회사 쏘카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는진 알 수 없으나 타다가 ‘차량 공유’인지는 의문이다. 쏘카는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위해 1천여대의 카니발 승합차를 새로 사들였다고 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타다는 차량의 소유 문화를 공유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하지만 도로에는 전에 없던 승합차 1천여대가 새로 생겼고 차량 소유는 더 늘어났다. 지난 10월 타다 베이직 규모를 1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차량이 늘면 그만큼 교통 혼잡도, 대기오염도 심해질 것이다. 쏘카의 사업계획서에 적혀 있는 △차량 감소로 에너지 절감 및 대기오염 문제 해결 △차량 대체 효과로 교통 혼잡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이라는 ‘소셜 임팩트’ 내용에 그다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다.“드라이버들이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서 일하면서 월급제로 고소득을 올리는 자유롭고 행복한 일자리.” 타다는 “택시기사보다 소득이 높고 행복하다”고 강조한다. 사납금으로 대표되는 택시기사의 열악한 처우를 대비시키면서 그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혁신을 타다가 해냈다는 메시지다. 출근길에 지하철 대신 일부러 타다를 타고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는 “일하는 시간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고 소득도 점점 줄어가고 있다”고 했다. 타다는 지난해 기사를 모집하며 8건 이상 운송하면 5천원을 더 주거나 출근만 해도 1만원을 더 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올해 이런 이벤트만 사라진 게 아니라 야간조 근무자들에게 주는 교통비도 없어졌다고 한다.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된 뒤로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근무시간 일부를 기사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타다가 제시한 범위 안에서의 선택이라서 제한적이다. 타다에 기사를 공급하는 한 협력업체 대표는 “이런 식이면 대리를 뛰는 게 낫겠다는 기사들도 나온다”고 말했다. 기사들은 자유롭지도 않고 소득도 줄고 있지만 택시와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은 많다. 기사들은 행복할까?타다를 부르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날씨가 추워지자 따뜻하게 데워진 시트가 손님을 기다린다. 승차 경험은 만족스럽지만 의문은 사라지질 않는다. 한국보다 먼저 ‘혁신기업 붐’을 거친 미국에서는 이미 ‘눈속임’이라고 드러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타다는 국토교통부가 실패한 택시제도를 운영하면서 문제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방치돼온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 타다는 무엇을 바꿔냈다는 것일까? 수사를 넘어서는 행복과 혁신이 있기나 한 걸까?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it/921186.html#csidx0228b41014cd8178797736cf5fd4daf

 

[한겨레 프리즘] 타다는 혁신일까 눈속임일까 / 최민영

최민영 ㅣ 산업팀 기자 타다가 쾌적하고 편리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늦은 밤 귀가할 때 택시보다 타다를 부르고 싶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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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2월 18일]

[신문기사] 혁신과 진보가 만나려면

2019. 12. 24. 07:08 | Posted by 행복 기술자

이원재 ㅣ LAB2050 대표혁신적 서비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반복되고 있다. 처음 새로운 서비스가 나온다. 초기에는 혁신적 기업가들과 얼리어답터들이 환호한다. 그러고는 좀더 넓은 범위의 소비자층에서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하다. 이 소비자층은 주로 젊고 구매력 높고 변화에 예민한 층이다. 즉 시장의 첨단에 서 있는 핵심 소비자층이다.환호가 커지면서 반발하는 목소리도 커진다. 혁신이 경계를 무너뜨리면 타격을 입게 될 기존 산업에서 나온다. 전망이 좋지 않고 위축되어가는 산업이라면 저항이 더 거세다. 기존의 규칙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생계 위협을 느끼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다음에 지식인과 정책가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혁신적 기업은 경계를 허물려고 시도한다. 편법 논란에 시달린다. 경계선을 벗어난 곳에서 소비자들은 매력을 느낀다. 여기서 새로운 가치도 나온다. 그러나 기존 사업자들은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위협을 느낀다. 경계가 허물어지면 존재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진보는 주로 그 위협에 주목한다. ‘혁신은 좋지만 생존권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그 혁신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 편법이다’ 등의 논의가 확산된다. 위협의 근원인 혁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된다. 갈등이 증폭되면 법과 제도는 일단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과정은 반복된다. 부동산 중개업에서, 교통서비스에서, 금융과 건강 서비스 등에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날 일이다.꼭 이런 식이어야만 할까? 사회적 진보가 기술혁신, 산업 전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진보와 혁신이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한다고 본다. 산업의 혁신을 수용할 때 진보가 가능하고, 진보적인 사회적 가치를 포용할 때 혁신이 융성했다고 역사는 알려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혁신가들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조금씩 기존의 생각을 허물고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우선 혁신가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생각이 있다. 첫째, 공동체 없이는 기업도 없다. 공기와 물과 바람이나 도로와 통신망뿐 아니라, 오랜 시간 연구와 교육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나 이에 바탕을 둔 기술까지도, 사실 사회 전체의 것이다. 기업은 공동체가 함께 만든 공유부를 사용하며 가치를 만들어낸다. 둘째, 혁신의 성공으로 생계를 잃는 사람들은 끝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 강력한 사회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혁신은 그 자체로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셋째, 혁신의 결과로 만들어낸 가치는 최대한 공동체로 되돌려야 한다. 기본적으로 혁신 과정에서 생긴 피해자나 혁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다시 써야 한다. 증세와 사회보장의 확대가 그 방법이다.진보가 받아들여야 하는 생각도 있다. 첫째, 영업권 보호는 사람들의 삶을 확고하게 지키지 못한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을 통해 경험했던 일이다. 동네 슈퍼와 구멍가게는 결국 거의 사라지고 편의점만 수혜자가 됐다. 신선식품 온라인 쇼핑이 확장되자 대형마트마저 위기에 빠지게 됐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영업권은 지켜도 지켜지지 않는다. 삶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개인에 대한 사회보장이다. 둘째, 산업 전환 없이 고용은 보호되지 않는다. 과거 제조업 고용 위기를 맞았던 유럽과 미국 도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산업으로 전환을 이룬 곳만 경제도 고용도 새로운 균형을 찾았다.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보장 체제를 만들어가야 하며, 신산업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일의 형태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셋째, 국가가 길을 터주지 않고 신산업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국가의 역할이 시장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미래를 읽고 거기에 맞는 전환 로드맵을 제시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역설적으로, 시장 질서를 뒤흔드는 혁신이야말로 가치 있는 혁신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며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칙이 흔들리니 위협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를 국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 혁신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해서 말이다.가장 강력한 복지국가 위에서 유연한 산업 전환을 가능하게 했던 북유럽 모델에서 배울 점이 많다. 기업을 인정하고 혁신을 존중하면서도 세금은 확실하게 걷는 모델이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파격적 분배 실험을 가장 먼저 검토하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갈등이 가장 낮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은 나라들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0327.html#csidxc3a2777deb9c537a61164375c4f75a6

 

[세상읽기] 혁신과 진보가 만나려면 / 이원재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혁신적 서비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반복되고 있다. 처음 새로운 서비스가 나온다. 초기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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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2월 11일]

통계청 2017~2047 장래가구 특별추계
2047년 1인 가구 중 60살 이상 56.8%
1인가구 비중도 2047년 36.3%
미혼 인구 늘고 황혼이혼 등으로 가구 분화돼

 

급속한 고령화로 2047년엔 65살 이상 홀몸 노인이 전체 1인 가구의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구 구성원 수도 점점 줄어 2047년엔 열 집 중 일곱 집이 1~2인 가구가 된다.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2047 장래가구 특별추계’를 보면, 총가구 수는 2017년 1957만1천 가구에서 늘어나다 2040년 2265만1천 가구까지 증가한 뒤 2041년부터 감소한다. 평균 가구원 수도 2017년 2.48명에서 2047년 2.03명으로 줄어든다. 가구주를 나이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 있는 중위연령은 2017년 51.6살에서 2047년 64.8살로 13.2살 높아질 전망이다. 장래인구 특별추계에 따라 총인구가 감소하는 시점은 2029년으로 예상되지만, 가구 수는 1인 가구 증가 영향으로 계속 늘어나다 12년 뒤인 2041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인 가구는 2017년부터 30년간 연평균 9만1천 가구씩 늘어난다. 2017년 1인 가구는 558만3천 가구로, 전체의 28.5%였다. 2047년엔 832만 가구로 늘어나 37.3%를 차지할 전망이다. 부부 2명만 사는 가구도 같은 기간 연평균 5만7천 가구씩 늘어, 2017년 309만 가구(15.8%)에서 2047년 479만4천 가구(21.5%)로 증가한다.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보면, 1~2인 가구 비중이 2017년 55.2%에서 2047년 72.3%까지 늘어난다.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는 2017년 615만 가구(31.4%)로 1인 가구 비중(28.5%)보다 높았지만, 연평균 8만4천 가구씩 줄어들면서 2047년엔 363만8천 가구(16.3%)로 감소할 전망이다. 1인 가구 가운데서는 고령자 가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한다. 1인 가구 가운데 65살 이상 인구 비중은 2017년 24.1%(134만7천 가구)에서 2047년 48.7%(405만1천 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65살이 되는 내년부터 고령자 가구 증가속도가 가팔라진다.정년이 되는 60살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1인 가구 중 60살 이상 비중은 2017년 32%(178만5천 가구)에서, 2037년 50.3%(406만4천 가구)로 절반을 넘어서고, 2047년엔 56.8%(472만9천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1인 가구 비중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2037년 기준 한국은 35.7%로 일본(39%)보다 소폭 낮다. 반면 캐나다(30.2%, 2036년), 영국(33.1%, 2041년), 호주(26.5%, 2037년)보다는 높은 수준이다.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전체 연령대에서 미혼 인구가 증가하는 영향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령 1인 가구 증가는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황혼 이혼이나 사별 인구가 늘면서 가구가 분화하는 게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이경미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09950.html#csidxca72b8fb81935a9a88da3defd6ce661

 

2037년에 1인 가구 중 60살 이상이 절반 넘어

통계청 2017~2047 장래가구 특별추계 2047년 1인 가구 중 60살 이상 56.8% 1인가구 비중도 2047년 36.3% 미혼 인구 늘고 황혼이혼 등으로 가구 분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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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9월 19일]

미국, ‘스마트폰없는 보육’ 신산업
국내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심각
“만2살 이전엔 허용 않는 게 바람직”

 

스마트폰 화면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앱들이 보인다. 출처 pexels

유·아동 스마트폰 얼마나 허용할까

 

구글·페이스북 등에서 일하는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 종사자들이 자녀들을 스마트폰·컴퓨터를 허용하지 않는 발도르프학교에 보내 ‘아날로그 교육’을 시키는 현실이 몇해 전 <뉴욕타임스> 보도로 알려졌다. 아이폰, 아이패드를 개발하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혁신적 도구라고 홍보한 스티브 잡스도 정작 자신의 10대 자녀에게는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도 그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잭슨의 <스티브 잡스>를 통해 공개됐다.

 

최근 미국 많은 도시에서는 ‘아날로그 보육 코칭’ 산업이 생겨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건강하게 기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보육법 사교육이다. 500명 넘는 교사를 둔 ‘부모코칭연구소’는 시간당 85~250달러를 받고, 8~12회 과외수업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몇 달전부터 대기인원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다. 이 보육법은 부모와 아이에게 디지털 기기 없이 한나절을 보내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스마트폰 없던 시절처럼 주변의 모든 도구를 놀잇감으로 삼는 훈련을 한다. 또 스마트폰과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녀들로 하여금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돌보게 하면서 살아 있는 생명과 지속적 관계를 맺게 하는 게 핵심이다.국내의 ‘디지털 보육’ 현실은 어떨까?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해 혼란스러운 생각과 태도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바른아이시티(ICT)연구소가 지난해 11월 1~6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 6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조사에서 부모들은 스마트폰의 교육적 효과가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교육용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비율은 매우 적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폰 태블릿 사용이 아이 교육이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부모들은 “매우 그렇다”(8%), “대체로 그런 편이다”(49%)라고 응답했고, 중립적 답변(“보통이다”) 33%, 부정적 답변(“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은 10%에 불과했다.아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는 엄마(46.5%)나 아빠(22.7%)의 스마트폰이었지만, 아이 본인의 기기인 경우도 23.8%였다. 연구진은 “영·유아들이 본인의 스마트 기기를 보유한 비율이 예상보다 높았다”며 이는 “그만큼 젊은 부모들이 영·유아의 스마트폰 이용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장소는 가정(41.1%), 식당과 카페(32.5%), 자동차(14.4%) 순이었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는 부모들의 영·유아 스마트폰 사용 목적이다. “아이에게 방해받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31.1%), “아이를 달래기 위해”(27.7%), “아이가 좋아해서”(26.6%)가 1~3위로 전체의 85.4%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교육적 목적”(7.0%), “습관적 사용”(4.2%), “아이 친구와 공감대 형성 위해서”(1.1%)였다. 스마트폰 사용 목적은 엄마와 아빠가 구별됐다. 아빠들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33.3%), 엄마는 “아이에게 방해받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34.9%)가 각각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목적 대부분이 부모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게 조사로 드러났다.부모들의 이런 태도는 유·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해마다 1만가구 면접조사를 통해 진행하는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 다른 연령대와 달리 유·아동의 인터넷 과의존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2018년 총 2만8575명 조사대상중 3110명이 포함된 유·아동(3~9살) 그룹은 과의존 위험군이 20.7%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크게 상승했다. 전체 연령대의 위험군 비중이 19.1%로 이전보다 상승폭(0.5%p)이 둔화했지만, 유아동은 위험군 비중이 최초조사(2015년) 대비 가장 큰폭으로 증가했다(8.3%p). 정부 보고서도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증가에 대한 정책추진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적 아동발달학자이자 뇌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유·아동에게 디지털 기기를 어느 정도로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제시했다. 미국 소아과의사협회가 권고한 것처럼 울프도 만 2살까지는 디지털 기기를 제한해야 하고, 2~3살 아이는 하루 몇분에서 시작해 30분까지 늘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는 자라면서 시간이 늘겠지만 아이들의 경우, 하루 최대 2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구본권 선임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06174.html?_fr=mt6#csidxbaa1ddfb3c57d6580a5edb67786f3f2

 

스마트폰, 2살 지나면 조금씩 늘리되 하루 2시간 넘지 말아야

미국, ‘스마트폰없는 보육’ 신산업 국내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심각 “만2살 이전엔 허용 않는 게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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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8월 19일]

문해력 높일 방법 제시한 책 3권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어크로스)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있다.”세계적 인지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책 읽는 뇌>의 저자 매리언 울프가 새 책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어크로스)에서 내린 결론이다.저자는 하루 6~7시간 이상 디지털 기기를 쓰는 청소년들의 읽기 회로가 어떻게 변형되는지 탐색했다. 그 결과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 행위는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고, 나아가 깊이 읽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확신했다.글을 읽을 때 주의력이 예전보다 못한지,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졌는지, 길고 어려운 글이나 책을 읽어나갈 뇌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지 등을 스스로 질문한 뒤 답해보면 자기 뇌의 읽기 회로가 얼마나 퇴화했는지 알 수 있다.

 

매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읽는 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쉴 새 없이 디지털 기기에 접속하며 ‘순간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가 인류의 가장 기적적인 발명품인 읽기(독서), 그중에서도 특히 ‘깊이 읽기’ 능력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역사와 문학, 과학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자료와 생생한 사례를 토대로 오늘날 기술이 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은 분야를 넘나들며 창조성을 피워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 도구를 전해주는 책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 리처드 파인먼, 버지니아 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제인 구달,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마사 그레이엄 등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했다. 특히 이들이 자신의 독서 및 창작 경험을 통해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 읽기와 이해를 통한 직관과 상상력을 갈고닦아 창조성을 발휘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공부의 미래>(한겨레출판) <공부의 미래>(한겨레출판)도 독서 및 문해력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저자인 구본권 <한겨레> 기자는 시대가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바뀌지 않는 공부의 본질을 알면 위기도 기회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 10년 뒤를 내다보는 새로운 공부 및 책 읽기의 방법을 모색하고, 불안감과 위기감에 갈팡질팡하는 많은 이들이 현명한 선택을 내리도록 길을 안내한다.저자는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자기통제력, 협업 능력 등의 소프트 스킬을 소홀히 해온 한국 교육을 뿌리부터 돌아보며, ‘그래도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독서, 비판적 사고의 출발’ 등의 내용을 통해 집과 학교에서 어떤 교육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하는지 꼼꼼히 톺아본다.

 

김지윤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05508.html#csidx6f65d36fb367944be4996ff0ac0d503

 

“디지털 기기 많이 쓰면 뇌의 ‘읽기 회로’ 사라진다”

문해력 높일 방법 제시한 책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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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8월 13일]

문해력, 왜 중요한가
‘북튜버’가 대신 읽어주는 책보다는
아이 손으로 직접 종이책 만져보고
소리 내어 읽어봐야 문해력 높아져

아동기 발달의 관점에서
초등 2학년 전에 획득돼야…
“문해력은 사고방식 좌우하는 능력”

 

지난 7월 7일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문해력은 수능 등 대입 시험뿐 아니라 아이들이 졸업 뒤 ’평생 독자’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김지윤 기자

“나 대신 책을 읽어주는 ‘북튜버’ 채널도 있고, 글자를 긁으면 알려주는 펜도 있는데 굳이 왜 내가 직접 읽어야 하나요?”경북 포항에서 근무하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읽기 수업을 진행하다 학생에게 들은 말이다. 책을 소개하고 내용까지 정리해주는 북튜버(Book+Youtuber) 채널이 많은데 왜 자신이 직접 ‘힘들게’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눈과 머리로 읽는 것보다 손끝 터치와 귀로 듣는 소리가 더 빠르고 간편하며, 머리도 안 아프다는 말이었다.서울 용산구에 사는 학부모 최아무개씨도 최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글자 수도 많지 않은 동화책 읽기를 버거워하기 때문이다. 다섯 줄 이상 넘어가면 책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여 학습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지 고민이 많다.■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자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만 15살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한국은 2006년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했는데, 2015년 이후에는 9위까지 떨어졌다.

 

특히 최근 발표된 결과를 보면, 교과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해력 수준이 낮은 학생들이 전체의 32.9%에 이르렀다. 의약품 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가 매우 취약한 수준’의 비율 역시 미국이 23.7%, 핀란드 12.6%, 스웨덴 6.2%인 데 반해 한국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하위권을 차지했다. 엄훈 교수(청주교대 문해력지원센터장)에 따르면 현재 초등학교 입학생 기준으로 전체의 20%가 ‘문해력 낮음’에 해당한다.“문해력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평가한 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해독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능력까지 모두 아우른다.”오이시디는 문해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쉽게 말해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문해력이란 인간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좌우하는 능력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문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인간답게 살기 어렵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디지털 및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디지털 기기 조작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서 어려움을 겪다 보면 유용한 지식과 최신 정보 습득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특히 문해력 교육이 안 되어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실패를 경험한다. ‘초기 문해력’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초기 문해력은 본래 ‘초기 아동기 문해력’의 줄임말로, 출생 직후부터 만 8살까지 발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문해력을 아동 발달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문해력은 차근차근 나이 들수록 쌓여가는 게 아니라, 아동기에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엄훈 교수는 “초등 2학년 이전에 초기 문해력이 완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 놓인 EBS 수능 문제집과 학습 서적. 문해력은 수능 등 대입 시험뿐 아니라 아이들이 졸업 뒤 ’평생 독자’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김지윤 기자

 

■ 단어가 아이의 세계를 좌우한다 문해력은 일반적으로 독서율과 상관관계가 있다. 독서율이 높은 사람일수록 문해력 역시 높다. 문해력을 키우려면 평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자주 읽고,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실제 책을 읽어내는 독서율뿐아니라, 아이들 눈에 보이는 환경도 중요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책 많은 집에서 자란 아이가 문해력과 수리력이 높다. 단지 책을 집 안 가득 쌓아 놓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지적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와 미국 네바다대 연구진이 오이시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이 있는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이 문해력과 수리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오이시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의 2011~2015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31개국 성인 남녀 16만명의 언어, 수학, 컴퓨터 조작 능력을 조사했다.이 조사를 통해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십대들은 책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자란 대학 졸업생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하면 자신감이 떨어져 계속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문해력 교육 특성을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종이책을 자주 접하는 게 아이들 학습과 문해력 발달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일반적으로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부모의 가치관, 직업, 가족 구성원의 말하기 습관을 비롯해 거주 지역의 분위기에 따라 어휘력 차이가 발생한다. 어휘력의 차이는 문해력 수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환경보다는 자신의 독서량과 읽은 책 종류에 영향을 받는다. 독서량이 많은 아이는 다양한 어휘를 이해하게 되고, 읽은 책에 따라 쓰는 단어가 달라진다.책을 읽을 때 아이가 접하는 어휘는 자연스레 학습되는데, 이때 학습된 어휘는 두뇌와 의식 속에 자리잡는다. 아이가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단어만큼만 글을 이해하고, 느끼고, 행동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문해력 키우기는 공교육이 담당해야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문해력이 점점 낮아지는 근거로 삼았던 건 국제학업성취도평가였다. 문해력 전문가들은 이 평가 결과가 점점 나빠지는 경우에는 먼저 공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공교육에서 한글 교육을 소홀히 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초등 입학 전 ‘한글은 떼고 가야 한다’는 게 부모들의 원칙처럼 굳어졌다. 한글 지도와 문해력 교육을 사교육 시장에서 담당하면서 그 규모도 팽창을 거듭했다. 문자·문해력 키우기에서 발음·의미 중심 지도법 등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도 오히려 사교육 업체들이다. 종이책이 외면받는 스마트폰과 유튜브의 시대라 할지라도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공교육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학부모를 비롯한 양육자에게 아무리 ‘문해력 키우기’를 강조해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가정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실제 교육하기는 어렵다. 취약 가정 학생들을 제대로 돕고 이끌 수 있는 건 공교육이라는 이야기다.중학교 교사였던 엄 교수는 자신의 책 <학교 속의 문맹자들>에서 초등학교 때 읽기 부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아이들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읽기를 못하는 상태로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로 현재의 교육과정이 ‘동일한 출발점 가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애초에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가 없는데, 공교육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수준에서 시작한다는 전제를 놓은 뒤 교육과정을 만들고 그 교육과정에서 낙오하는 아이들에 대한 구제책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한편 뉴질랜드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만 6살에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언어능력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선별된 아이들은 12주에서 최대 20주까지, 매일 30분씩 교사와의 일대일 수업(개별화 교육)을 통해 읽기 능력을 바로잡게 된다.이런 프로그램은 영어권의 초기 문해력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마리 클레이 덕분에 지속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미국으로도 건너가 공교육 현장에 자리잡았다. 미국 역시 ‘리딩 퍼스트’라는 문해력 프로그램을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알파벳을 익히는 것 외에 글 내용을 이해하도록 문해력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한국 역시 최근 각 시도교육청에서 ‘한글 책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된 2000년 이후 공교육 현장에서 한글 교육이 매우 소홀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문해력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다.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춘 책을 읽고 이해하며 성공의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한데, 이때 교육적으로 조기 개입할 수 있는 의무와 권리는 교육 전문가인 교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도움말: 엄훈 교수(청주교대 문해력지원센터장),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 김지윤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05511.html#csidx3c762455dd9c44c9366b729fa804823

 

‘다섯 줄’만 넘어가도 읽기 힘들어하는 아이들

문해력, 왜 중요한가 ‘북튜버’가 대신 읽어주는 책보다는 아이 손으로 직접 종이책 만져보고 소리 내어 읽어봐야 문해력 높아져 아동기 발달의 관점에서 초등 2학년 전에 획득돼야… “문해력은 사고방식 좌우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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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8월 13일]

[윤기영의 원려심모]
기본일자리 정책을 제안하며(상)

 

기본소득을 헌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 김성광 한겨레 기자 flysg2@hani.co.kr

소득 이전에 일이 있어야 하는 이유 북유럽의 복지국가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실험을 했다. 2020년 최종보고서가 나올 것이기는 하나, 2019년 초에 2017년 한 해의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으나, 고용 개선에는 유의미한 효과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2019년 초에 이미 언론에서 소개된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성급하게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핀란드의 사회실험이 실업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했으며, 근로의욕을 저하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실험 결과를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그럼에도 기본소득에 대한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0년 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한 앤드류 양(Andrew Yang)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매월 미국인 전부에게 1000달러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공약으로 내걸었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공개적으로 앤드류 양 후보를 지지한다.그런데 기본소득에 앞서 논의할 게 있다. 일자리 문제다. 사람에게 일이 없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할 수 있는 건 뭘까? 일을 통해 인간은 학습하고, 일을 통해 다른 인간과 관계를 형성한다. 일을 통해 인격이 성숙하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 기본소득이 생존을 위한 소득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책이라면 기본일자리는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한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에 앞서 기본일자리를 주장해야 한다.

 

기본일자리에서 일자리란 근로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는 일자리(Job)를 의미한다. 경제적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 일(Work)과는 구분된다. 현재의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에서 생존을 보장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기본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 논리적으로 일자리는 일의 충분조건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일자리가 있다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보다는 일자리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 먼 미래까지 타당할 것이다. 먼 미래엔 일자리가 아니라 일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 하겠으나, 당분간 사람과 일의 관계는 사람과 일자리의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본소득제도가 인간에게서 일을 소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답게 일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주기 위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인간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의지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해야 할 일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소득도 안전하고 행복한 일자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소득제도 이전에 기본일자리에 대한 고민과 제도를 정착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원의 한계와 일의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공감하지만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으로서의 경제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비효율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독일의 ‘노동 4.0’ 백서에서 독일 노동계는 기본소득제도에 반대했다. 기본소득제도가 양극화를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개인에게는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기업에는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기본소득을 위한 세금만 내고 그 이상의 이윤을 추구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소득제가 실패한 것은 아니나, 기본소득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는 기본일자리에 대해서 먼저 논의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는 일자리 보장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년의 미래를 위해 기본일자리가 필요하다 기본일자리의 개념은 활동적 노인을 포함한 성인에게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개인에게 기본일자리를 그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말한다.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 32조는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규정에서, 개개인의 구체적 권리로 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 권리란 국가에게 일정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의 청구권이 있다는 의미다. 기본일자리의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자리 보장(Job Guarantee)은 신케인지언 학파에서 주창된 것으로 1980년대부터 등장했다. 일자리 보장 제도는 일자리를 원하나 시장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희망자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일자리에 대한 기원은 기본소득제보다 오래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제를 최소 임금제를 기원으로 두는 것이면 16세기 초 유토피아 사상과 연계되며, 누구에게나 일정한 소득을 제공한다는 의미의 기본소득제는 19세기 중반의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일자리 보장에 대해서는 그 관리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일자리 보장이 기본 소득제에 비해 큰 장점이 없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는 대선 경선 후보인 키어스트 질리브랜드(Kirsten Gillibrand)와 콜리 부커(Coly Booker)와 함께 일자리 보장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일자리 보장은 최소 주 15시간의 일자리를 노동을 원하는 사람에게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일자리는 일자리 보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보다 다양한 정책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기본일자리의 구체적 대안에 대해서는 학문적, 사회적, 실무적 논의가 더 진행되어야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맥락적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닐 수 있다. ? 청년의 미래 경쟁력 확보 : 적절하고 충분한 일자리를 경험하지 않는다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은 경험이 역량과 인격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청년층 실업은 일자리를 통해 필요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청년 세대에서 박탈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미래에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낮출 위험이 된다. 소수의 엘리트가 국가경쟁력을 결정할 것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혁신의 과정은 진화론에서의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을 닮았다. 자연설계만큼은 아니나 혁신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진화한다.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이 미래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근본이다. ? 지식사회에서의 한국의 경쟁력 유지 :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이행해야 하고, 이행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은 이를 가속화할 것이다. 지식사회는 지식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일 것으로 보인다. 지식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 문화 콘텐츠의 생산을 위해서는 노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지식산업에서 전통적인 노동법이 적용되기 어렵다. 기본일자리는 노동법의 공백에 대응할 수 있다. ? 소득보장과 유효수요 확보 : 21세기의 경제성장 둔화는 공급 부족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유효수요 부족에 있다. 국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수요는 있으나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득이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양극화 진행에 따라 유효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사회의 고령화도 유효수요를 줄이는 이유가 된다. 기본일자리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함에 따라 유효수요를 확보하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경우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과 생산시설의 현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내수시장을 늘려야 한다. 기본일자리는 소득보장과 유효수요 확보를 위한 핵심 정책의 하나로 판단된다. ?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 : 고정 일자리 보장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현대 화폐이론의 대표적 지지자인 윌리암 프란시스 미첼(William Francis Mitchell)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 정부는 강력한 재무와 통화 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고, 이는 전체 고용대비 일자리 보장 고용 비율(BER, Buffer Employment Ratio)을 높여, 노동자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영역에서 일자리 보장 영역으로 이전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극단적 불평등은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폭력적 혁명을 가져왔다. 픽사베이

기본일자리를 위한 다양한 정책대안 기본일자리를 위해 다양한 방안이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노동의 종말>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다. 디지털 노마드의 출현과 임시직 위주의 ‘긱 경제’ 비중 증가 및 플랫폼 경제 확산으로 전통적 노동법 적용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 사회 변화에 대응하여 전통적 노동법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식사회가 가진 ‘성실한 실패’에 대한 포용은 기본일자리와 관련해서 수립되어야 할 원칙이다. ‘성실한 실패’에 대한 포용은 그 사회의 지속적 혁신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사회내의 공익과 전인류적 공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사익을 추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을 통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기업에 공익을 추구하도록 하면 비용효율성에서 큰 문제가 된다. 비정부기구에 공익을 맡기는 것이 적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현실세계에서 비정부기구도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책 입안자(Policy Entrepreneurs)가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익 시장을 만들어 일자리와 사회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고전적인 공적 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다. 기준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한데, 한국사회의 공적 부분에서의 고용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상당히 낮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언급한 일자리 보장으로 기본일자리의 전체 체계를 완성한다. 이밖에도 기본일자리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대안은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기본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기본 요건으로 정보시스템의 비용효율성, 지속적 혁신, 자연환경에서의 지속가능성, 공정성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비해 무엇을 생산할지, 얼마나 생산할지, 누구에게 배분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보시스템에서 비용 효율성이 탁월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지속적 혁신에서 다른 시스템에 비해 우수했다. 인간의 합리적 이기주의가 지속적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인데, 현재의 특허제도와 부의 양극화는 혁신 속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동적으로 지속적 혁신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지속적 혁신의 속도가 떨어진다면 그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조선이 중기 이후에 혁신속도 저하를 넘어서 후퇴하면서 식민지를 경험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븐 할둔(Ibn Khaldun)이 <역사서설>에서 보여준 중세시대 중동지역의 종교적 매몰이 그들의 혁신속도를 저하시켜, 유럽 제국에 역사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현재의 시장경제 시스템은 시장외부비용을 내부비용화하고 있다. 저렴한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바다 생태계 파괴에 대해 인류는 여태까지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솔로몬 제도가 바닷물에 잠겨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인 미국의 국민에게 어떠한 비용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외부불비용은 내부 비용화했다. 이 비용까지 감안하여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생존가능성이 평가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정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극단적 불평등은 항상 비극적인 폭력적 혁명을 가져왔다. <팩트풀니스>가 21세기 들어 극빈층의 숫자가 줄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불평등 지수도 사회적 안정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논어의 계씨(季氏)편에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이라 쓰여 있다. 주자는 과(寡)와 빈(貧)을 바꾸어 不患貧而患不均 不患寡而患不安(불환빈이환불균 불환과이환불안)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백성이 가난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해야 하며,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안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는 의미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는 不均(불균)한 사회이며 不安(불안)한 사회다. 그 사회가 오래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 네 가지 요건은 사회-정치-경제 시스템 간의 경쟁에서 이기고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데, 네 요건으로 인한 영향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미래학의 Three Horizons의 시각 틀에 의하면 비용 효율성, 즉 정보시스템으로서의 비용 효율성은 현재와 단기 미래에 해당하는 Horizon 1에서, 지속적 혁신은 중기 미래와 장기 미래에 해당하는 Horizon 2와 3에, 환경에서의 지속가능성은 Horizon 3에, 공정성은 양극화 속도에 따라 다르겠으나 Horizon 2 이후에 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직의 근시 현상만이 만연한 것이 아니라, ‘근시사회’에서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의 장기적 요건을 만족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이들 네 가지 요건을 통합적으로 검토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것과 간다. 윤기영/한국외대 경영학부 미래학 겸임교수, 에프엔에스 미래전략 연구소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907792.html?_fr=mt2#csidxd770962efea0d4a8b504bc80ef97cce

 

기본소득보다 기본일자리가 더 시급하다

[윤기영의 원려심모] 기본일자리 정책을 제안하며(상)

www.hani.co.kr

[한겨레 2019년 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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